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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Mar 27. 2023

차분하게 노크하기

by 드림그릿


"언니.. 들어오실 때 조용히 들어오시면 안 돼요?"

"내가 그렇게 소란스럽게 들어왔니.."

"언니 소리 때문에 기도하는데 방해가 되어요.."


직장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지인들끼리 모여 아침기도를 하고 있다.

대부분 출근해서 자리 정돈하고 한 장소에 모여 각자 기도하고 사무실로 간다.

그런데 딸을 등교시키고 출근하다 보면 아침 기도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제 요가하다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허리와 다리를 다쳐서 걷기도 불편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뛰어갔건만 후배에게 지적을 받고 보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살짝 속도 상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멈췄던 직장 예배를 다시 드리는 날이다.

하루 휴가를 내고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직장 업무처리도 해야 했고 꼭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열심히 몸을 움직여 기도 장소에 도착하다 보니 나의 숨소리와 의자 당기는 소리가 컸었나 보다.

그런데 오늘 후배가 한 말의 의미는 오늘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내 행동이 그랬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바로 인정했다.

그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항상 3초를 세고 마음을 진정하고 들어갔지!!

그때는 그녀가 자폐인이라 하는 재밌는 행동으로 봤는데, 내게도 필요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다음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숨을 고르고 조용히 들어가야겠다.

딸의 방을 들어갈 때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들어가 잔소리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남편이 앉기도 전에 줌(zoom) 수업이 있다고 급하게 식사하고 일어서던 나..


최근에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의 글을 읽었다. "갱년기와 사춘기"를 다룬 글이었는데

엄마의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

그녀는 사춘기 아들 방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마음을 진정하려고 숫자를 센다고 했다.

그 글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 직장 후배한테 지적을 당하고 보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식사 속도가 엄청 빨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과장님과 부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밥숟갈 2 숟갈을 들었는데 과장님은 식사를 거의 마치시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말해줘도 불편한 마음에 서둘러 식사를 할 판인데, 과장님은 내 식사가 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듯 부담스럽게 쳐다본다. 결국 식사를 급마무리했던 기억이 났다. 그분과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하게 될 때는(같은 과라 어쩔 수 없었다) 식사량를 조절해서 들고 온다. 그리고 앉자마자 폭풍 흡입을 한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다. 걸음이 빠른 만큼 주위를 살피지 않는 단점이 있다.

또한 속도가 느린 사람과 걸을 때 답답해한다.

혼자 걸을 때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과 걸을 때는 좀 더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걸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이번 기회로 문 앞에 서서 '우영우식 노크하기'를 실천해 봐야겠다.


상대방이 나로 인해 불편했다면 이것도 공해일 수 있다.

내가 상대방을 조금만 배려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동안 남편과 딸이 엄마의 급한 태도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미안해진다.

오늘은 이 마음을 담아 가족에게 감사를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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