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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29.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31.

31.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10월 29일 저녁 8시 31분. 오 사장의 잘못이 발생한 시각.

 밖의 동태도 살필 겸 오 사장이 외출을 결심한다. 정신을 잃은 세윤을 확인하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다. 그들이 세윤을 납치한 이후로 열여덟 시간이 넘어가는, 저녁 8시 32분이다. 칸막이 밖으로 나오면서 오 사장은 자신만 알 수 있도록 방을 배치한다. 칸막이 앞에 바리케이드를 쳐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 사장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다. 오 사장은 똥파리와 같은 화장실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화장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같은 곳에다 정액을 배출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배운 놈이고, 청결한 놈인 자신은, 무식하고 더러운 물총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추잡스러운 촌놈과 장난감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김형, 잘 지키고 있어. 김형이 좋아하는 치킨하고 맥주 사다 줄게. 그리고 기집애도 한번 구해보지. 아주 잘하는 년으로다. 두 년 데리고 노는 것도 재밌잖아?”

 “기여? 공갈치는 거 아니지?”

 “딴짓하지 말고.”

 “아녀, 아녀! 내가 뭔 딴짓을 한다고 그랴?”

 벤츠 소리가 멀어지자 똥파리가 안절부절못한다. 트랙을 도는 운동선수처럼 컨테이너 박스 안을 돌며 초조해한다. 컨테이너 박스 안을 아무리 돌아도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아이에게 손에 쥐고 있는 사탕을 못 먹게 하는 것처럼, 벌거벗고 쓰러져있는 여자를 그냥 놔두라는 것은, 똥파리에겐 고문이며 학대인 것이다. 바리케이드를 따질 겨를도 없이 쌓인 물건들을 쓰러뜨리며 똥파리가 칸막이 안으로 들어선다. 똥파리의 눈앞에 여자의 하얀 살결이 펼쳐진다. 여자의 그곳이 꽃처럼 벌어져 꿀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세윤은 잡혀온 이후 처음으로 꿈을 꾸고 있었다. 현실과 괴리감이 없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세윤은 똥파리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똥파리가 자꾸 입을 맞춰댔다. 구역질이 났지만 세윤은 참아냈다. 분노한 오 사장의 눈길을 느끼면서 세윤은 똥파리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 일은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눈을 뜬 세윤이 처음 느낀 것은 혐오감이었고, 그다음은 공포였다. 비명을 지르며 똥파리의 얼굴을 잡아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공포감이 너무 컸다. 울음과 공포를 삼키며 세윤이 주위를 둘러본다. 오 사장이 없는 것 같다. 세윤이 똥파리에게 다정하면서도, 슬픈 미소를 보낸다. 세윤에게 엎어져있던 똥파리는 어리둥절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여자의 친절한 미소였다. 그 미소는 똥파리가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엄마의 미소였다. 똥파리를 감싸 안아주는 미소였고, 똥파리에게 미안해하는 슬픈 미소였다. 

 “왜?”

 세윤의 몸 위에서 조급하던 똥파리가 동작을 멈추고 세윤에게 묻는다. 

 아저씨도 힘들죠?

 사라져 가는 물방울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세윤이 똥파리를 위로한다. 

 “?”

 아저씨한테 미안해요.  

 “무신 소리여?” 
  아저씬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요. 착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아저씨. 

 꺼져가는 세윤의 말을 들으며 똥파리가 눈을 끔뻑인다. 

 오세요. 안아드릴게요.

 세윤이 팔을 움직여보지만 양쪽이 묶여있어서 똥파리를 안을 수 없다. 

 미안해요. 안을 수가 없어요. 묶여있어서 안을 수가 없어요.

 세윤이 눈물을 흘린다.

 "그려. 내가 너 풀어 줄 테니께."

 "아저씨..."

 “너, 시방 나헌티 수작 부리는 것이지? 내가 속을 줄 알었냐? 이년아! 니가 아주 날 좆으로 보고 있구먼.”

 세윤의 한쪽 팔을 풀던 똥파리가 갑자기 돌변해 눈을 부라리며 세윤의 뺨을 갈긴다. 

 "아녜요. 아니에요. 아저씨! 아저씨! 제말 좀 들어보세요."

 똥파리의 발길질 속에서 세윤이 한쪽 팔을 내저으며 울부짖는다. 

 "뭐여? 니년이 오가 놈 믿고 날 물로 보는 것이여. 이 개 쌍년이!"

 "아니에요.. 아저씨. 아저씨! 그 아저씨가 죽인다고 했어요. 그 아저씨가 아저씨 죽인다고 했어요."

 "뭐여?"

 "그 아저씨가 분명히 그랬어요. 아저씨 죽일 거라고."

 "뭣이여? 오가 놈이 왜 니년헌티 그런 말을 혀?"

 "그 아저씨가 계속 중얼거렸어요.... 그 짓 할 때. 그 아저씨는 그 짓 할 때 중얼거려요."

 똥파리가 희번덕한 눈으로 세윤을 노려보다 의심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니 시방 공갈치는 거 아니지? 공갈친 거 탄로 나면 니 오늘 육시를 내버릴 것이여."

  "절대 아니에요. 도망가야 돼요. 아저씨. 아저씨.... 그리고..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저씨 따라갈게요. 저 아저씨랑 가고 싶어요."

 세윤이 꿈속에서처럼 똥파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애원한다. 세윤의 느닷없는 행동에 똥파리가 당황한다. 

 "아저씨, 제발... 제발.."

 세윤이 똥파리의 얼굴을 가슴에 품는다.

 "그려. 일단 살고 보는 것이여. 뒷일은 뒤에 가서 생각허고. 절대로 그놈 헌 티 죽는 일은 없을 것이여. 니는 내 것이구먼. 죽어도 내 손에 죽을 것이구먼!"

 세윤의 젖가슴에 얼굴을 비비던 똥파리가 중얼거린다. 

 아저씨! 빨리 가야 돼요. 무서운 아저씨가 오면 우리 둘 다 죽을 거예요. 

 세윤이 똥파리를 끌어안으며 조용조용 속삭인다. 

 무서운 아저씨가 우릴 죽일 거예요. 우리 빨리 도망가야 돼요. 

 똥파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세윤이 재차 속삭인다. 

 “내가 못 죽이게 할 것이여. 절대 안 되여. 절대로다가 내가 못 허게 헐 것이여. 내가 먼저 그놈을 죽일 것이구먼.”

 젖가슴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똥파리가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세윤이 똥파리의 손바닥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며 슬픈 눈길을 보낸다. 

“옷 먼저 입어라. 우선 숨어야 혀. 숨어야 혀.”


 벤츠를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간 오 사장이 마을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작은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TV에 정신이 팔려있던 성진 마트 주인은 손님이 오건 말건 관심이 없다. 

 “이 동네에 치킨 가게 있습니까?”

 “차로 5분 가야 하니더.”

 “그렇습니까? 맥주 좀 주세요.”

 “거그 있니더.”

 가게 주인이 굽은 허리를 펴며 냉장고를 가리킨다. 안면골격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마른 주인 남자는 힘주어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허리를 기역자로 접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장사엔 통 관심이 없었고 매사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불친절한 남자에게 신경이 쓰이려 하는 시점, TV에서 앵커의 목소리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단주 톨게이트에서 여직원을 납치한 용의자들의 인상착의가 확보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강 대석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거스름돈을 건네준 남자가 관심 없다는 듯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서둘러 맥주 값을 지불한 오 사장이 모자를 눌러쓰고 가게를 나간다.

 경찰이 자신들을 용의자로 지목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따라왔던 그놈까지 용의 선상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놈은 왜 따라왔을까? 그리고 그놈을 공범으로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 사장은 모든 것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오 사장의 마음이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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