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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30.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32.

32.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세윤에게 옷을 입히고 물을 먹인 똥파리가 남은 밥을 물에 말아 세윤에게 먹인다. 그러나 세윤이 삼키지 못하자 숟가락으로 으깨어 입에 넣어준다. 똥파리의 손가락이 닿았던 밥에 구역질이 나지만 참고받아먹는다. 밥을 삼키다 세윤이 토악질을 하자 똥파리가 등을 쓸어주며 중얼거린다.

 “육시랄 놈이 밥도 안 먹이고 그 지랄을 해 댔으니 몸이 축났지. 굶다 먹어서 그러는 거여. 어여 먹어. 꼭꼭 씹어 먹어. 가만있어봐. 내가 씹어줄까?”

 세윤이 역겨움을 참으며 똥파리에게서 그릇을 받아 물을 마신다.

 “그려, 그려. 물이라도 실컷 마셔. 밥물이니께 힘이 좀 날 것이여.”

 밥이 섞인 물을 마시자 한기가 가시고, 어지럼증이 약해진다. 기절한 채 쓰러져있는 52조가 보인다. 자신을 구하려다 죽어가는 52조를 보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희미한 랜턴의 그림자 속에 버려져있는 52조는 언뜻 봐도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다. 희고 곱상하던 얼굴은 멍들고 찢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었고, 날렵하던 콧날은 부러진 칼처럼 한쪽으로 휘어 애처로워 보였다.

 “왜 그려? 왜 그런 얼굴이여? 쟈가 불쌍혀서 그려? 너, 쟈하고 참말로 그런 관계여?”

 “아니, 아니에요.”

 세윤이 슬픈 표정으로 돌이질 한다.

 “그런데 왜 그려? 여그가 아픈 것처럼.”

 똥파리가 세윤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애인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냥…….”

 세윤이 쓰러지듯 똥파리에게 몸을 기댄다.

 “그려? 그렇지?”

 똥파리가 흥분으로 목소리를 떨며 세윤의 엉덩이를 그러쥔다. 그러자 세윤이 똥파리의 품을 파고들며 매달린다.

 “우리도 저렇게 될까 봐 무서워요. 그 아저씨 너무 무서워요.”

 “걱정하지 말어. 내가 지켜줄 것이여. 우리는 차가 웂으니께 우선 숨어야 혀. 그려고 그놈이 우릴 찾아 댕길 때 몰래 나가야 혀. 알겄어? 나가믄 우리 멀리 도망가서 사는 것이여. 너는 어차피 그런 몸이 돼놔서 딴 데 시집 못 가는구먼. 알겄지?”

 세윤을 달래면서도 똥파리의 입과 손은 세윤의 몸 위에서 분주하다.

 슬픈 표정의 세윤이 작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려, 그려.”

 똥파리가 세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끌어안는다. 세윤을 안고 있던 똥파리의 입술이 세윤의 입술을 내려 덮는다. 담배냄새와 섞인 입 냄새에 욕지기가 올라오지만 눈을 질끈 감아 억누른다. 그러다 놀라 눈을 뜬다. 세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치켜뜬 눈에 핏발이 들어찬다. 갑자기 똥파리가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니년이 시방 날 무시 허는 것이여? 내가 구역질 난다 이거여?”

 똥파리의 손길을 피하려 고개를 저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똥파리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육시랄 년! 내가 니년헌티 속을 줄 알었지? 니년이 시방 날 칠푼이로 아는 것이여?”

 똥파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팔을 휘저으며 닥치는 대로 잡아 뜯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세윤의 손에 똥파리의 얼굴이 들어온다. 세윤이 똥파리의 얼굴을 손톱으로 후벼 판다.  

 “그려, 그려! 이년이 드디어 제 뽄새를 드러내는구먼! 그래 봤자 니년 목심은 내 것이여! 내 손안에 달려있다, 이것이여!”

 똥파리의 얼굴을 쥐어뜯던 세윤이 손톱을 접고 똥파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갑작스러운 세윤의 변화에 똥파리가 방심한 사이 세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말을 내뱉는다.

 여보...

 여보? 똥파리의 손이 놀라 떨어진다.

 그려, 그려. 미안혀, 미안혀.

 똥파리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세윤의 손이 힘을 잃고 떨어진다.

 “죽은 거여? 죽은 것이여? 안 돼여, 안 돼여! 임자!”

 똥파리가 세윤의 몸을 흔들며 끌어안자 세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안 죽은 거지? 안 죽은 거 맞지이?”

 세윤이 사라져 가는 거품처럼 엷은 미소를 보인다.

 “그려, 그려.”

 똥파리가 세윤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눈물을 흘린다.

 “아저...씨. 나 할 수 있어요.”

 “뭘?”

 “아저씨에 대한 내 마음....”     

 세윤의 손에 칼이 쥐어진다. 순간 세윤의 마음이 방황한다. 똥파리를 찌를까? 불가능하다. 마음이 정리되자 손이 더 떨린다. 칼을 떨어뜨리지 않게 두 손으로 움켜쥔다.     

 

 “잘했구먼. 어이구, 잘했구먼. 이제 되얐어.”

 둘의 앞엔 52조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다. 52조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똥파리가 피 묻은 세윤의 손에서 칼을 회수한다. 세윤이 무너져 내리며 울음을 토해낸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잘했구먼. 이제 넌 내 것이여.”

 똥파리가 세윤의 등과 얼굴을 쓰다듬으며 끌어안는다. 그때 먼 곳으로부터 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공포에 질린 세윤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킨다.

 아저씨! 아저씨!

 세윤이 똥파리에게 매달리며 몸을 떤다.
  “걱정하지 말어, 아가! 어서 숨어! 어서 숨어! 내 이 육시랄 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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