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톨게이트 10.

10. 평범, 그 이상과 이하

by silvery rain 이혜영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각.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받은 식탁이, 검은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외로워 보인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재익 소장의 굽은 등이 고립된 조난자처럼 고달프다.

“아버지, 이런 시간에 왜 혼자 술을 드세요?”

물을 가지러 나온 성우가 외로워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잠시 주저하다 식탁에 앉는다.

“아직 안 잤니?”

“네. 공부할 게 좀 있어서요.”

“복학 준비는 잘 돼 가니?”

“네. 조금씩 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왜 혼자 이러고 계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다. 늙으니까, 잠이 안 와서. 한잔 마시면 잠이 잘 오거든.”

“주무시기 전에 술 드시면 숙면에 방해돼요.”

“알았다. 미래 의사 선생님 아니랄까 봐, 벌써 잔소리냐? 그러지 말고 한잔 따라봐라.”

“네.”

한재익 소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보기에도 아까운 외아들이다. 의사 선생님이 될 의대생인 외아들. 아들 공부만 마치면 자신도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견디고 있다. 자식은 활력소이자 숙제인 셈이다.

“아버지, 이세윤 팀장은 어때요? 같이 지내시기는 괜찮으세요?”

성우가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괜찮지. 걔가 까탈스러워 보여도 귀여운 구석도 있고, 나한테는 잘한다.”

“네.”

“아르바이트는 언제까지 할 거냐?”

“1월 말까지 하려고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니? 공부할 것도 많은데.”

“공부하면서 머리도 식힐 겸 하는 거라서 괜찮아요.”

“12월까지만 해라. 돈 걱정은 말고.”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즐거울 게 뭐 있어. 그까짓 톨게이트. 쓸데없이 그런 거 하지 말고, 너는 너한테 맞는 일을 해라. 그게 빠른 길이다.”

“네.”

“그리고 요금소 직원들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라. 걔들은 관리대상이지, 사귈 대상이 아니야. 적당히 친절하게 대하고 마음은 주지 말아라.”

“.........”

“왜 대답이 없어?”

“네.”

“너, 혹시 친하게 지내는 애 없지?”

“예. 없습니다.”

“그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예쁘장하게 생긴 애 있지?”

“네?”

“그 왜 있잖으냐? 휴학한 대학생.”

“네에.”

“혜경인가? 희경인가?”

“이하경 씨요?”

“그래. 이하경이. 너무 가까이하지 말고.”

“네에....”

“그렇게 말 없는 애가 더 피곤한 법이다. 한번 정 주면 떼기가 힘들어져. 내가 괜한 말 하는 거 아니란 거 알지?”

“아버지.”

“일단 들어둬라. 남자는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아예 발도 담가서는 안된다. 걔는 우리랑 다른 부류다. 오죽 집안이 형편없으면 여대생이 이런 타지에 와서 험난한 요금소 일을 할까. 아예 상대도 말아라. 너는 의사 선생님이 될 사람이다. 적당히 친절하게. 알았냐?”

“네.”

예전에도 가끔 그랬지만 성우는, 조용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어떤 부분에 이런 냉정함이 숨겨져 있는지, 당황스럽다.


결혼하기 전 증권회사에 다녔던 지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일은 전화응대, 서류 심부름, 커피 심부름 등등이었다. 그러나 때론 그 등등에 하기 싫은 심부름이 포함될 때도 있었다. 전 차장이 아르바이트생인 윤정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킬 때 나서 준 것도 지숙이었고, 미스 한이 생리대 심부름을 시킬 때 주의를 준 것도 지숙이었다.

그러나 이곳 도로공사에서 지숙을 위해 나서 준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지숙은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다.

안녕하십니까? 서서히 들어선 고급 외제차의 창을 보며 지숙이 먼저 인사한다. 지숙의 목소리에 부드러운 여유가 있다. 연륜이 묻은, 사무적인 자신의 목소리에, 지숙은 새삼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저, 바쁘신데 말씀 좀 여쭐게요.”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숙이 몸을 돌려 상체를 굽힌다. 허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밀려와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지만, 미소를 유지한다. 인상 한번 찌푸렸다가 항의 전화로 된통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관광지가 어디죠?”

토요일 오전이라 다른 지역 번호를 달고 있는 차가 꽤 많이 눈에 띈다. 산이 많고 물이 맑은 단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찾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그러나 지숙은 그것이 달갑지 않다. 일이 많아져서 싫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관광지 개발과 도로 건설로 단양이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관광지 말씀이십니까?”

“네.”

“가까운 곳에 도담삼봉과 고수동굴이 있습니다.”

“도담삼봉이면 산인 가요?”

“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입니다. 봉우리가 3개라 도담삼봉입니다.”

“아, 정말 죄송한데, 한 가지만 더 여쭐게요. 구인사는 어떻죠? 구인사는 먼가요?”

“구인사 말씀이십니까?”

“네.”

“아주 좋습니다. 안 보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그럼 도담삼봉을 먼저 가야 하나요? 구인사를 먼저 가야 하나요?”

“도담삼봉을 먼저 가시고, 가시는 길에 고수동굴 들르시고 그다음에 구인사를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궁금한 사항이 더 있으시면 바로 옆에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뒤차를 돌아보며 거듭되는 질문에 못을 박는다. 못다 한 질문을 아쉬워하며 외제 차가 떠나자 또 다른 수입차가 그 뒤를 잇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주말이면 고가의 차량이 단양으로 몰려온다.


“오래 기다리셨죠? 바쁘신데.”

“아니, 뭐...”

짜증이 잔뜩 묻었던 얼굴이 풀어지며 말을 흐린다. 8년 된 노하우다. 짜증을 낼 법한 인간은 내미는 손만 봐도 안다. 심보가 뒤틀리기 시작한 사람은 자기 차의 순서가 오기도 전에 차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뒤차들이 이렇게 밀렸는데 말이야. 눈치 없이.”

검은 선글라스를 낀 50대 초반의 남자가 입을 씰룩거리며 뇌까린다. 옆에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팔짱을 낀 채 요금소를 바라보고 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줌마 말고 앞차 말이야. 앞차.”

“자기야! 빨리 가자. 시간 없어.”


다음 차 역시 팔을 내밀고 자기 차를 탁탁 치고 있다. 짜증이 70%는 올라왔다는 뜻이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대답 없이 통행권을 흔든다. 저런 손놀림에는 다른 말도, 웃음도 필요 없다. 스피드가 최고다. 아예 몸을 내밀어 오른손으로 통행권을 받아 투입구에 넣는 동시에 암산하며 왼손으로 잔돈을 준비하곤 발행키를 누른다. 문제는 영수증이다. 기계에서 나오는 영수증은 서두를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잔돈을 먼저 주면 된다. 때론 너무 바쁜 나머지 영수증을 안 가져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데 잔돈을 제대로 넘겨줬는데 남자가 잔돈을 떨어뜨린다. 영수증을 떼며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줌마! 아줌마가 떨어뜨렸네. 돈 다시 줘야지. 아니면 주워주든가.

네?

왜 내가 니 돈을 주워줘야 하니? 네가 떨어뜨렸으니까 네가 주워.라고 말하고 싶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더 된통 당하기 전에 동전을 다시 준다. 오른손으론 동전의 액수 350원을 메모지에 적는다. 못 찾으면 지숙의 돈으로 메워야 한다.

다음 차를 맞으며 지숙이 피식 웃는다.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무엇에 대한 불만인지 3년 동안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욕을 하던 고객이 있었다. 그 인간의 차가 들어서면 긴장감 때문에 벌레가 기어가듯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77 보 31X8 승합차.

평일이었고, 차가 뜸한 새벽이었다.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2, 30분 간격으로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깜빡 졸았는지 신경질적인 클랙슨 소리에 눈을 떴다.

“어이, 아줌마 미쳤어? 고객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자빠져 자게?”

“어머!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줌마가 말이야! 졸기나 하고. 거기가 아줌마 집 안방이야?”

빙글빙글 웃으며 내민 통행증에 술 냄새가 함께 섞여왔다. 통행증을 건네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통행증을 쥔 손에 힘이 실려 있었다.

“고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통행증을 주셔야죠!”

“줬잖아! 이거 안 보여?”

“놓아주셔야죠.”

“뭘 놓아줘!”

“고객님!”

“왜? 왜 불러? 니가 날 언제 고객으로 대했어? 말로만 고객! 고객!”

“고객님 이러지 마십시오.”

“내가 고객이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해야겠네? 옷 벗어봐!”

“네?”

“왜? 아깐 안방처럼 잘만 자빠져 자더니! 너 서비스하는 년이잖아! 내가 고객이라며? 저번에 보니까 서비스 잘 못 하면 깨지더구만. 어디 한번 나한테도 서비스해 봐.”

“고객님, 술 드신 것 같은데 통행증 주시고 빨리 댁으로 들어가셔야죠.”

“니가 뭔데, 댁으로 들어가라 마라야?”

“고객님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술 많이 드신 것 같은데, 경찰 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뭐야? 이 씨발년이!”

“이 보세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뭐? 불렀으면 말을 해!”

“고객님! 그만큼 욕을 해댔으면 욕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뭐? 하, 이 쌍년 봐라!”

“경찰 불렀으니까 경찰 앞에서도 그렇게 욕하시기 바랍니다.”

“에이! 이 더런 년아!”

남자가 소리 나게 가래를 모아 지숙의 얼굴에 내뱉었다.

“씨발년이!”

마무리로 야무지게 욕까지 내뱉은 남자가 부리나케 꽁무니를 내뺐다. 술과 담배 냄새가 섞인 끈적끈적한 가래가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주행 중인 사람들은 다른 차 속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정신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서 사람들을 맞닥뜨릴 때 지숙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곤 했다. ‘차 속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있었구나.’

‘시속 150, 160을 넘나들며 위협하고 을러대던 사람이 이들 중에 있구나.’

'처음부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으면 그러지 않았을 사람들이 왜 운전대를 잡으면 돌변하는 것일까?'

도로를 질주하던 권위와 폭력성이 요금소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상태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차의 크기에 인격이 비례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차에 맞는 인격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지숙은 생각한다.

대형차나 고급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자신이 권력에 한 발 더 접근해 있다고 착각한다. ‘튼튼한 고급 차는 죽을 위험이 적다.’ ‘20t이 넘는 대형트럭을 당할 차는 없다. 그것이 방탄차든 고급 수입차든 트럭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체가 강한 고급 차는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무모하게 운전하고, 대형트럭은 알아서 비키라는 식으로 무법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얌전해질 유일한 기회는 사고다. 죽음 직전까지의 사고. 그런 사고를 겪고 난 후에야 그들은 차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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