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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26.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8.

28.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유일한 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한 도미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종에 대한 감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 창문 밖으로 요금소가 있고, 요금소의 오른쪽 창구, 범인에게 끌려가던 팀장..... 그때 기다리고 있던 차의 뒷모습. 안갯속에서 번지던 미등의 붉은빛. 미등 위에서 반짝이던 마크....

 도미가 인터넷으로 톨게이트 CCTV에 잡힌 검은색 중형차들을 검색한다. 제네시스, 그랜저, 벤츠, K7, SM7... 차들을 검색하다 그전엔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된다. 차들의 후미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째진 눈처럼 올라간 것, 축 처져 보이는 것, 유난히 크게 번쩍거리는 것, 옆으로 긴 것. 차들의 뒷모습은 표정을 갖고 있었다. 무표정의 제네시스, 심드렁한 표정의 K7, 코마개를 한 모습의 그랜저, 귀여운 표정의 SM7...... 맞다! 웃고 있는 표정. 그 차는 웃고 있었다. 웃는 표정의 중대형 차들을 검색한다. SM7도 웃고 있는 것 같았고, 제네시스도 웃고 있는 것 같고, 벤츠도..... 벤츠?     


 도미와 헤어진 후 일엽은 사고차량이 있던 현장으로 다시 향했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들을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사건 현장의 폴리스라인을 지나가며 범인의 생각을 유추해본다. 범인들은 단양 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엽 차의 블랙박스나 단양의 CCTV엔 범행차량인 벤츠가 찍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벤츠는 풍기 방면의 CCTV에도 찍혀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벤츠는 농로를 거쳐 산길을 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도미와 일엽의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수사결과, 톨게이트를 지나간 벤츠 두 대 중 한 대인 01다 34XX는 도난차량이었고, 이미 고속도로 사고유발에 관한 신고가 접수된 차량이었다. 뿐만 아니라 벤츠에 타고 있던 출소자의 신원이 파악됨에 따라 벤츠 운전자의 신원도 좁혀진 상황이었다. 단양 주변지역인 문경, 영주, 충주, 제천, 영월, 봉화, 예천, 괴산 등지의 CCTV를 검색했지만 벤츠는 잡히지 않았다. 철저하게 CCTV를 피해 간 것이다. 따라서 경찰은 CCTV가 없는 곳만을 수색해야 했고, 그 시각에 지나간 차량들의 블랙박스를 일일이 조사해야 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평일 그 시각에 산길을 지나간 차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 후 여섯 시간 만에 눈을 뜬 엄마는 눈물을 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왜 그랬어?”

 대답이 없는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경은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왜 그렇게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에겐 엄마만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아빠 외에 다른 남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에 여지를 둔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다. 엄마만 살아 있으면 된다는 것을. 엄마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요. 엄마가 행복하면 돼. 엄마, 그냥 살아만 있어줘.”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던 엄마가 다시 잠들자 성우가 하경을 데리고 휴게실로 나온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성우가 하경에게 우유와 빵을 건넨다. 하경이 고개를 저으며 받지 않자 성우가 우유를 개봉해 하경의 입에 대준다. 하경이 마지못해 우유를 받아 든다. 

 “어머니는 괜찮으시니까, 너도 몸 추슬러야지. 다치신 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까, 너도 먹고 좀 쉬어.”

 “고마워요. 오빠도 이제 집에 가세요. 엄마도 한고비 넘겼으니까 괜찮아요.”

 하경의 말에 성우가 난감함을 느낀다. 이도 저도 아닌 하경과의 관계가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 도로공사 단주 영업소에서......」     

 단주 톨게이트라는 명칭이 나오자 자연스레 시선이 텔레비전에 집중된다.     

 「..... 여직원 납치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제, 10월 29일 새벽 2시 30분경 단주 톨게이트 직원 이 모양이 요금소 근무를 하던 중 벤츠를 탄 괴한들에 의해 납치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핏기가 가신 하경이 성우의 팔을 더듬어 잡는다. 성우가 무의식 중에 하경의 손을 그러쥔다. 둘의 시선이 TV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뉴스 멘트가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자 성우가 도미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속의 도미는 놀랍고도 무서운 소식을 전했다. 하경 대신 근무를 섰던 팀장이 납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비보로 인해 넋을 잃은 하경은 복잡한 심경이 되어 울 수도 없었다. 

 성우를 보내고 난 후 하경은 잠든 엄마의 옆에서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무섭고도 미안한, 안도하는 눈물을.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에 수치심이 들어도 하경은 안도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잠든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하경은 엄마에게 감사했다. 엄마가 자신을 구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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