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든, 지하가 아니든 노래방 문을 열면 냄새와 마주치게 된다. 스산한 곰팡내와 들척지근한 체취, 술 냄새와 입 냄새가 섞인 악취까지. 미러볼과 함께 흐느적거리던 사람들이 무르익은 분위기에 편승해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하경의 옆에 앉은 편대리가 하경을 엿보기 시작했고, 미진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김주임이 마이크를 잡으려다 콜라 캔을 쏟는다. 쏟아진 음료를 닦느라 작은 소동이 인다. 콜라가 테이블 위로 퍼지지 않게 도미가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뽑아 둑을 만들고, 하경이 선곡 책자를 다른 쪽으로 옮긴다. 옆에 앉아 끊임없이 어깨를 부딪쳐오던 편대리가 잠시 떨어지자, 하경이 그 틈을 타 지숙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도미가 손을 씻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문을 닫자 모든 방의 노랫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전자음으로 윙윙거린다. 화장실에 다녀온 도미가 방으로 들어가려다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냄새와 소리를 피해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은 것이다.
10월 말의 밤공기가 뼛속으로 스며들며 한기를 전한다. 하지만 탁한 공기 속에서 답답함을 느껴왔던 터라 한기가 추위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벽에 몸을 기댄다. 지긋지긋한 회식이다. 그들만을 위한 회식에 왜 자신들이 동원돼야 하는지, 도미는 그런 사실에 화가 난다.
회식 자리의 그림은 세 가지로 나뉜다. 흥청망청하며 퇴폐와 유희를 즐기는 사람, 방관하며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 눈치를 보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오늘의 진상은 편대리가 차지했다. 1차에서부터 술이나 음료수를 따르며 하경의 손을 만져대더니, 노래방에서는 도미와 하경의 사이에 앉아 몸은 하경에게 밀착시켜놓고 다른 손으로는 슬쩍슬쩍 도미의 허벅지를 건드려댔다.
쥐새끼 같은 자식!
노골성을 감춘 교묘한 수법에, 화도 못 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기 때문에 더 분통이 터진다.
“하도미 씨, 왜 나와 있어요?”
몇몇 직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소장이 도미에게 묻는다. 눈치껏 빠져줘야 하는 것이 소장의 위치인 것이다.
“바람 좀 쐬려고요. 소장님 가시려고요?”
“네. 가야지요. 이쯤에서 내가 빠져줘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며, 하나밖에 모르는 소장이라고 도미는 생각한다. 소장이 가고 난 후에 겪을 난장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어서 빠져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정정한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소장과 직원들을 배웅하고 노래방 건물로 들어간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를 걱정하며.
노래방의 문을 열자 난데없는 소리가 날아든다. 소장이 떠나고 난 노래방 안의 풍경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올라가 봐, 한번!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래, 올려! 올려! 몸매 한번 보자. 아니, 아예 눕혀!
-야, 야! 그러지 말고 도우미 불러! 도우미!
-그래. 걔는 놔두고 도우미 불러.
-도우미를 왜 불러? 여기 이렇게 이쁜 하경이가 있는데. 우리 이쁜 여대생, 하경이.
-있으면 뭐하냐? 꿔다 놓은 보릿자루지. 하경 씨가 어디 키스나 해봤겠냐? 순진해 빠져서.
-순진하니까 더 좋잖아.
“올라가!”
편대리가 눈을 부라리며 하경에게 명령했다. 그래도 하경이 말을 듣지 않자 편대리가 하경을 테이블 위로 끌어당긴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경이 버티고, 그런 하경의 다른 쪽 팔을 지숙이 잡고 있다.
“아, 이 아줌마야, 팔 좀 놔! 아줌마가 얘 엄마야? 왜 팔은 잡고 지랄이야, 지랄이!”
편대리가 거칠게 잡아채자 지숙이 팔을 놓치고, 버티려다 옆으로 쓰러진 하경이 편대리를 노려보고, 그 모습을 본 도미의 눈에 불이 튄다.
“아, 짜증 나! 뭐 하는 거야? 분위기 잡치게! 저리 비켜. 나 노래하게.”
거침없는 신경질로 남자들의 환호성과 혼란을 잠재운 세윤이 하경을 밀어내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몸을 흔들며 노래한다. 그 틈에 도미가 조용히 지숙의 옆에 걸터앉고, 김이 빠진 편대리가 하경을 옆에 앉힌 후 재차 술을 권한다. 편대리의 추태를 기회 삼아 하경을 희롱하려던 일당들은 술기운에 취해 세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춰대기 시작한다.
야!
세윤의 노래가 중반부로 접어들 때였다. 하경이 편대리의 뺨을 후려친 것은. 편대리의 손이 하경의 어깨를 거쳐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 기집년이 미쳤나?
편대리가 하경을 때리기 위해 손을 쳐든다.
이게 어딜? 이 추잡스런 인간이!
지숙이 편대리의 손을 막아서며 하경을 감싼다. 편대리의 손이 허공을 가르는 동안 도미가 편대리의 뒷덜미를 낚아채 소파에 쓰러뜨린다. 소파에 쓰러진 편대리를 노려보며 도미가 미소를 짓는다. 도미의 싸늘한 미소에 편대리가 움찔한다. 도미가 운동과 격투기로 다져진 몸이라는 것을 편대리가 생각해낸 것이다.
“뭣들 하는 거예요? 김새게! 남 노래하고 있는데!”
험악한 분위기를 가르며 세윤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세윤의 날카로운 소리와 마이크의 하울링이 겹쳐져 고막을 찢는다. 모두 귀를 막으며 정지한다.
“아주 꼴값들을 떤다, 꼴값들을! 왜? 편 갈라서 패싸움이라도 하게? 뭐, 여자, 남자? 아니면 직원하고, 용역? 그럼 난 어디에 서야 하나? 아주 못난 것들이 지랄들을 떨어요. 지랄들을! 야! 편대리 이 등신아! 술 처먹었으면 기어 쳐들어가서 니 마누라나 주물러. 회사 망신시키지 말고. 너, 병신 짓 하는 것 위에다 다 까발려 줄까?”
세윤의 말에 편대리가 몸을 일으켰고, 다른 일당들이 편대리를 부축한다. 그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하경, 하도미! 니네, 지금 폭력 한 거 알고 있니? 너네들, 그거 고소감이야!”
주눅 든 직원들의 태도에 기세가 등등해진 세윤이 내친김에 도미와 하경에게도 하대를 하며 따진다.
“폭력? 뭘 알고 말하는 겁니까? 성희롱과 성추행이 먼저 아니었나? 우리는 정당방위한 거고. 어디 한번 고소해 보라지. 고소하면 팀장 말대로 윗선까지 다 알려지고 좋겠네.”
도미의 대답에 세윤이 비웃는 표정을 짓더니, 한마디로 일축한다. 흥! 웃겨!
72 가 30X8 SUV.
휴직을 하고 전국에 있는 산을 떠돌다 단양에 자리를 잡은 지 2개월째. 아르바이트 삼아, 여차하면 눌러앉을 생각으로 휴양림에 이력서를 냈고, 이곳 도락산 자연휴양림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엽에게 있어서 산은 집이다. 그 일이 벌어진 후 일엽은 늘 불안했다. 하지만 산속에 있을 때만은 달랐다. 산은 휴식처였고 안식처였으며,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상담자였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는 단양은 8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엽은 단양 8경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서울시보다 넓은 단양은 녹색쉼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산이 많은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토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리산이나 강원도의 산들도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엽이 이곳에 머물기로 작정한 이유다.
코너를 돌아 요금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자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 비번이라 봉화 청량산을 종주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청량산은 산이 깊고 웅장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니만큼 크고 작은 등반사고가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수려한 산세와 단풍이 사고의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산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오늘도 일엽은 사진을 찍다 낙엽에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린 여자의 하산을 도왔고, 호흡곤란이 온 노인을 응급 처치했다. 산이 좋고,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산을 찾지만, 막상 응급상황이 닥치면 일엽은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자신이 휴직 중이라는 것이 마음을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휴직 중이라는 것은 임시로 내세운 핑계일 뿐,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산을 찾고 있는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꼬락서니가 못마땅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다고 일엽은 자포자기했다.
사고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고가 아닐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일엽은 그 사고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4월이었다.
“부리 바위에 또 한 명의 조난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원들이 사고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하는 사이 일엽이 장상근 대장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있는 것 같다니? 확실해야지. 그리고 그걸 왜 이제 말해?”
“그게, 저......”
일엽은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보았다고도, 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자살자의 시신을 수습한 후,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나무들의 생명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부리 바위에 올라간 사람이 몇 명이었습니까? 이분들 외에 또 있습니까?”
장상근 대장이 등반객들에게 물었다.
아뇨. 저희들 일행은 더 없는데요.
“어디서 봤어?”
등반객들의 대답을 들은 대장이 일엽에게 물었다.
“부리 바위 뒤편이었습니다.”
“그래? 가지!”
“헬기 오면 어깨 열상 사고자부터 올리라고. 줄 잘 잡고.”
올라갈 자일을 잡은 대장이, 남은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대장이 날듯이 자일을 타고 산을 올랐다. 첫 번째보다 더 빨라진 속도였다. 대장을 따르면서도 일엽은 석연치 않았다. 혹시 잘못 보거나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왜 하필 나만 보았을까?
비가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산봉우리 전체를 검은 구름이 감싸고 있었고, 바람이 세차게 나무들을 흔들어댔다. 일엽은 낭패감이 들었다. 만약 아니라면. 하지만 사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고자! 사고자!
정상으로 올라선 대장이 사고자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느 쪽이라고?”
“이쪽입니다. 부리 쪽 사면, 나무 아래에 사고자가 매달려 있던 것 같습니다.”
부리 쪽 사면을 올라 밑을 내려다봤지만, 사고자는 보이지 않았다. 사고자가 매달려 있을 만한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밑에서는 헬기가 사고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대원들이 세 명뿐이어서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사고자! 사고자 어딨습니까?
대장과 일엽이 소리 높여 사고자를 불렀다.
“사고자가 기절한 것 같으니까 내가 내려갈게. 너는 계속 사고자 불러. 조금이라도 의식이 돌아올 수 있게.”
“저, 대장님 제가 잘못 봤을 수도.”
“무슨 소리야? 잘못 봤다니! 암튼 내려가 보자고. 맞든 아니든 사고자가 있을 확률이 0.1%라도 있으면 우리는 구하러 가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대장이 너트를 암벽 사이에 끼우면서 말했다. 대장이 부리 바위 아래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자 일엽은 괜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확실치 않은 일에 대장을 끌어들인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사고자! 사고자! 사고자! 사고자! 대장님!
왜?
보입니까?
아니! 안 보인다. 떨어진 흔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사고자! 사고자! 사고자!
일엽은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잘못 본 거라면.
대장님! 대장님?
비가 국지성 호우로 변하며 쏟아져 내렸다. 낙뢰라도 떨어지면 큰일이었다.
대장님! 올라오십시오. 네? 대장님!
대답이 없었다. 퍼부어진 비가 절벽을 만나자 폭포가 되어 아래로 쏟아졌다. 바위틈으로 들어간 일엽이 너트를 암벽 사이에 끼웠다.
대장님! 제가 내려갈게요.
일엽의 고함이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내려오지 마. 내가 올라갈게. 낙뢰 칠지도 모르니까 거기 있어.
대장의 목소리가 희미한 빛줄기처럼 다가왔다. 그때였다. 폭포 같은 빗소리를 삼킨 천둥이 일엽의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몇 초 후, 쇠로 된 온갖 구조장비를 걸친 대장의 몸을 벼락이 후려쳤다.
대장의 몸이 허공을 유영했다. 대장은 바위 끝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도인처럼 폭포 속을, 번개 속을, 벼락 속을 날아다녔다. 그것이 대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엽이 봤다는 사고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사고자가 떨어졌을 법한 지점에 대한 수색도 이루어졌지만, 사고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로 일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끝도 없는 나락을 경험해야 했고, 급기야 구조대원을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새벽 2시 20분. 부드럽게 차를 세운 일엽이 통행권을 내밀며 인사한다. 졸고 있던 도미가 황급히 눈을 뜨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네..... 죄송..... 아니, 안녕하십니까!”
당황한 도미가 허둥지둥 인사를 맞받으며 통행권을 받는다.
“천천히 하십시오. 시간 많습니다.”
다독임에 익숙지 않은 도미가 서두르다 동전을 떨어뜨린다.
“죄송합니다. 다시 드리겠습니다.”
“아니, 제가 줍겠습니다.”
“아뇨. 위험합니다. 제가 나중에…….”
이미 차에서 나온 일엽이 동전을 줍는다.
“죄송합니다.”
도미가 말끝을 흐리며 미안해한다.
“안녕히 계세요.”
일엽이 인사를 남기고 천천히 사라진다. 차가 서 있던 자리에 100원짜리 동전 두 개가 떨어져 있다. 일엽은 동전을 다 줍지도 못했고, 다시 받지도 못했는데 떠나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