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차侘び茶의 완성자 센노 리큐千利休는 다도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기물들에 어떠한 가치도 매기지 말 것을, 그저 말없이 바라볼 것만을 당대의 그리고 후대의 다인들에게 당부했다. 어둡고 고요한 가운데 차를 마셔 몸과 마음을 데우고, 꽃을 보아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고, 다완을 만져 흙내음을 피부로 느끼는 탈속의 시간에 아집의 잣대로 상하경중을 따지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물론 리큐에게도 소중한 다구들은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기준으로는 하찮은 것으로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는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 구애 받지도, 그것들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가 정작 연연해 하지 않은 것은 소유의 관념 그 자체였다. 그는 오로지 찻잔이라는 텅 빈 내부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에만 몸과 마음을 집중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형상 너머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상에 머무른 것을 기器라 부른다는 구절이 있다. 도는 뭐라 딱히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이름이고, 기는 물처럼 형태에 구애 받지 않은 도를 담는 그릇을 뜻한다.
리큐에게 다완이란 단지 찻물뿐만 아니라 와비사비라는 도를 담는 그릇을 뜻했다. 무형의 도를 담기 위해선 유형의 그릇이 필요하지만 그릇에 집착하게 되면 그 그릇에 담긴 도를 제대로 볼 수 없기에 리큐는 기물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단지 그릇을 써야 한다면 흙의 거친 질감과 소박한 빛깔을 머금은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인위의 노력이 들어가지만 우연이라는 무위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은은한 형태의 것이 좋다고 여겼을 뿐이다. 리큐는 중국 다기의 영향을 받아 정교하고 치밀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서원다기書院茶器의 안티테제로 짐짓 무심코 만든 듯한 조선의 사발, 즉 초암다기草庵茶器를 최상급의 다구로 내세웠다. (선불교의 영향을 깊게 받은 리큐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서원차라는 것도 와비차라는 것도 없는 불이不二의 다도 아니었을까. 이를 넘어 다도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유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직지直指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다구에 등급을 매기는 다인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비판하기 위함이지 초암다기 자체에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리큐가 평생을 바쳐 완성하려 한 와비차의 정신은 차를 달여 마시는 방식이나 예절에 있지 않았다. 차 마시는 행위를 도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차라는 그릇에 도를 담아내려는 삶의 적극적 실천에 그 정신이 있었다. 도를 얻었다면 더이상 기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기에, 아니 기에 집착하지 않아야만 도를 얻을 수 있기에 리큐는 다도란 그저 물 끓이고 차를 우려 마시는 단순한 행위에 깃드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인가, 아님 달을 가리키는 리큐의 손가락인가. 어둔 밤하늘에 홀로 청아하게 빛나는 달이 아니라 왜 손가락을 보고 있느냐고, 달을 가리킬 수 있다면 손가락이든 똥막대기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그가 꾸짖는 것만 같다. 배를 타고 달빛이 새겨진 강을 건너 깨달음의 땅에 두 발을 딛은 이에게 이제 남은 것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도, 타고 온 배를 염려하는 것도 아닌, 그저 앞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일뿐이다. “고독 속을 걸으며 악을 행하지 않고 바라는 것도 없는 숲 속의 코끼리처럼.”**
* 선승들의 선문답과 어록을 모은 『무문관無門關』에는 부처를 ‘마른 똥막대기’라 비유한 운문선사의 일화가 등장한다. 가장 고귀한 존재라 여겨지는 것을 가장 하찮은 것으로 비유해 의식의 전환을 유도한 것이다. 리큐가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다완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레너드 코렌은 『와비사비』에서 이러한 전환을 시라고 불렀다. 시詩의 한자를 풀면 절寺에서의 말言, 즉 불경이나 선문답이라는 뜻이 된다.
** 『법구경法句經』의 구절을 인용한 오시이 마모루押井守의 영화 <이노센스>의 대사를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