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25분. 오 사장이 운전하는 벤츠가 톨게이트 길로 접어든다. 400미터가량 떨어진 숲 속에 톨게이트가 마법의 성처럼 자리하고 있다. 어둠은 가을의 아름다운 빛을 모두 먹어 버린 뒤 잠들어 있고, 톨게이트는 그 안에서 홀로 빛을 내며 따스함으로 불 밝히고 있다. 톨게이트는 여행자들의 종착지이자, 시작이다.
오늘 죽인 여자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건 다 똥파리 놈 때문이다. 하긴 똥파리가 있으니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지만. 내가 똥파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놈이 바보이기 때문이다. 바보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부려 먹기 쉽다. 그리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덮어 씌우기도 쉽다. 난 똥파리의 그림자일 뿐이다. 주종관계가 뒤바뀐 그림자. 그게 내가 똥파리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이며 목적이다. 난 살인은 절대 안 한다. 똥파리는 살인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뇌가 없으니까.
잔칫상은 내가 차리고 똥파리는 얻어먹고, 난 즐기면 된다. 잔칫상이 엎어졌을 땐 모든 것을 똥파리에게 뒤집어씌우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13. 그 일이 있기 전, 톨게이트 사람들.
청하와 통화하지 못한 52조는 불안했다. 이 불안감이 무엇 때문인지 52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불안감을 느껴본 적은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놓쳐 길을 헤맨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늘 52조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야 엄마가 일부러 손을 놓아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전의 52조는 자신의 손을 놓고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엄마의 뒷모습, 그 뒷모습을 잡기 위해 엄마에게 더욱 집착했다.
다섯 남매를 키웠던 엄마는 늘 우울증에 시달렸다. 엄마는 항상 멍한 표정이었고, 말이 없었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포악해져서 52조를 때렸다. 52조는 늘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불쌍해.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엄마는 52조가 자신의 불행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라고. 막내인 52조가 엄마와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2조는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사랑은 절대 52를 찾아오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몰두해야만 해소됐다. 52조는 다섯 살 때부터 성에 몰두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속도로 관리 사무소입니다.”
사무적이지만 똑 부러진 목소리다.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52조가 성기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이 청하 씨 부탁드립니다.”
잘 조율된 52조의 목소리가 저음으로 울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청하 씨 출근 안 하셨습니다.”
똑 부러진 목소리가 신경질적이고 카랑카랑하게 바뀐다.
“그럼 언제 통화할 수 있습니까?”
신음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으며 52조가 묻는다.
“여보세요! 제가 몇 번 말씀드렸을 텐데요. 여기서는 통화하실 수 없다고. 계속 전화하시는 그분 맞으시죠?”
“예? 예.”
다분히 감정적인 여자의 목소리에 성기가 움츠러든다.
“그 그럼 휴대폰 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말을 더듬는다.
“그것도 안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을 텐데요.”
여자가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다. 52조가 오줌을 지린다.
“네....”
52조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가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린다.
수화기를 부술 듯이 내려놓은 세윤이 씩씩대며 전화기를 노려본다.
“이 팀장! 전화를 왜 그렇게 받아?”
“아, 정말 짜증 나 죽겠어요. 이 새끼 변태 같아!”
“왜?”
“아, 몰라요! 목소리도 변태 같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게. 아, 너무 싫어! 하경이, 걔 찾는 것들은 왜 다 이 모양이래? 아, 짜증 나!”
“하경 씨 찾는 전화가 많이 오나?”
“네! 걔 찾는 전화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업무가 안 돼요. 업무가.”
“어떤 종류의 전환가?”
“뻔하죠, 뭐! 만나고 싶다는 거겠죠. 얘는 도대체 행동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얘 들어오고 나서 우리 사무실 직원들 일이 더 늘어났다니까요.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하경이 얘, 잘라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클레임은 안 들어오잖아.”
“좋아 죽겠다는데 클레임이 들어오겠어요?”
“허허! 클레임 안 들어오는 데 함부로 자를 수야 있나! 자자, 진정해요. 그래 봤자 세윤 씨만 열 받지, 그 녀석들이 알기나 할 것 같아? 다음부터는 그 전화 나한테 넘겨요.”
“네.”
한재익 소장의 다독임과 배려에 다소 기분이 풀리긴 했지만 불쾌감이 가시지 않는다. 성적인 농담이 없었음에도 그 남자의 전화는 늘 불쾌감을 주었다. 마치 성추행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든다.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와 언뜻언뜻 들리던 신음은 듣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변태 새끼! 그나저나 하경이 걔가 뭐가 예쁘다고 난리들이야? 분명히 이상한 것들만 꼬이는 걸 거야. 얼굴 한번 보고 목매다는 인간들이 뭐, 정상이겠어? 얼굴만 밝히는 것들, 별 볼일도 없겠지.
탕비실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짜증을 내던 세윤이 표정을 바꾼다. 찌푸린 자신의 얼굴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여러 각도의 포즈로 표정을 짓던 세윤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내친김에 콤팩트로 얼굴을 두드리고 입술을 덧바르자 자신의 모습이 예뻐 보여 만족스럽다. 잠시 거울 속에 빠져있던 세윤이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켜곤 탕비실을 나간다. 세윤의 발소리가 사무소의 복도를 울린다.
피투성이의 엄마가 옷이 벗겨진 채 신음하고 있다. 엄마를 올라타고 있던 아버지가 광기에 찬, 사나운 눈으로 노려본다.
나, 받아쓰기 잘 봤는데….
꺼져! 이 육시랄 놈아!
피멍이 들고, 얼굴이 부은 엄마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보지만, 이내 고개를 떨군다.
엄마!
너무 무섭지만, 아버지를 잡아당기며 엄마를 향해 울부짖는다. 이제 아버지의 타깃이 바뀐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비명을 지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주 찬양. 주 찬양. 내 마음 다해 주 찬양.」
모닝콜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다. 몇 시간씩 두들겨 맞던 그때처럼 몸이 아프다. 두뇌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어떻게 과거의 고통까지도 현실에 재현해 낼 수 있는 것인지.
52조가 몸을 웅크리고 내쳐 운다. 설움이 복받치고 화가 난다.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건지. 왜 태어난 건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눈물이 베개를 적시고, 땀이 이불을 적시고, 슬픔과 분노가 마음을 적시고서야 52조가 몸을 일으킨다. 한기가 엄습해 부들부들 떨리지만, 오늘은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날이다. 주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생각이 미치자, 모든 슬픔과 분노가 증발해버린다. 신앙의 충만함이 몸을 감싸 한기까지 날려버린다.
주 찬양. 주 찬양. 내 마음 다해 주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머리를 감으며, 감동에 사로잡힌 52조가 후렴구를 따라 부른다. 천국에 든 듯 행복하고 평화롭다.
52조는 늘 주일을 기다린다. 주일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니까.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52조는 주일학교 선생님이다.
“선생님!”
다정한 미소의 52조가 교회에 들어서자 1학년 아이들이 달려와 52조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엉덩이와 아랫배에 닿는 아이들의 감촉이 부드럽다. 52조가 행복감에 휩싸인다.
1학년의 담임을 맡은 52조는 늘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들에 관한 생각은 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운전할 때도 아이들을 생각했고, 밥 먹을 때도 아이들을 생각했고, 잠을 잘 때도 아이들을 생각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자위할 때도 아이들을 생각했다.
52조의 양옆에는 1학년 중 제일 예쁜 예림이와 지희가 앉아, 귀여운 발을 까딱거리고 있다. 52조는 예림이와 지희의 허벅지에 가만히 손을 올린다. 얌전히 있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작은 새처럼 숨죽인다.
“선생님, 선생님은 손이 왜 이렇게 예뻐요?”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눈이 예쁜, 크면 상당히 섹시해질 예림이가 52조의 손을 만지며 묻는다. 예림이의 보드라운 손길이 닿자 52조가 눈을 감는다. 예림이를 품 안에 넣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숨을 들이쉬며 참는다. 대신 예림이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예림이는 자신의 손등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52조에게 바짝 붙어 앉는다. 52조는 지희도 옆으로 당겨 앉힌다. 지희의 작은 엉덩이가 52조의 엉덩이에 닿는다. 52조는 지희의 손도 잡아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놓는다. 각각 한쪽씩 잡힌 아이들의 손이 52조의 사타구니 위에서 만난다. 서로의 손이 마주 닿자 아이들이 마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 52조는 미칠 것만 같다. 52조가 아이들의 손을 내린다. 그러다가 ‘실수’로 아이들의 손등이 52조의 성기를 건드린다. 52조는 전혀 불쾌하지 않다. 아이들이니까.
예배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아이들을 지도한다. 일어서 있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건드려 앉히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은 볼과 입술을 만져 조용히 시키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힘주어 끌어안아 얌전히 있게 만든다. 52조의 이런 행동들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52조는 생각한다. 역시 교회는 세상의 작은 천국이야.라고.
#. 이 소설은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특정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