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톨게이트 12.

12. 그 일이 일어나던 날, 벤츠

by silvery rain 이혜영

“잘 들어. 아까 말한 거 기억하고 있지?”

“응. 알어.”

충청도 태생인 똥파리는 흥분하면 사투리를 내뱉는다.

“톨게이트 얼마 안 남았어. 갓길에 차를 세우면 어떻게 한다고?”

“그년의 머리통을 이걸로 후려치고, 머리를 잡아채서 밖으로 빼낸다. 그리고 트렁크에 밀어 넣는다.”
“트렁크는 안 돼.”

“왜?”

“시간이 없잖아. 묶을 수도 없고. 깨어나서 소리 지를 수도 있고.”

“그려, 그럼 트렁크는 안 되고 그럼 어떻게 혀?”

“뒷자리에서 테이프 붙이고 묶어. 딴짓은 하지 말고.”

“알았어. 딴짓은 무신…….”

속마음을 들킨 똥파리가 무안해하며 구시렁거린다.

“그다음, 적당한 데서 트렁크에 실으면 돼.”

“알았어. 오케이, 오케이! 쉽네. 쉬워.”

'그럼 지는 뭘 한다는 거여? 옘병! 내가 다 하는 거잖여.' 불만스럽지만 똥파리는 내색하지 않는다. 똥파리도 아는 것이다. 오 사장은 머리, 자신은 몸이라는 것을. 그게 싫지도 않다. 어차피 자신이 머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근디 지금 몇 시지?”

똥파리가 계기판의 시계를 기웃거린다. 새벽 1시 13분. 똥파리는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곱씹는다. 초조할 때의 버릇이다. 사투리가 나오고 말을 곱씹는 것.

“새벽 1시 13분. 트렁크는 안 되여. 트렁크는 안 되어.”


말을 되뇌던 똥파리가 오 사장의 옆얼굴을 보며 히죽 웃는다. 잘생겼어! 운동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과 적당히 그을린 윤택한 피부.

운동은 교도소에서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재소자들은 휴일만 빼고 일 년 내내 구보와 근육운동을 하며 체력을 단련한다.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분노를 삭일 수 없기 때문이다. 좁은 철창에 갇힌 멧돼지가 우레와 같은 울음을 울며 제 몸을 철창에 들이박는 것처럼, 흉악범들은 제때 에너지를 발산시켜주지 않으면 스스로 발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시간에 일어나고 제때 먹으며 적절한 운동을 겸하는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재소자들의 건강 상태는 일반인보다 월등히 좋다. 덕분에 오 사장도 윤기 돌고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를 갖게 된 것이다.


“오 사장!”

흐뭇한 표정의 똥파리가 다정하게 오 사장을 부른다.

“오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앞만 보고 운전하던 오 사장이 싸늘한 눈빛으로 똥파리를 쏘아본다. 느닷없는 오 사장의 냉대에 똥파리가 어쩔 줄 몰라한다.

“알았어. 미안혀. 그 그럼 뭐라고 부르지? 이름 불러도 되는감?”

“아니.”

“그럼.....”

대안이 없는 짧은 대답에 똥파리가 불안해한다.

“오형, 오형이라고 할까? 오 사장도 나한테... 아, 미안! 거그서 불렀던 게 당최 입에 붙어놔서리. 그러니까, 오......도 나한테 김형이라고 하니께.”

당황한 똥파리의 사투리가 심해진다.

“그렇게 하지.”

“알았어. 오형!”

똥파리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기뻐한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무리 없이 채택되자 큰일이라도 해낸 듯 우쭐해진 것이다.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4년제 대학을 나와 지방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오 사장은 많은 사람의 호감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호감의 유통기한은 오 사장을 깊이 사귀기 전까지였다. 오 사장은 지금까지 두 명의 여자를 사귀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 사장의 생각이다.

대학생 때 사귀었던 여자는 순종적이었지만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여자는 오 사장이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내내 뒷바라지를 했다. 뒷바라지라는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됐다. 물질적인 것은 기본이고, 물리적인 노동력, 봉사, 정신적인 안정감, 희생까지 포괄한 것이다. 언론고시 준비 내내 오 사장은 여자를 부렸다. 여자는 오 사장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돈을 원하면 돈을 준비해줬고, 식욕을 채우길 원하면 식욕을 채워줬고, 성적 만족을 원하면 그의 만족을 위해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는 주기적인 화풀이 대상도 되어 주었다. 그렇다고 오 사장이 여자를 착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때 가끔 다독여주는 것, 비전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여자를 위한 오 사장 나름 최선의 서비스였다. 여자는 그것에도 만족했다. 왜냐하면 오 사장은 잘 생겼고, 비전이 있었고, 무섭기도 했지만 가끔은 그것을 상쇄시킬 만큼 친절했으니까. 여자는 오 사장이 기자만 되면 다 잘 될 것 같았다. 오 사장이 기자만 되면 자신의 인생도 꽃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오 사장을 질리게 했다. 오 사장은 갖은 학대와 멸시로, 여자가 자신을 떠나게 했다.

기자가 된 오 사장은 가리지 않고 여자들을 만난다. 누나만 둘 있던 오 사장은 누나의 친구들과도 만났고, 친구의 친구들과도 만났다. 신문사의 여직원이나 기자들과도 만났고, 그들의 사촌이나 자매들과도 만났다. 찻집, 밥집, 술집 가리지 않고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여자들은 모두 오 사장의 외모와 기자라는 직함에 끌렸고, 오 사장이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착각했다. 그러다가 급속히 냉각된 오 사장의 눈빛에 치를 떨며 떨어져 나갔다.

첫 번째 여자를 포함, 모든 여자를 떨어낸 오 사장은 신문사에서 퇴사한다. 강제로 퇴사당했을 것 같지만, 아니었다. 기자라는 직업에 싫증이 난 것뿐이었다.

오 사장은 부동산 경매 용역회사에 취직한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곳에서 오 사장은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경매로 낙찰받은 부동산에 대한 점유자 청소를 맡은 오 사장은 일 처리가 매우 신속했고, 빈틈없었고, 잔인했다. 경매로 쫓겨나게 된 세입자나 채무자에게 오 사장은 독사로 불렸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오 사장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점유자의 딸이었다.


스산한 바람 속,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지던 가을날이었다. 그날은 유달리 좀이 쑤셨다. 다른 날은 부하직원들에게 맡겼던 일을 오 사장이 직접 나섰다. 직원 셋을 데리고 점유자의 집을 찾았다. 옥상에 아담한 정원과 쉼터가 있는 5층짜리 상가건물이었다. 옥상의 상태만 보아도 점유자인 채무자의 애착이 엿보이는 집이었다. 건물의 외관도 깔끔했고, 각종 과실수와 화초가 가꿔져 있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고, 대화하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그곳에 여자가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여자는 집의 운명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듯했다. 희고 그늘진 여자의 얼굴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오 사장은 갈망을 보았다. 여자의 생각이 어떻든 오 사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오 사장은 여자를 자기 것으로 생각했고, 조만간 자기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 사장은 지적이고 잘생겼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 사장은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잘해줘도 여자는 오 사장을 꺼렸다. 오 사장은 여자를 애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자는 오 사장을 시궁창의 쥐 보듯 했다. 여자의 눈이 경멸을 담을수록 오 사장은 여자에게 집착했다. 여자에 대한 집착은 증오를 불러들였다. 사실 증오 이전에 오 사장은 당황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좋은 머리를 타고나서 공부도 잘했고, 호감 가는 얼굴 덕에 온갖 기대와 사랑과 지원을 받았던 그였다.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공부만 잘하면 됐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모든 것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니, 당황 그다음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 분노였다.

어느 날 오 사장은 준비해 간 염산을 여자에게 뿌린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적어도 오 사장에겐.

타들어 가는 염산을 느끼며 여자는 오 사장을 저주했다. 염산이 여자를 태울 때 오 사장은 여자를 저주했다. 숲 속에 여자를 방치한 채 차를 몰아 질주할 때 오 사장은 웃었다. 흐뭇해 미칠 것 같았다. 이제 여자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오 사장의 교도소 생활이 시작되었고, 4년 형기를 마친 오 사장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오형! 가시나 납치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거여?”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김형은 김형 일만 잘하면 돼.”

“알았어! 잘할게!”

늘 침착하던 오 사장의 목소리가 섬세하게 떨린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희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그년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년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년은 어차피 유희 거리였으니까.


만기출소 후 오 사장은 다시 여자를 찾아간다. 자신을 범죄자로 만든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 사장은 복수하지 않는다.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누더기 같은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녔다. 더는 빛나는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은 얼룩덜룩한 늪 같았고, 두 눈은 동굴처럼 공허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파괴하는 일은 재미없었다.

대신 오 사장은 다른 여자들을 찾아다녔다. 그 여자와 닮은 여자들을.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을 오 사장은 아무도 모르게 해냈다.

오 사장은 아이들이 싫었다. 마냥 천진난만하고, 마냥 즐겁고, 마냥 시끄럽고, 마냥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싫었다. 세상이 어떤 곳인데 저렇게 즐겁기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부모에게, 세상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오 사장은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염산을 부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는, 이게 뭐지? 하며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염산을 손으로 닦았다. 그러다가 아이는 신기한 것을 목격하곤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손이 녹아내렸던 것이다. 오 사장은 골목길에 아이를 버려두고 차에 올랐다.

도심을 드라이브하며 오 사장은 웃었다. 찢어진 입 사이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 사장은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다. 아이에 대한 염산 테러 때문이 아니었다. 야간 무단 침입과 감금, 폭행으로 3년형을 받았다. 오 사장이 폭행하고 고문한 여자는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평생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오 사장이 염산 세례를 준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애달픈 눈빛만 남기고 빛이 되어 사라졌고, 아이의 부모는 분노의 방향을 알 수 없어 돌을 씹는 심정으로 슬픔을 삼켰다. 아이에 대한 염산 테러는 미궁으로 남았지만, 오 사장은 그 후로도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착실히 드나든 덕분에 오 사장은 보호감호자가 된 것이다.

애새끼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그건 내게 중요치 않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두려움을 줬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세상은 알아야 한다. 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고, 두려워해야 한다. 경계하는 것도 괜찮다. 경계하며 두려워해야 더 재미있으니까.

“오사.. 아니, 오형 고마워.”

똥파리가 수줍은 어투로 오 사장에게 감사한다. 오 사장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똥파리를 쳐다본다. 이 새끼가 미쳤나?

“뭐가?”

“다 고마워. 2년 동안 면회와 주고. 마중도 나와 주고. 부모도 버린 몸인데... 오 사장 정말... 이 은혜…….

“신경 쓰지 마. 다 돕고 사는 거지.”

병신 같은 놈, 토기가 쏠리는 것을 오 사장이 가까스로 눌러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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