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여름이 다음해로 넘어가고 그만큼 기나긴 겨울이 다가오기 전, 아쉬움이 시간을 밀어내 더 짧게만 느껴지는 사이의 계절 가을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자 매년 11월엔 늘 교토로 향한다. 그리고 교토에 머무는 동안엔 일상다반사처럼 철학의 길(哲学の道)을 미명의 시간에 홀로 걷는다.
난젠지南禅寺 경내를 가로질러 에이칸도永観堂에 다다르면 그리 쭉 뻗어 있지도 그리 굽이지지도 아닌, 차가 지나다닐 만큼 넓지도 마주 오는 산책자를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좁지도 않은 길 하나가 긴카쿠지銀閣寺를 향해 길게 누워 있다. 내 호흡의 속도를 조금 누그러트린 후 한결 부드러워진 심장의 장단에 맞춰 조심스레 첫발을 떼면 그제서야 오른편으로 흐르는 물길 소리 들려온다. 그 주름진 소리 사이를 비집고 비어져나오는 바람의 노래도. 기꺼이 내 잠시의 길벗이 되어주겠노라 손 내미는 무언의 인사.
본래의 이름을 지우고서, 상념에 잠기고픈 욕망을 눌러두고서, 가을로 가득 찬 이 길에 '무념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보고 오히려 생각을 비우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본다. 가벼워지기 위해 마음에 들어찬 무언가를 걸음 뒤로 흘려 보낸다. 무게를 덜어낸 마음에 들리는 모든 것, 보이는 모든 것, 살갗에 닿는 모든 것이 새로이 들어왔다 이내 나간다. 양편에 창이 난 방처럼 내 몸은 그저 걸음에 따라 들고 나는 숨의 통로가 된다. 가을을 완성하기 위해 순순히 제 목숨을 던지는 나뭇잎의 배경이 된다.* 길 위를 걷는 또 다른 길이 된다. 음예陰翳의 시간을 지나 아침해의 밝은 터를, 찬 달빛의 빈터를 만날 때까지.**
온 길을 다시 되짚어 걸으며 앞서 미처 만나지 못한 것들을 만난다. (아니, 지금의 나는 방금 전 이 길을 올랐던 내가 아니고, 이 길과 이 길을 둘러싼 모든 것들도 그러할 테니 이를 첫 만남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생애 단 한 번의 만남이 될 것임을 예감하기에 그 어느 것도 쉬이 지나치지 않는다. 만남이란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 존재를 온전히 경험하는 일.
차나 한잔 마시지.*** 마음속에 낮은 음성 울린다. 길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판기에서 페트병 녹차를 뽑아 든다. 무념의 길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마저 끝난 것은 아닐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른 목을 달랜다. 끝난 듯 보이는 이 길을 시작으로 삼은 새로운 길이 서서히 열린다.
* “천의 잎새가 하늘을 날지만 최후의 한 잎이 몸을 던지는 순간 숲은 비로소 한 해의 가을을 완성한다.” 허만하의 시, 「함양 상림에서」 인용.
** 하이데거는 어둔 숲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환히 트인 빈터를 숨김과 드러남의 경계가 모호해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즉 존재와 비존재 모두를 위한 열린 장의 알레고리로 삼았다.
*** 번뇌와 집착을 내려놓고 차나 한잔 마시며[喫茶去, 끽다거] 그저 지금/여기에 온전히 거하라는 조주선사趙州禪師의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