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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28.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30.

30.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단양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이십여 년을 보낸 도미로서는 이번 사건이 믿기지 않았다. 계절마다 다양한 아름다움과 혜택을 주는 이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물론 범인들은 단양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산이, 계곡이,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속상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단양의 산과 강이 다르게 보였다. 생명력이 울창하던 숲은 음침해 보였고, 청량감을 주던 강은 스산해 보였다. 기암절벽은 괴기스러워 보였고, 아름다운 계곡은 변덕스러워 보였다. 도미는 이곳이 싫어졌다. 

 “도미야! 너, 괜찮니?”

 지숙이 도미의 어깨를 껴안으며 앉는다. 도미의 얼굴이 몹시 수척하고 어두워보였다.

 “응. 난 괜찮아요.”

 “큰일 날 뻔했다. 하마터면 니가…….” 잠시 입을 다물었던 지숙이 말을 잇는다.     “세윤이, 걔 어떡하니?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어떡하면 좋다니?”

 “그러게…….”

 “참, 무서운 세상이다, 무서운 세상! 감시카메라 있으면 뭐 한다니? 나쁜 놈들이 죄짓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그러게.”

 “용의자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출소자라며? 강간 살인했던. 도대체 왜 그런 놈들을 살려두는지. 나오면 또 그런 짓 해 처지르는데.”

 “......”  

 “무서웠지? 니가 큰 일 했다. 빨리 신고했으니까 금방 잡힐 테지. 그나저나 무서워서 그 일도 못 해 먹겠다.”

 “언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난 그만두려고.”

 “글쎄, 좀 보고. 지금은 어차피 남자 직원들이 부스 하나만 지키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나도 고민이다. 애들 아빠는 당장 그만두라고 난리긴 한데.”

 갑질하는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인데, 이젠 목숨마저 위협당해야 하는 요금소 직원들의 신세가 서러워서 지숙이 연거푸 한숨만 내쉰다. 

 “언니, 미안해요. 이럴 때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팀장이 그렇게 된 마당에 난, 더 있기가 좀 그래. 팀장 납치당하기 전에 그런 일도 있어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두서가 없는 도미의 얘기에 고뇌와 심란함이 뒤섞여 있다. 

 “도미야! 너, 혹시 니탓 하고 있는 거니?”

 “아니, 뭐. 내 탓이라기보다... 모르겠어. 걜 너무 많이 미워해서.”

 그렇게 강해 보이던 도미가 눈물을 흘리자, 더 안쓰러워 보였던지 지숙이 냅킨을 주며 다독인다. 

 “하경이도 그러더라. 아까 나랑 통화했는데, 자기 대신 팀장이 납치된 것 같다고. 그게 말이 되니? 하경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하면 넌 하경이한테 뭐라고 할 거야? 그런 것 같다고 할 거니?” 

 대답을 하지 못하는 도미를 대신해 지숙이 말을 잇는다.

 “아니지? 봐! 아니잖아. 아니야! 너도 마찬가지야. 하경이한테 해 줄 말을 너 자신한테도 그대로 하면 돼. 너랑 하경이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우습다. 잘못한 건 그놈들이고, 나쁜 것도 그놈들이야. 그놈들 말고 또 잘못한 놈들이 있다면 그런 놈들을 쉽게 놔주고 벌주지 않는 놈들이고, 요금소 직원들을 쓰고 버리는 휴지조각 취급밖에 안 하는 놈들이야. 그 사람들은 우리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잖아. 안 그래?”        


 52조의 차를 조사하던 경찰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52조의 차 안에서 변태적인 성기구와 여자들의 속옷이 나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트북에서도 변태적인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사진들은 아이들이나 여자들의 치마 속이 찍혀있거나 가슴 등을 몰래 촬영한 것이었다. 52조가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톨게이트의 CCTV 곳곳에 담겨있었다. 차를 바꾸기 전, 52조 X69X를 탔을 때의 노출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요금소를 탐색하는 장면이 여러 장소, 다양한 시간대에 잡혀있었다. 어쩌면 52조가 주범일지도 모른다고 경찰은 추측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생계형 범죄부터 정치범까지. 먹고살기 위해서 저지르는 놈들도 있고, 홧김에 저지르는 놈들도 있고, 복수를 하기 위해 저지르는 놈들도 있다. 남의 것이 탐나서 저지르는 놈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지르는 놈들, 더 많이 갖기 위해 저지르는 놈들... 가지각색이고 각양각색이다.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단순하다고도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를 때만큼은 난 절대자이다. 그게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다. 나에게는 그게 누구든, 내 손안에 든 ‘그것’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를 저지를 때만큼은 나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절대자인 내가 만든 법이다. 그런데 이놈이 지금 나한테 반기를 들고 있다. 이렇게 더럽고 추잡하고, 대가리 나쁜 물총 새끼가. 

 똥파리의 칼에 찔린 오 사장이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린다. 슬랩 잭으로 강타당한 머리에선 이미 시뻘건 피가 흘러나와 왼쪽 눈을 적시고 있다. 

 “이 새끼! 이 더러운 물총 새끼! 니가! 니가 감히!”

 “그려, 이 마구 같은 놈아! 넌 마구 새끼여. 넌 그놈하고 똑같어. 날 이렇게 만든 그 개새끼 하고 똑같단 말이여.”

  똥파리 역시 오 사장의 체인에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다. 체인으로 졸렸던 목은 붉은 보석이 박힌 듯, 손전등 불빛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내, 오늘 너를 꼭 이 손으로 죽이고 말 거다.”

 피 때문에 보이지 않는 눈을 닦으며 오 사장이 체인을 휘두른다. 오 사장의 체인이 다시 몸에 닿자 똥파리가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른다. 멀리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세윤이 똥파리에게 옷을 던진다. 잠시 오 사장이 피를 닦는 틈을 타 똥파리가 옷을 주워 팔에 감는다. 핏빛 어둠 속에서 오 사장이 다시 체인을 휘두르지만 똥파리의 옷에 감길 뿐이다. 부상을 덜 입은 똥파리가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게 날아 오 사장의 목에 또 한 번의 칼침을 놓는다. 오 사장의 목에 쑤욱 들어가는 감각을 느끼며 똥파리는 짧은 칼날을 아쉬워한다. 왼쪽 목을 찔린 오 사장이 악을 쓰며 무서운 힘을 내 똥파리의 목을 조른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세윤이 플라스틱 우유 통을 들고 둘에게 접근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유 통을 들고 접근해오는 세윤을 보며 오 사장이 뼈저리게 후회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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