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Jan 05. 2022

중앙고속도로 1.

1. 톨게이트

 톨게이트    

  

 밤이다. 2시간 동안 커피만 3잔째. 화장실을 자주 갈 순 없다. 짙은 커피만 마신다. 카페인이 텅 빈 위를 마비시킨다. 뱃속이 얼얼하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까? 앞으로도 난 두세 잔의 커피를 더 마실 테지. 커피를 마셔 봤자 책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고, 아침이 되면 젖은 종이 인형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거야. 잠을 청해 보지만 뒤늦은 각성 효과로 잠은 오지 않을 것이고. 잠들지도, 깨어 있지도 못한 채 또 하루를 좀비같이 살아가겠지. 

 휴대폰 액정에 불이 들어온다. 「엄마」

 받지 않는다. 받아 봤자 항상 비슷한 말들. 엄마는 늘 내게 미안해한다. 미안해하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때론 그 맹목적인 믿음과 기대가 뻔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목소리를 아끼는 것이 낫다. 

 물론 복학은 하게 될 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복학 후에도 난 등록금에 시달릴 거다. 하루하루를 등록금에 짓눌려 사는 것이 이젠 두렵다. 공부는 뒷전이다. 어떻게 해서든 졸업은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다.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하지만 그다음에는? 졸업 후에도 난 일용직 근로자밖에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시련이 사람을 크게 만든다는 것은 다 헛소리다. 감당하지 못할 시련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야간 근무가 편할 때도 있다. 차들이 많지 않으니까. 하루 평균 2000대의 차들에게 인사를 하다 보면 어떤 땐 내가 앵무새인 것 같다. 가끔 앵무새를 아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화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무응답이나 냉랭함이 낫다. 상냥함을 가장한 추파는 싫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사람들에 대한 식견이 생긴다. 그 부작용으로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고속도로에는 많은 괴담이 있다.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괴담이 없다면 그게 더 신기한 것이다. 차가 뜸한 요금소에 혼자 앉아 있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서 오싹해질 때도 있고.  

 사람들은 알까? 이 도로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무심히 밟고 지나는 그들의 바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잔해가 분해되고 묻어나고 있는지를.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여긴 산이 많은 단양이다. 오늘은 유난히 어둡다. 온통 어둠뿐인 곳에서 혼자 불 밝히고 있다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나 혼자 벌거벗고 있다는 기분. 외롭고, 슬프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차 한 대가 요금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방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차다. 벤츠.

 허스키해져 버린 목소리지만 밝게 인사해야 한다. 난 이 요금소를 지키는 앵무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