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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Dec 03. 2022

내 작은 도서관

공간의 변화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공간은 집 앞마당이었다. 마당에는 평상이 있고 주위에는 고운 빛깔의 백일홍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엄마와 함께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펼쳐진 매혹적인 별들을 바라보며 내기하듯 별의 이름을 지으며 놀았다. 별자리를 찾다 보면 북두칠성도 보이고 별이 떨어지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그것뿐이겠는가!! 마당에서 했던 기억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엄마가 만들어준 시원한 수박화채와 엄마표 수제 빵은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그때의 추억 맛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마당에서 자연을 벗 삼아 놀 수 있는 놀잇거리들이 많았다. 비 오는 날이면 처마에서 비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고, 겨울이면 눈사람을 만들고 고드름을 떼서 친구들과 누가 더 긴지 내기도 하며 놀았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예쁜 강아지가 생겼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더니 엄마가 어디서 분양을 받아오셨다. 우리 가족이 된 강아지의 이름은 '영미'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의 간식을 나눠먹었고 함께 눕고 함께 잤다. 그렇게 잘 자라던 '영미'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부른 배를 끙끙거리며 출산할 자리를 찾는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내 방 모퉁이 빈 공간에 '영미'가 편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만들어주었다. 숨죽이며 그녀의 출산을 기다리던 그날 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너무나 이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세상에 나왔다.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왜 '펑'하는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지만, '영미'는 이렇게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긴긴 세월 잊혔던 집 앞마당이, 글을 쓰다 보니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비석 놀이하며 어린 시절 뛰놀던 나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 함께 놀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공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행복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제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그 공간은 내 마음속에 잘 간직해 놓았다. 나이와 시기에 따라 사랑하는 공간은 형태를 달리하며 변해간다. 스쳐간 공간들은 내게 적절했고 성장시켰으며 때론 나를 쉬게 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공간은 내 방에 마련된 소박한 서재다. 빈 공간으로 놓으면 훨씬 깔끔했을 방의 풍경이지만, 그동안 책을 놓고 쓸 번번한 공간이 없어 식탁을 전전하다 안방에 탁자를 놓고 노트북과 읽을 책들을 정리해놓으니 나름 멋진 서재가 되었다. 다만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늘 정리가 필요하지만 어질러진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책상에 앉은 채 방문을 열면 남편과 딸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족들도 엄마의 글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이 공간은 나의 삶을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야"라는 엄마의 의지이며,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오늘도 꿈을 꾼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모습을 기대해 본다.


남편이 문을 살짝 열고 말하길, "좀 쉬지.. 그렇게 글 쓰는 게 좋아..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했더니, 남편이 내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다.

"당신 글 쓰는 것 응원할게.. 요즘 많이들 당신처럼 글 쓴데..."


내가 머무는 공간이 나를 말해주듯,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나를 표현한다. 도서관과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보면 읽고 싶어지고, 읽으면서 행복해한다. 읽지 못한 책에 대한 한숨도 동반하지만 많은 책을 읽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좋은 책은 여러 번 정독하며 읽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 또한 글쓰기는 내 방 서재에서 쓰는 것이 집중도가 높다. 카페에서 글 쓰면 잘 써진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직 글이 정리되기 전에는 혼자만의 조용한 글쓰기 시간을 갖고 싶다. 글을 쓰다가 따뜻한 차 한 잔에 행복을 느끼고, 글이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감을 경험하며 즐거워한다.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아 절망감이 느껴지면 의자에서 일어나 묵묵히 집안일을 한다.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끝나면 다시 컴퓨터를 컨다. 찐한 커피 반잔을 타서 살짝 한 모금을 입술에 축이고 잠시 탁자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며 숨 고르기를 한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글을 써보지만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이 공간의 아늑함 속에 내게 질문한다. 오늘 하루 소유보다 존재하길 원하고 존재감을 얻기 위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경험치가 너의 손끝을 통해 어떻게 쓰이길 바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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