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에 눈을 뜨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배낭 두 개와 외투 한 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안이다. 잠에서 깬 일엽이 양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눈을 감는다. 산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만 더해질 뿐이다.
그날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을까? 정말 헛것을 본 것일까?
증발해버린 실종자. 어떤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내 눈에만 띄었던 실종자.
“중증 우울증 때문에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먼저였을까? 사건이 먼저였을까?
남을 돕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좋았다. 경찰직에 합격하고 산악 구조원으로 자원했다. 하루하루를 뜻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인생이 보람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고된 훈련과 생사를 오가는 구조작업,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된 일은 산악 구조원들을 늘 긴장 속에 머물게 했다. 게다가 단순 조난 사망자와 달리 나무에 매달린 자살자를 수습하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일엽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다. 되풀이되는 의문점과 자책감을 쫓기 위해서고,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밤 동안 투숙객들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휴양림으로 내려와 있는 산짐승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야생짐승이 흩어놓은 쓰레기를 청소하고 돌아오니, 관리사무소 가득 커피 향이 그윽하다. 정 실장이 커피를 내린 것이다.
“굿모닝!”
일엽이 얼굴을 비비며 인사한다. 손을 씻는 김에 세수까지 한 일엽의 얼굴이 발갛게 번들거린다.
“안 추워요? 아침부터 왜 밖에서 세수를 했어요?”
추위로 빨개진 일엽의 얼굴을 보고 효정이 묻는다.
“예, 쓰레기 좀 정리했습니다.”
“놔두면 이따 가져갈 텐데.”
“산짐승이 흩어놨더라고요.”
“그래요? 아침부터 고생했네요. 정실장 님! 우리 이참에 쓰레기 수거함 다른 걸로 바꿔요. 뚜껑 있는 걸로.”
“그럽시다! 일엽 씨, 수고했어!”
정실장이 흔쾌히 대답하곤 일엽에게 커피를 따라준다.
“잘 쉬었나? 청량은 평안하던가?”
“네, 정실장 님한테 안부 전하라더군요.”
“그래? 청량의 예쁜 자태가 무척 그립군!”
“오죽하시겠습니까.”
“뭣들 하세요? 군내 나게!”
일엽과 정실장의 엉터리 선문답을 듣다 못한 효정이 핀잔을 준다. 정실장과 일엽, 양효정이 이 휴양림을 맡은 직원들이다. 모두 네 명이 휴양림 파트를 맡고 있는데, 비번인 이영택은 출근하지 않았다.
“너무 일찍들 출근하셨습니다. 더 늦게 오셔도 되는데.”
일엽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일찍 출근한 그들에게 일엽이 고마움을 우회해서 전한다.
“식사 안 하셨죠? 저도 아침 안 먹어서 도시락 싸왔어요. 같이 드세요.”
효정이 펼쳐놓은 음식들이 식탁 위를 채웠다.
“전 먹고 왔습니다. 많이들 드십시오. 저는 휴양림 한 바퀴 돌아볼 테니까 편하게들 식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대신 점심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좋아요.”
“야! 반찬이 효정 씨 마음처럼 풍성합니다.”
밖으로 나가려던 정실장이 계란을 입힌 햄 하나를 입에 넣으며 칭찬하자 효정이 쑥스러움을 내비친다. 그동안 기혼자들만 있던 휴양림에 일엽이 들어오자 효정은 일할 맛이 더 좋아졌다. 유일한 미혼이었던 그녀는 휴양림 업무와 숲 해설가를 맡고 있다.
휴양림에 자리 잡은 후 일엽은 잊었던 일상의 평안함을 다시 느끼게 됐다. 산악구조대에 있을 때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늘 시간과 사건, 사고에 쫓겼다. 이곳엔 그런 긴박함과 긴장감이 없다. 운동 삼아,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기만 하면 되는 소일거리가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산속의 휴식이었다.
간밤에 야근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날이지만, 일엽은 오늘도 산을 찾아 쓰레기를 주울 예정이다. 다른 곳으로 등산을 가지 않는 날에 하는 소일거리이자 취미이다. 근 두 달 동안 근처의 산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길을 정비했다. 그것은 등산객을 위한 동시에 산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대비해 산의 지형을 외워두는 것이기도 했다.
“일엽 씨 비번이죠? 오늘 뭐해요?”
일엽에게 설거지를 빼앗긴 효정이 미안한 기색으로 묻는다.
“산 좀 둘러보려고요. 왜요?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효정에게 일엽은 깍듯한 존대를 했고, 무슨 일이든 돕고자 했다. 선후배나 상하관계가 뚜렷한 소방직에 있을 때 몸에 밴 습성인 것이다.
“아뇨! 일은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심심해서. 일엽 씨가 설거지하니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단양 시장의 주차장은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예쁜 빛깔의 가을 산이 수면 위에 내려앉아 구름과 함께 넘실대고, 햇빛을 받은 강물이 수만 개의 불꽃으로 반짝반짝 빛을 냈다. 어찌 보면 폭죽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 전구 같기도 했다. 일시에 일어나 산발적으로 터진 불꽃이 강물을 따라 하류 쪽으로 이동했다. 하류에서 소멸된 빛의 불꽃을 아쉬워할 즈음 강의 중간에서 또다시 불꽃이 시작되었다. 전엔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강의 불꽃놀이를 감상하던 일엽이 그 정체를 알아냈다. 불꽃의 정체는 물이 아니라 물고기 떼였다. 수를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멸하는 불꽃놀이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빛의 불꽃놀이인 것이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연분홍, 진분홍, 연노랑의 패딩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흡사 유치원생들 같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머금고 담소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순대 가게 앞을 지나던 할머니들이 얼굴을 마주 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앞에 놓인 큰솥에서 마늘 순대가 먹음직스럽게 쪄지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던 일엽도 군침이 돌지만, 순대는 다음으로 미루고 채소 골목으로 향한다. 채소가게에서 양파와 감자, 당근을 사고 마트에서 당면을 산다. 점심 메뉴를 닭볶음탕으로 정한 것이다.
모든 재료를 사고 주차장으로 가던 일엽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닭을 빠뜨린 것이다. 닭을 사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운동복에 패딩 조끼를 걸친 여자가 일엽에게 알은체를 했다. 난데없는 인사를 받자 일엽이 난처해한다. 모르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예... 안녕하세요?”
“단양에 사세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여자의 얼굴이 기쁨으로 씰룩 인다.
“죄송합니다만, 누구신지…….”
“어머!”
당황한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는다.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에게 일엽이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어요.”
벌게진 얼굴에 창피함이 담긴 여자가 허둥대며 미안해한다. 말을 마친 여자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돌아선다.
“아, 네…….”
잰걸음으로 사라져 버린 여자에게 자꾸 미안하다.
누구지?
여자가 변명만 남기고 사라지자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분명히 나를 아는 것 같은데.
뒤늦게 찾아보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여자는 찾을 수 없었다.
도미는 창피해서 미칠 것 같다. 하지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아니, 소용없을 것도 없다. 어차피 스쳐 지나간 사람이고,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니 그렇게 창피할 것도 없다. 그러나 창피했다. 별것 아니라고 아무리 위안을 해봐도 창피했다.
한 번 본 사람한테 그렇게 반가운 척을 하다니! 도대체 내가 왜 그런 거지? 왜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지? 왜 그 사람도 날 알 거라고 생각했지? 도대체 왜 그 사람 얼굴이 기억난 거지? 그 사람은 날 알지도 못하는데…….
도미는 우울하고 슬퍼진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스물아홉 살씩이나 된 여자가 이런 소녀적 감성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연애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 때 사귀었던 사람도 있었고, 직장 생활할 때 사귀었던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주진 못했다. 10초도 안 되는, 요금소에서의 짧은 만남에 기억으로 남은 사람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더욱 애석하다.
1번 요금소를 지나왔지만 오늘도 청하를 볼 수 없었다. 52조는 몸이 달았다. 성욕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초조함이었다. 청하가 세상에서 없어진 것 같았다. 더는 안 되겠다. 청하를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52조가 생각한다.
청하의 근무처인 단주 톨게이트를 나온 52조가 복주 톨게이트를 거쳐 다시 단주 톨게이트로 되돌아간다.
단주 톨게이트 요금소에 도착한 52조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요금소 직원의 얼굴을 훑는다. 두 번째 요금소에도 청하는 없다.
“요금소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은데요.”
“네, 요금소를 나가셔서 바로 오른쪽으로 올라가시면 주차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주차하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이용하시면 됩니다.”
실망감을 감추고 예의 바른 태도로 묻자, 요금소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안내하는 직원의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여자의 이름은 오동미. 쌀 이름 같아서 기억나는 이름이다. 물론 이 여자 앞에서도 성기를 흔든 적이 있다. 혹시 알아보면 어떡하지?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 넌지시 웃음을 건넨다.
“감사합니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 인사를 건네자 도미가 마주 인사하며 미소 짓는다. 52조는 안심한다. 요금소를 나가는 52조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도미가 차 번호를 확인한다.
낯익은 얼굴인데…….
도미가 의구심을 뒤로한 채 다른 차를 맞는다. 바쁜 와중이라 도미의 의구심이 금세 잊힌다.
52조가 고속도로 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건물을 둘러본다. 낮은 2층짜리 건물이다. 자동 현관문이 열리자 맞은편으로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의 왼쪽 복도 끝에 식당이 있고, 오른쪽 복도 끝에 영업소 사무실이 있다. 복도엔 아무도 없다. 여자 화장실. 주위를 둘러보다 여자 화장실 안을 흘낏거린다.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한다. ‘감시카메라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요금소 사무실로 들어가 재빠르게 안을 훑는다. 역시 청하는 없다. 청하의 근무시간이 아닌 것이다. 청하의 근무시간을 알아내지 못할까 봐 초조해진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머리가 길고 몸이 마른 여자가 창구 안쪽에서 52조를 응대한다. 사십 대 남자가 안쪽 책상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고, 그 외에도 유니폼을 입은 여자 둘이 안쪽 방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사무실 창구의 왼쪽 유리문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52조는 표지판이 원망스럽다. 표지판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저기,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네.”
사무실 안쪽에 정신이 팔려있던 52조가 잠시 머뭇거린다.
“네..... 이게 아직도 남아있어서요. 여기서 환불받으라고 해서.”
52조가 고속도로 교통카드를 내밀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네..... 어머! 이게 아직도 있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자가 정산하는 동안 사무실의 벽을 살핀다. 벽에 52조가 갈망하는 근무시간표가 붙어있다. 그러나 청하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창구와 벽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에 작은 글씨로 쓰인 이름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좌절감이 들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손님! 다 됐습니다. 여기 10400원 받으시고요, 차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차번호는 왜..?”
“아, 별 건 아니고 그냥 확인차 여쭤보는 겁니다. 기록을 해야 해서.”
“네.... 52조.... 아! 아니고! 차가 바뀌었습니다. 53 도 41X4”
여자가 장부에 52조라고 기입했다가 52조에 줄을 긋고 다시 받아 적는다.
“전화번호도 좀…….”
“010-K643-6431”
전화번호를 부르면서도 눈은 끊임없이 벽을 더듬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청하의 이름을 찾아낼 수 없다.
제길!
갑자기 분노가 치솟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 왔는데, 빌어먹을!
잠시 어둠 속에서 헤매던 52조가 밝은 빛을 발견한 듯 좋은 수를 떠올린다.
“죄송합니다만 교통카드를 잠시 주실 수 있을까요?”
52조가 여자에게 정중하게 부탁한다.
“네? 왜요? 이건 저희가 회수해야 하는 건데요?”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두고 싶어서요. 제가 원래 교통카드를 모으는 게 취미인데, 이건 그냥 가져왔네요. 그래서 사진이라도 찍어두려고.”
“네, 그러세요.”
여자가 건네준 교통카드를 창구에 올려놓고 휴대폰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빛 때문에 잘 안 찍히네.
중얼거린 후 교통카드를 왼손으로 들어 눈높이와 맞춘 후 셔터를 연거푸 눌러댄다. 각도와 방향을 달리해 십여 차례를 찍은 후 여자에게 교통카드를 건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진 촬영을 지켜보던 여자가 새침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52조는 여자의 수줍은 미소를 보며 어리둥절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넨다. 여자가 52조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거린다.
“이 팀장! 뭐야? 그 사람? 왜 사진은 찍어대고?”
“취미래요.”
“취미? 취미가 여자 사진 찍는 거야?”
“네? 무슨 여자 사진요? 자기 교통카드 찍었는데.”
“세윤 씨 찍는 것 같던데? 방향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절 왜 찍어요? 그 사람이!”
“아냐! 맞아! 각도랑 방향이 딱 그 각돈데…….”
“박 팀장님은!”
“웬일이야? 이 팀장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이 팀장도 여자였나 보네?”
“뭘요! 내가 언제 부끄러워했다고, 별꼴이야!”
“그렇지, 그렇지! 그래야 이 팀장답지! 근데, 그 남자가 맘에 들었나 보네? 왜? 전화 한번 해봐. 전화번호도 땄겠다.”
“이 보세요! 박 팀장님! 무슨 전화번호를 따요? 업무처리일 뿐이지. 점점 기분 나빠지려고 하니까 인제 그만 하시죠!”
급 싸늘해진 세윤의 표정에, 박 팀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벙한 웃음을 웃는다. 장부와 교통카드를 정리하며 세윤이 52조의 자동차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따로 메모지에 적어 자기 가방에 넣는다.
정말 그 사람이 내 사진을 찍었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름도 물어볼걸…….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지만 이미 남자는 떠나고 없다. 게다가 두더지 같은 박 팀장이 버티고 있으니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세윤은 아쉽기만 하다. 세윤은 52조에게 마음이 끌렸다. 남자는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갖고 있었고, 손도 희고 고왔다. 그렇게 희고 고운 손을 가진 남자라면 거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일 것이고, 햇빛을 많이 보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선도 고왔다. 높고 뾰족한 콧날에 쌍꺼풀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속눈썹도 길고 깊었다. 분명 생각도 깊고 감수성도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는 사람일까? 의사? 아님, 예술가?
낯설지 않은 모습, 귀에 익은 듯, 친숙한 저음의 목소리. 그윽한 남자의 목소리가 사랑을 속삭인다면 무엇이라도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