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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31.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33.

33.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세윤을 칸막이 안으로 들여보낸 후, 슬랩 잭을 움켜쥔 똥파리가 출입구 옆에 몸을 숨긴다. 오 사장 역시 한 손엔 맥주 봉지, 한 손엔 여차하면 휘두를 체인을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똥파리의 슬랩 잭이 한 발 앞서, 오 사장의 머리에 구멍을 낸다. 머리에 구멍이 났어도 오 사장은 침착하다. 상황이 어처구니없어서 믿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오 사장이 자신의 머리에 난 구멍을 확인한다. 구멍은 그리 크지 않았다. 찢기고 뭉개져 피가 퐁퐁 새어 나왔다. 오 사장은 이해할 수 없다. 왜 퐁퐁이란 단어가 생각났는지, 다른 사람의 머리도 아니고 자신의 머리통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데, 왜 맑은 물이 샘솟는다는 표현에 어울릴만한 단어인 퐁퐁이란 말이 생각났는지. 퐁퐁은 주방세제의 이름이기도 하지. 오 사장의 머리에 스친 생각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웃어? 웃어? 이 육시랄 놈이 그래도 웃고 자빠졌네.”

 오 사장의 웃음을 보고 똥파리가 분개하며 내뱉는다. 실실 웃는 오 사장의 웃음을 똥파리는 비웃는 웃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개새끼가 그래도 나를 쪼개고 있네, 씨발!”

 똥파리가 오 사장의 배에 칼을 쑤셔 박는다. 쌀부대처럼 쏘옥 칼을 흡입한 배가 칼을 빼자 쌀 대신 피를 쏟아낸다.   

 자신의 배를 움켜쥔 오 사장이 쿨럭, 피를 쏟아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 사장의 다른 손은 여전히 체인을 움켜쥐고 있다. 피를 쏟으며 비틀거리는 오 사장에게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 똥파리가 악을 쓰며 칼을 휘두른다. 비틀, 쓰러지는 가 싶던 오 사장이 칼을 피하며 똥파리에게 체인을 날린다. 똥파리의 얼굴과 목에 체인이 감겼다 풀리며 시뻘건 레이스 자국이 남는다. 똥파리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 눈을 감싸 쥔다. 차지게 감긴 체인이 눈동자를 후벼 판 것이다. 호들갑스럽던 똥파리의 춤사위에 빈틈이 생기자 오 사장이 똥파리의 목을 감아 조른다. 고통 속에서 버둥대던 똥파리가 날을 뒤로 돌려 날렵한 속도로 연거푸 배에 칼침을 놓는다. 마치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는 것처럼 잰 솜씨이다.

 “이 마구 새끼야! 죽어! 죽어! 죽어!”

 칼이 배에 짧게 짧게 꽂힐 때마다 또 피가 퐁퐁 솟아 나온다. 어떤 곳에선 몽글몽글 솟아 나오기도 한다. 엄청난 고통 때문에 오 사장 손아귀의 힘이 빠지자 똥파리가 체인에 손을 넣는다. 손바닥이 찢기고 터져 고통스럽지만 있는 힘껏 악을 쓰며 체인을 벗겨낸다. 똥파리의 목이 루비 목걸이를 한 듯 점점으로 붉게 빛나더니, 깨진 루비 알들이 흩어진 듯 붉게 번진다.

 “내, 오늘, 꼭, 너를, 이 손으로 죽이고 말 거다.”

 전의는 상실했지만, 살의로 무장한 오 사장이 으르렁댄다.

 “내가 니놈을 죽일 것이구먼. 널 죽이지 못하면 난 산 목심이 아니여. 니놈은 꼭 내가 죽이고 말 것이여.”

 똥파리가 한 말이다. 똥파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 사장이 체인을 휘두른다. 온통 피 칠을 한 오 사장의 모습이 분장을 한 연극배우처럼 과장적으로 보인다. 다시 체인을 맞은 똥파리가 펄쩍펄쩍 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좋아서 뛰는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하다.

 둘의 혈투를 숨죽이고 지켜보던 세윤이 바닥의 옷을 주워 똥파리에게 던진다. 옷을 갑옷처럼 두른 똥파리가 오 사장의 틈을 노려 목을 공격한다. 다시 한번 목에 칼이 꽂히자 오 사장이 체념한 듯 외친다.

 “왜?”

 “왜? 난 첨부터 니 놈을 안 믿었어. 그 속에 믿을 놈이 워딨어? 그중에서도 난 니 놈을 젤로 안 믿었어. 니 놈의 재수 없는 면상과 비웃음을 보믄 사지가 오그라들었어. 내 애비 새끼하고 똑같기 때문이여. 그놈이 어떻게 됐는지 알어? 내가 찔렀어. 그놈의 뱃돼야지를 내가 찔렀다니께. 시방 니 놈 꼴이 꼭 그 모냥이라니께.”

 죽어! 죽어!

 말을 마친 똥파리가 오 사장의 목을 잡고 칼로 그어대자 오 사장이 마지막 힘을 다해 똥파리의 목에 체인을 감는다. 둘은 춤을 추듯 마주 잡고 서로를 흔들어댄다. 마지막 춤에 열중해 있는 그들에게 세윤이 접근한다. 세윤의 손에는 1.8리터들이 플라스틱 우유병이 들려있다. 둘의 곁으로 조용히, 그러나 민첩하게 다가간 세윤이 엉겨 붙어있는 오 사장과 똥파리에게 우유병 안의 액체를 뿌린다. 피에 젖어 마지막 춤을 추던 오 사장과 똥파리가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안다가 자신들의 얼굴과 몸, 상대방의 얼굴과 몸을 더듬으며 녹아내린다. 입만 남은 똥파리가 세윤에게 묻는다. 임자! 임자! 시방 내한테 왜 이러는 것이여?

 세윤이 비웃음을 날리며 나머지 액체들을 마저 뿌린다. 세윤의 몸과 팔 위에도 액체가 방울방울 튀지만 내성이 생긴 세윤은 그 정도는 아랑곳도 않는다. 한 방울씩 맛을 보여준 오 사장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오 사장과 똥파리의 타는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자 세윤이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둥그런 보름달이 컨테이너 박스 안을 비춘다. 예상치도 못한 밝은 달빛의 공격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세윤이 멍해진다. 숲 속의 하늘엔 별이 참 많았다. 세윤이 납치된 지 19시간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연말인데, 행복하지 못한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올 한해  잘 지내셨지요?

새해에도 꼭 건강들 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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