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톨게이트 7.

7. 평범, 그 이상과 이하

by silvery rain 이혜영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 사세요.

집을 나올 때 하경이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한 말이다. 하경의 엄마는 아빠 친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빠가 죽은 지 막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스산한 가을의 어느 날, 하경의 엄마는 어둠 속에서 아빠의 친구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엄마는 여전히 여자였다.

건설사의 하청 업체 팀장이었던 아빠는 발판 붕괴 사고로 죽었다. 하청 업체와 건설사는 아빠의 죽음을 흥정했고, 죽음은 아빠의 실수로 결론 났다. 건설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하청 업체는 약간의 위자료로 사고를 마무리했다.


문을 열면 세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접이식 책상 겸 밥상 하나, 마트에서 산 행거 하나, 옷 몇 벌, 이불 한 채, 여행용 가방, 책 몇 권. 하경이 가진 전부다.

출근 준비를 위해 거울을 보던 하경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자신의 모습이 엄마를 닮아있다. 십 대 초반까지는 아빠를 닮았던 얼굴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한땐 그것이 좋았다. 선이 굵은 아빠의 얼굴과는 달리, 고운 선을 가진 엄마의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빠의 죽음 이전의 생각이다.


얇은 트렌치코트를 걸치며 하경이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한다.

톨게이트. 10%의 자신감과 90%의 긴장감이 몰려온다. 한숨을 쉬며 벽에 걸린 가방 속에서 털장갑 한 짝을 꺼낸다. 검은색 바탕에 밤색 두 줄이 손등을 가로지른 장갑이다. 하경이 손수 떠 아빠에게 선물한 것이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다 외투 주머니에서 나온 장갑이다.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짝 잃은 장갑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가방 속에 넣어둔 것이다. 이젠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부적이 되었다. 만지작거리던 장갑을 놓고 하경이 방문을 나선다.

하경의 자취방은 다세대주택의 옥상에 있다. 계단을 내려서는데, 오지랖 넓은 이웃집 개가 계단까지 와 짖는다. 평소에 늘 풀려있어서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개다. 하경의 얼굴이나 체취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태 짖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성격이 나쁜 개인 것 같다.

버스 창밖으로 익숙한 경치들이 지나간다. 시장, 한의원, 약국.

3개월 전, 인터넷으로 입사 지원해 면접을 치르고 방부터 구했다. 단양군은 군이라고는 해도 인구 3만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곳이다. 고시원은 당연히 없었고, 원룸은 보증금 300에 월세 30이었다. 100만 원도 안 되는, 그것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빠의 사망 보상금과 위로금은 아파트 대출금 갚기에도 부족했다.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거리로 나앉을 수는 없었다. 그 집은 엄마를 위한 아빠의 선물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 아빠는 벅찬 감정을 누를 수 없었는지, 맥주잔을 기울이다 목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급매로 내놓은 집은 얼마 안 가서 팔렸다. 집이 팔리던 날, 엄마는 이틀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의존적이던 엄마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집을 팔고 나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사 갈 집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소형 아파트라고 해서 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집값을 올리기 위한 것이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젠 집도, 아빠도 엄마도 하경의 곁에 없다. 아빠의 죽음은 하경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짙푸른 물과 장대한 절벽들을 바라보며 하경이 한숨을 내쉰다. ‘하긴, 어쩌면 엄마는 처음부터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삶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하경은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억누를 수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혹시 아빠가 살아있을 때부터?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지? 돈 때문에?’

아파트 대출금을 갚은 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생활비와 등록금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비록 작은 아파트였지만,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생활비라는 것이 그들에겐 없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그 남자였다. 아빠의 친구. 엄마는 그 남자의 소개로 취직했고, 종종 남자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하경에게 등록금을 내밀었다. 엄마의 월급으로는 단기간에 마련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하경은 엄마의 얼굴에 수표를 내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내가 사라지자.

하경이 내린 결론이었다.


희뿌연 햇빛이 아스팔트를 비추고 있다. 차를 주차하고 사무실로 가던 도미가 길가에 쪼그려 앉는다. 깨진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들풀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들풀의 생명력이 경이로우면서도 안타깝다. 언제든지 짓밟힐 수 있는 위험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들풀이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고속도로 요금소...

생각해본 적도 없던 곳이다.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좋게 생각해야지. 재밌잖아. 톨게이트 근무. 스릴도 있고, 사이코·변태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혹시 알아?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될지.

옆 톨게이트인 복주 요금소의 수연은 3년 넘게 봐온 손님과 결혼했다.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간식을 주던 남자가 어느 날 수연에게 꽃다발을 안겼다고 한다.

그런 인연이라면.......

김 씨?

미쳤구먼!

도미가 혼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짓는다.

“도미! 뭐하셔?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제 막 도착한 지숙이 도미를 부른다. 갈색 바바리코트에 스카프로 멋을 낸 지숙의 모습이 화사해 보인다.

“응, 언니!”

지숙을 돌아보는 도미의 웃음에 쑥스러움이 담겨있다.

“뭐 하는 겨?”

“언니 이 풀 좀 봐. 신기하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왔어. 대단하지?”

“그러네! 신기하다, 야!”

“차에 깔릴까 봐 걱정된다.”

“걱정도 팔자다. 걔가 괜히 잡초냐? 끈질긴 생명력이 있으니까 잡초지. 걱정 말어라. 너보다 오래 살지도 모르니까.”

“그런가?”

“그나저나! 으이그, 이 아가씨야! 오늘도 추리닝이냐? 엊그제는 니가 웬일인가 했다. 추리닝을 안 입어서. 근데 또 추리닝이야? 넌 왜 맨날 추리닝이냐? 추리닝이! 너도 시집가야 할 것 아니냐?”

고속도로 사무소 입구로 걸어가며 지숙이 도미의 옷차림을 타박한다.

“시집은 무슨!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그리고 멋 부려봤자 어차피 근무복으로 갈아입을 건데, 뭐!” “그런데 언니 오늘 좀 이쁘다.”

“가을이잖니! 멋 좀 내봤다.”

지숙이 손으로 스카프를 날리며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 탈의실 문을 연, 도미가 짐짓 정중한 태도로 지숙을 들여보낸다.

“어! 하경이 일찍 왔네? 괜찮아?”

“네? 뭐가요?”

먼저 온 하경이 거울 앞에서 근무복 매무새를 매만지고 있다. 탈의실 안엔 열다섯 개의 캐비닛이 디귿 형태로 늘어서 있다.

“바바리 본 거, 괜찮아졌어?”

“아, 네에.... 괜찮아요.”

“난, 너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도미가 ‘하도미’ 라는 이름표가 꽂힌 캐비닛을 열고, 트레이닝복 윗도리를 벗으며 하경에게 말한다.

“얘는? 하경이가 보기에는 여려 보여도 얼마나 강단 있는 앤데, 그만한 일로 관두니? 어디 이 세상에 바바리가 한둘이니?”

“하긴 그래. 동네에서도 그렇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그렇고. 그런 놈 한번 안 본 사람 없을걸?”

“맞아! 아이고, 야! 결혼해 봐라!”

“왜? 결혼하면 맨날 보나 보지?”

도미가 지숙의 옆구리를 찌르며 키득댄다.

“아니! 꼭 그렇진 않고.”

지숙이 씩 웃으며 도미를 한번 흘겨보곤 말을 잇는다. “에이! 드런 놈들!”

“어머! 얘, 이 멍 좀 봐! 너, 오늘도 쌈질하고 왔니?”

겉옷을 탈의하고 속옷만 걸친 도미의 몸을 보며 지숙이 호들갑을 떤다.

“당연하지! 운동 안 하면 뼈마디가 쑤셔서 안 돼.”

“아니, 무슨 여자애가 킥복싱을 하니? 태권도하는 애들은 많이 봤어도 킥복싱하는 애는 첨 봤다. 그나저나 시집도 안 간 애가 얼굴 망가지면 어떡하려고! 이 멍은 또 어떻고! 안 아파?”

“안 아파, 안 아파. 대련하다 맞는 것은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뭐, 내가 망가질 얼굴이나 있나? 스파링 할 땐 헤드기어 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헤드기어 써도 코뼈 부러지더구먼!”

“그건 시합 때나 그렇지. 내가 뭐, 시합 나갈 일 있나? 걱정 마.”

“그나저나! 너, 진짜 몸매 하난 예술이다! 그거 하면 나도 니 몸매처럼 될까?”

“어딜! 타고나야지. 그래도 뭐, 어느 정도 될지는 모르지. 한 10년 걸리면!”

“다시 태어나는 게 낫겠네!”

“그치? 그럴 거야.”

고등학교 때까지의 장래 희망이 경찰이었던 도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 익혔고, 지금은 킥복싱에 빠져있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도미의 몸은 헬스와 줄넘기 등으로 근력과 민첩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참, 언니 가셨던 일은 어땠어요?”

아직도 도미와 지숙이 어려운지, 하경이 극존칭을 써가며 도미에게 묻는다.

“뭐?”

“그거.... 점....”

“점 보러 갔던 거?”

“몰라. 별로 특별한 거 없던데.”

도미가 대답하는 동안 하경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엄마」

하경이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받지 않고 거절 버튼을 조작한다.

“왜 전화 안 받아?”

“별거 아니에요.”

미소 띠었던 하경의 얼굴에 어두움이 스치고 지나간 후, 기다리고 있던 지숙이 대신 대답한다.

“김 씨를 찾으란다.”

“김 씨요?”

잠시 골똘하던 하경이,

“언니! 언니 김 씨잖아요.”

“맞다! 언니가 내 귀인이구나!”

도미가 지숙의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응. 내가 니 귀인이다. 앞으로 잘 받들어 모셔라. 혹시 아냐? 니가 내 며느리 될지. 우리 아들도 김 씨잖냐.”

“맞다! 언니 아들 대학생이지? 나 기다릴 수 있어. 내가 잘 키워줄게!”

“야! 이게 어딜! 하경이라면 모를까. 가자! 하경아.”

지숙이 도미의 팔을 떼어내고 하경의 팔짱을 끼며 탈의실 밖으로 나간다.

“그나저나 너, 시험은 어떻게 된대?”

“뭐? 공무원 시험?”

“응.”

“몰라, 나도.”

“어머, 야! 그런 것도 안 물어보고 뭐 했어?”

“시험 준비한다는 것은 맞췄는데 그다음엔 아무 얘기 없던데? 성질만 죽이라고 하던데. 에이, 그리고 점쟁이가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해주나? 두루뭉술하게 말하겠지. 그래야 먹고 살 테니까.”

“그렇긴 하겠지.”

“공부 열심히 하면 붙는다고 말하겠죠!”

조용히 듣고 있던 하경이 덧붙인다.

“오, 하경이가 점쟁이네!”

늘 조용하던 하경이 농담조의 말을 하자 지숙과 도미가 하경을 놀린다.

“도미야! 공부 열심히 해라! 인생 길지 않다. 삼십 되면 금방 사십 온다. 내 말 새겨들어라. 너, 여기서 너무 시간 낭비하지 마라.”

“알았어. 딱 1년만 맘 편히 지내고, 그다음엔 죽도록 공부할 거야. 걱정하지 마, 언니.”

여동생이 없는 지숙은 평소 도미와 하경이 여동생 같아 안쓰럽고 애틋했다. 요금소 일이 미혼 여자가 하기에는 고되고 드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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