영업소 사무실의 문을 열면 의외성에 놀라게 된다. 24시간 내내 차들이 드나드는 요금소와는 달리, 정원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무소는 고즈넉하다. 요금소 직원들은 지하통로로 드나들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영업소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요금소와 마찬가지로 영업소도 24시간 근무 중인 것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CCTV,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조원들을 통솔하는 팀장들과 소장의 장황설과 고성으로 작전 상황실 같은 느낌을 준다.
“고객하고 싸웠다면서요? 고객하고 싸우면 돼요? 아무리 진상 부려도 고객인데. 고객한테 말대꾸하면 안 되는 거 몰라요?”
대답이 없자, 팀장이 다시 묻는다.
“고객을 열 받게 했다면서요?”
팀장이 ‘고객’이란 단어에 유난히 힘을 준다. 도로공사 소속인 팀장은 팀원들을 잘 관리한 대가로 성과급을 챙겨간다. 따라서 고객들로부터 들어오는 항의는 성과급을 갉아먹는 좀이다.
“열 받게 안 했는데요.”
“먹고 떨어지라고 했다면서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세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럼 뭐라고 했기에 고객이 그런 말을 해요?”
고객은 개뿔!
듣고 있던 지숙이 하경을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비아냥거린다.
“돈 더 드렸어요. 내 돈으로. 살림에 보태 쓰시라고.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요? 불쌍해 보여서 돈까지 보태줬는데.”
역시! 작게 읊조린 지숙이 책상 밑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하경에게 눈을 찡긋한다. 팀장의 날 선 눈초리가 지숙을 향하지만 지숙은 팀장을 못 본척한다. 배알이 뒤틀린 팀장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세모꼴로 눈을 치뜬 팀장이 다시 도미를 노려본다.
“다짜고짜 쌍욕 하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요? 팀장님이라면 참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참아야지.”
“왜요?”
“도미 씨가 잘했다는 거예요? 도미 씨 머리 나빠요? 여기 있는 근무수칙은 장식품인 줄 알아요? ‘고객을 사랑합시다.’이건 뭐, 심심해서 써 놓은 줄 알아요?”
“왜 팀장님이나 영업소는 그런 인간들 편만 들어요? 우리는 욕먹어도 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서비스직이란 거 몰라요?”
“욕먹고 멸시당하는 게 서비슨가요? 팀장님은 그런 욕먹고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안 해도 고속도로로 기어들어 올 인간들은 다 기어들어 와요. 요금징수원 꼴 보기 싫어서 걔들이 고속도로 안 타겠어요? 영업소에서 그렇게 굽신거리니까 우습게 보고 그것들이 더 갑질 하는 거 아니에요!”
도미의 항변에 말문이 막힌 팀장이 혀를 차다 비웃음을 날린다.
“도미 씨, 잘 났네. 그렇게 잘 났으면 이 일 하지 말지, 왜 이런 데 있어요?”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까놓고 얘기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못나서 여기 있는 건가요? 다 사정이 있어서 하는 거지? 팀장님은 그런 마인드로 일해요? 자신이 못나서 여기 있는 거라고?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라고요?”
“암튼 전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요. 그 정도 대거리도 못 할 바에는 차라리…….”
“도미야!” 지숙이 도미의 말을 가로막자 팀장이 가로챈다.
“그래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도미 씨 우리랑 일 못 해요. 도미 씨도 잘 알고 있네.”
“그래요. 알았어요. 관두면…….”
“도미야!”
뒤에서 듣고 있던 지숙이 나선다.
“팀장님, 왜 이러세요? 팀장님도 다 아시면서. 진상 떠는 놈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팀장님도 아실 거 아녜요. 다짜고짜 ‘좆’ 나오는 욕을 해대는데 누가 참을 수 있겠어요? 팀장님도 못 참았을 텐데, 안 그래요? 영업소에서도 어느 정도는 우리 편을 들어줘야 우리도 믿고 일할 거 아녜요?”
“암튼 도미 씨 감점이니까, 그리 알아요.”
할 말을 다 한 팀장이 쐐기를 박듯 결론을 내린다.
“도미야 알았지?”
지숙이 윙크를 하며 대답을 끌어내지만, 도미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 그리고 이하경 씨!”
도미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팀장이 하경을 부른다.
“네.”
하경이 대답하며 팀장을 바라본다. 팀장의 이름 이세윤. 나이 26세, 여자, 미혼.
“하경 씨, 또 전화 왔던데.”
“또요?”
하경보다 지숙이 먼저 묻는다.
“이놈의 인간들이 왜 이렇게 하경이를 귀찮게 한 대? 하여간 남자들이란... 예쁘고 어리면 다들 눈들이 뒤집힌다니까. 예쁜 게 죈가? 도대체 이번엔 어떤 자식이래요?”
험악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지숙의 말이 많아진다.
“어떤 자식인지는 중요치 않잖아요? 하경 씨, 그 남자 만날 생각 있어요? 없어요? 없죠?”
지숙의 질문을 무시한 세윤이 하경을 다그친다.
“네.”
“행동을 어떻게 하길래 이 모양이에요? 이게 벌써 몇 번째야? 하경 씨 찾는 전화 따돌리느라 사무실 직원들이 일을 못 하잖아요.”
“죄송합니다.”
“그게 어디 하경이 잘못이에요? 발정 난 수캐처럼 달려드는 남자들 잘못이지.”
근무일지를 만지작거리며 지숙이 중얼거린다.
“이게 왜 니가 죄송할 일이야? 이게 어떻게 하경이 잘못이에요?”
기분이 상해 잠자코 있던 도미가 참지 못하고 또다시 세윤에게 따진다.
“하도미 씨, 도미 씨는 도미 씨 일이나 잘하세요!”
세윤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빈정거린다. 안하무인이고 오만한 세윤의 태도를 보며 지숙이 속으로 혀를 찬다.
톨게이트 근무경력 8년 동안 네 번째 팀장이다. 그중의 두 번째 팀장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르지 않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직원들을 대했다. 하지만 지숙이 갓 입사했을 때의 팀장은 유부녀였고, 나이도 지숙 또래였다. 그녀는 철저하게 편을 갈랐고, 직급에 차등을 두었다.
매연과 먼지가 안개처럼 드리워진 요금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온종일 목이 칼칼하고 나중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금징수원들은 물을 달고 산다. 그날은 목이 아파 물을 마시고 있는데 차가 들어왔고, 급한 마음에 사레가 들린 지숙이 손님에게 제대로 응대를 하지 못했다. 여지없이 항의 전화가 들어왔고, 지숙은 고객의 입장에서만 자신을 나무라는 팀장에게 대들었다. 그때 팀장과 사장은 지숙에게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고, 다른 직원들로부터 지숙을 따돌림당하게 했다. 그때의 외로웠던 투쟁이 떠올라 지숙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저런 것들만 팀장으로 오는지…….’ 지숙은 새삼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팀장님 오늘 조회 끝났죠? 교대하려면 빨리 준비해야겠네요. 도미야, 하경아, 가자!”
“그럼 모두 알아들은 걸로 알겠고, 더 이상의 클레임은 용납 안 됩니다. 그리고 오늘 회식 있는 거 알죠?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란 거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싸가지!
지숙, 도미, 하경은 같은 마음이 되어 속으로 뇌까려 보지만, 서글픔을 느낀다. 요금소 손님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서러운데 팀장이라는 사람은 팀원들의 편이 아니다.
“이 팀장, 요금소 직원들한테 너무 빡빡하게 대하는 거 아닌가? 야단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던데.”
요금소 직원들이 나가고 난 뒤, 소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소장님은!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세윤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하지만, 말투는 쌀쌀맞다. 요금소 직원들을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어조다.
“그리고 뭐, 쟤네들은 어차피 써먹고 버리는 카드 아닌가요? 우리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해야죠.”
“뭐, 그건 그렇지만. 밀당 몰라요? 밀당? 조였다 풀었다를 적절히 해야지. 그렇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세윤이 생글거리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는다. 소장에게 짐짓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세윤은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럼, 말대꾸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나? 흥! 자기가 인자한 척하면서 맘 편히 놀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팀장들이 저것들 잡아놓지 않으면 일이 힘들어진단 걸 모르나? 하여간 하는 일도 없으면서 돈은 젤 많이 받아 가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며 세윤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평소 요금소 직원들만 챙기는 소장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요금소 부스 앞으로 간 하경이 전임자인 미진과 인사를 나눈다.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근무한 미진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다. 매연으로 인해 목뿐 아니라 눈까지 혹사당하는 것이다. 물론 피로의 요인이 매연뿐일 리 없다. 전방주시 의무로 인해 뚫어지게 앞을 보고 있어야 하고, 돈에 대한 끊임없는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 온종일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고객님을 사랑합니다. 이름: 이청하」
명패에서 전임자의 이름을 빼고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으며 하경이 생각한다. 하루 1,000여 명이 드나드는 이 톨게이트에서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고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곤 지하 입구로 사라져 가는 미진의 뒷모습을 좇으며 하경은 씁쓸함을 느낀다. 어쩌면 이 일을 그리 오래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개시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들어와 선다. 첫 손님에게 밝은 미소를 보내며 인사한다.
*이 소설은 제가 2014년 12월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현재는 상황이 바뀌어 톨게이트 요금소 직원들이 2020년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이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