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Dec 27.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9.

29.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끝이 없을 것 같던 오 사장의 집요함에 시달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세윤이 눈을 뜬다. 자신이 기절을 했던 것인지, 잠이 들었던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세윤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냄새였다. 납치범들이 밥을 먹고 있는지 음식 냄새가 뱃속을 요동치게 했다. 납치당한 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유린을 당했지만, 지금껏 먹은 것이라곤 놈의 정액뿐이다. 악몽이 시작된 지 열다섯 시간, 세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여의치 않았다. 놈의 괴롭힘보다도 세윤의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절망과 좌절, 그리고 공포감이었다. 그 세 가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것이 세윤의 생각을 방해하고 나섰다. 굶주림이었다. 배고픔은 세윤을 점점 인간이하의 본능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물에 대한 갈증도 심했다. 물이라도 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았다.

 물.. 물 좀.. 주세요...

 자신의 목에서 울리는 가느다란 소리를 듣자 슬픔이 북받쳐 올라온다. 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온몸이 멍투성이로,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으며, 하체에서는 어쩌지 못할 만큼의 묵직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물 좀 줄까?” 

 오형이란 놈이 인자한 목소리로 물어오자 몸서리가 처지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아낸다. 

 네.

 세윤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배도 고프겠지.”

 놈이 여전히 자상한 목소리를 내며 이해한다는 어투로 세윤을 상대한다. 평상시엔 너그러운 어조의 놈이지만, 세윤을 범할 때의 놈은 180도 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물을 주면.....” 놈이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간다. “물을 주면 착한 아이가 돼야 돼. 알겠지?”

 오 사장이 세윤의 앞에다 물을 조금씩 흘리며 묻는다. 놈의 왼손은 세윤의 밑을 주무르고 있다. 물을 본 세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입술을 핥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오 사장이 세윤의 배꼽에 물을 붓는다. 냉기에 소름이 돋지만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세윤은 너무나 목이 말랐다. 물이 배꼽을 타고 납작한 배를 지나 사타구니 사이로 흘러내린다. 

 “자, 마셔.”

 맹목적인 갈증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물을 따라가지만 손목이 고정된 세윤은 물을 먹을 수 없다. 세윤이 다른 손으로 매트리스에 스며든 물을 찍어먹다 그것도 부족해 배꼽과 사타구니에 묻은 물을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오 사장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을 미끼로 세윤을 재차 겁탈한다. 찔끔찔끔 주는 물을 받아 마시며 세윤은 악마의 얼굴을 마음속에 각인한다. 악마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 이제 물을 마셨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지?”

 엎어져있는 세윤을 쓰다듬으며 오 사장이 묻는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눈물을 흘리며 세윤이 고개를 내젓는다. 

 “네가 아직도 맛을 덜 봤구나?”

 오 사장이 피우던 담뱃불을 들이대며 세윤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킨다. 눈물로 범벅이 된 세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 나갈까?”

 세윤의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주며 오 사장이 속삭인다. 흰 블라우스만을 걸친 세윤이 오 사장의 손에 이끌려 나오자 똥파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세윤을 반긴다. 제대로 된 상처치료를 받지 못한 52조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형, 이제 나, 나도 할 수 있는 거여?”

 똥파리가 세윤의 블라우스 자락을 들추려 하자 오 사장이 똥파리의 손을 쳐낸다.

 “아직 안 돼. 할 일이 있어.”   

 오 사장이 52조의 상처 난 배에 소주를 뿌린다. 그러자 52조가 비명을 질러대지만 막힌 입이라 신음소리만 난다. 세윤이 고개를 돌린다. 

 “왜? 애인이 고통스러우니까 괴로운가? 그러니까 니 손으로 고통을 끊어줘야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애인 아니에요.

 세윤이 도리질을 하며 부정하자 오 사장이 세윤의 머리채를 끌어 52조의 앞에 앉힌다. 52조는 고개를 흔들며 흐린 눈으로 오 사장과 세윤을 번갈아 쳐다본다. 52조의 눈에는 공포와 분노가 공존하고 있다. 

 “야! 얘가 니가 애인 아니라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오 사장의 질문에 52조가 완강하게 부인하며 도리질을 한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살겠다고 지 애인을 부정해? 그럼, 넌 뭐야? 이 새끼야! 애인도 아니라면서 왜 따라온 거야?”

 오 사장이 52조의 상처를 발로 짓이기며 욕을 해댄다. 고통에 신음하는 52조를 보다 못한 세윤이 옆에 있던 똥파리의 팔에 매달려 울며 주저앉는다. 그 모습을 본 오 사장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52조를 걷어찬다. 아랫배를 걷어 차인 52조가 토하기 시작한다. 52조의 토사물이 피와 뒤섞여 역한 냄새를 내자 오 사장이 자신의 신발을 이불에 비벼 닦곤 세윤을 일으킨다. 오 사장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세윤이 똥파리의 팔에 매달리자 똥파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세윤의 가슴을 뒤에서 끌어안는다. 오 사장이 더러운 벌레를 쫓듯 똥파리를 밀치며 세윤을 거칠게 떼어낸다. 세윤이 울음을 울며 애처로운 눈길을 똥파리에게 보낸다. 똥파리는 손바닥에 남아있는 젖가슴의 여운을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흥!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웃기고 있네.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볼까?”

 오 사장이 52조의 옆구리를 내지르며 짓이기자, 52조가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52조의 비명이 처절해질수록 오 사장의 표정은 밝아진다. 세윤이 귀를 막으며 허물어져 울부짖는다.

 “어때? 이래도 계속 외면할 테냐? 넌 자비심도 없나 보지?"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고 있는 세윤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오 사장이 윽박지른다.

 "응? 사랑하면 죽여줘야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도 이 정도 고통이면 차라리 숨통을 끊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말을 하며 오 사장이 세윤의 손에 칼을 쥐어 준다. 

 “그리고 나면 너는 자유로워질 거야. 어때? 어서!”

 칼을 든 세윤의 손이 바들바들 떨다 칼을 떨어뜨린다.

 “멍청한 년!” 

 오 사장이 세윤의 뺨을 갈기자 세윤이 쓰러진다. 

 “니가 내 물만 축냈다 이거지?”

 쓰러진 세윤의 머리채를 끌며 오 사장이 을러댄다. 머리채를 잡힌 채 팔을 휘젓던 세윤이 똥파리의 다리를 잡고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며 울부짖는다.

 “아저씨! 아저씨!”

 “잉, 그려 그려! 아가! 아가!”

 똥파리가 세윤의 어깨를 감싸며 놓아주지 않자, “이년이 미쳤나?” 오 사장이 악을 쓰며 세윤을 우악스럽게 낚아채, 블라우스 단추가 떨어진다. 떨어진 옷 사이로 세윤의 젖가슴이 드러난다. 젖가슴을 본 똥파리가 군침을 삼킨다. 오 사장이 목을 꺾을 기세로 머리채를 잡아끌자 세윤의 하얀 엉덩이와 음부가 드러난다. 그것을 본 똥파리가 눈을 까뒤집으며 오 사장에게 악을 쓴다.

 “야! 오민식이! 너무한 거 아니여?”

 똥파리의 야무진 대거리에 오 사장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오 사장의 입가에 포악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야, 이! 염병할! 걔가 니 것이여? 왜 니 멋대로 지랄이여, 지랄이!”  

 순간 오 사장이 망설인다. ‘이 새끼를 지금 죽여 버릴까?’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싸늘한 어조로 말한다.

 “아, 내가 잠시 흥분했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오늘 밤 안으로 김형 원풀이하도록 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이년을 길들이는 거야. 다른 년 구할 때까진 이년을 써먹어야지, 그렇지?”

 예상치 못한 오 사장의 태도에 똥파리가 당황하며 허리를 숙인다. 강자의 자비에 순종해온 몸에 밴 습성인 것이다. 

 “그 그려, 그럼. 아, 그래도 그렇지. 걔 너무 함부로 다루지 말어. 난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고 귀한 것을…….”

 “그래, 알았어.”     

이전 13화 [장편소설] 톨게이트 2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