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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Mar 20. 2023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정신적인 독립이 필요했던 시절 걸핏하면 울었다. 엄마의 빈자리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우는 철부지였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엄마의 무한대 사랑은 이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었지만 그 당시 내 삶은 버거웠다. 엄마에게 의존적이면서 착하지도 않았다. 집안 상황상 나와 연결된 대부분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감정적인 외로움이 깊은 만큼 '나중에 내 자녀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워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엄마의 교육방식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나를 사랑으로 키웠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은가!! 힘든 만큼 성장했고, 이제 돌아가신 엄마 나이가 되었다. 혼자의 삶에 익숙해질 무렵 외로움이 싫어 느지막이 결혼을 했다. 예상대로 결혼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고 비밀히 감추어진 깊은 우울감에서 벗어났다.


내가 완벽하지 않듯 남편도 완벽하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 보니 걱정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싶을 정도로 노심초사하는 남편.. 그런데 그런 남편이 오랫동안 아프다. 큰 병은 아닌데 탈장수술 이후 위장이 음식 섭취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침 출근하려는데 아픈 남편을 보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픈 만큼 예민해진 남편을 충분히 품어주긴 내 속도 좁았다. 


결혼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남편에게 예속되긴 싫었다. 지나온 삶에서 배운 두려움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남편의 존재는 여자의 삶에 든든함을 준다. 남편이 있는 여자로 사는 것이 이런 걸까.. 그러나 언젠가 인간은 혼자가 된다. 남편의 몸이 이유도 없이 자꾸 안 좋다고 할 때 혼자 남게 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겁이 났었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홀로서기의 분기점이 꼭 나이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 내가 의지하던 것을 떠나보내야 한다. 자신의 실상을 직시하게 하는 사건을 마주치게 될 때 아프지만 성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환상에서 일찍 깰수록 삶의 진실에 더 다가가게 한다.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면 둘만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여행까지 가서 굳이 남편의 잔소리를 듣냐 싶지만 그냥 우리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 기다릴 것 없이 오늘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무슨 일인가 할 것 같다..


100세 시대라고 주위에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황망히 떠나가는 이들을 보게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는 미리 한다는 것은 남은 자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빠도 그랬다. 아픈 시간이 길었기에 죽음 준비를 하셨던 것 같다. 물론 살아생전 조금 더 오래 가까운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느끼며 이들의 손을 꼭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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