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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Jun 18. 2023

자서전 쓰기

종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 [나의 자서전, 인생의 철학과 지혜의 기록]라는 강좌가 올려져 있었다. 간혹 도서관에서 종종 작가와의 만남이나 글쓰기 강좌들을 진행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대부분 강의들은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나 같은 직장인들은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뭐든 해보고 싶어 신청을 했다. 개인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매주 12주 과정이라 진행되는 강의라 직원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변화가 필요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모임 장소에 들어갔더니 6분 정도의 어르신과 교수님이 보였다. 교수님은 오신 분들에게 이 강좌를 신청하게 된 이유를 한 분씩 질문하고 계셨다. 자리에 앉자 제게도 연세는 어떻게 되는지, 이 강좌는 왜 신청하게 되었는지 물으셨다.

"평소에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좋은 강좌가 올라왔기에 용기를 내서 신청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오신 분들도 거의 비슷한 이유로 오셨고, 한 분은 이전에 이 강의를 들으신 분이 추천해 주셨다고 한다. 교수님은 오신 분들의 말씀을 다 들으신 후 강좌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교수님은 먼저 이전에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글을 쓰고 책을 내셨던 분들의 책을 세권 소개해 주셨다. 책의 두께가 나름 있어 보였다. 글을 쓴 적도 없고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는데 거의 200~300page 분량의 글을 쓰신 것이다.  "도서관에서 운영되는 이 강좌는 도서관 사업이므로 꼭 결과물이 나와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할 생각이시면 오늘 그 여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매주 과제가 주어질 것이고 그 과제를 성실하게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써드릴 수는 없지만 교정은 도와드립니다. 책 한 권이 완성되면 도서관에서 책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정보공개 동의가 필요합니다." 쓰든 안 쓰든의 문제가 아닌 써야만 하는 강좌였다. 홈페이지에 이러한 자세한 내용이 없었고, 대부분 글쓰기 강좌로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셨다가 이런 상황에 다들 당황하시는 눈치였다. 단호한 교수님의 말씀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그때 뒤쪽에 앉으신 어르신이 한마디 하셨다.

"우리 같이 한번 해봐요. 교수님도 어떻게 할지 도와주실 것이니 어떡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그분의 말씀에 같이 해보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내 인생의 보따리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하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올해 전자책이든 일반 책이든 글을 써서 출간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글쓰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긍정과 부정의 경계선상에서 헤맬 때 좌절했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도 했었다. 글 쓰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좀 더 내 글이 좋아지기를 바랐고, 그 글이 모아져 책이 될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이번 강좌는 어떡하든 글을 써서 내야만 한다. 교수님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우리들을 독려할 것이다. 교수님은 여전히 자신 없어 참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셨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많이 울컥하고 꺼내기 쉽지 않은 부분들과 마주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면 할머니가 손주, 손녀에게 이야기를 해주듯 쓰시면 됩니다. 맞춤법이나 글 교정은 저희가 도와드리니 그냥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매주 제게 글을 써서 내야 하기에  제가 점점 미워지실 겁니다. "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내 자서전을 300page 가까이 쓴다는 일은 쉬운 여정은 아니다. 살아온 인생에 크게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에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교수님은 노련하게 오신 분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물어보셨다. 다들 쓸 수 있을지 고민하시던 분들도 한마디 질문하면 자신의 삶을 술술 풀어내는 어르신들로 인해 중간에 끊어야 할 정도였다. 교수님은  "어머니!! 그걸 쓰시면 되세요.." 


어떤 분은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그걸 자서전으로 써서 다른 사람들 앞에 공개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그분이 왜 자신의 인생을 부끄러워하는지 계속 질문하셨다. 알고 보니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인데 그 인생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뭔가 보여줄 잘난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었다. 오신 분들 중 교사로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분들도 계셨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푸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완전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책을 내 본 경험도 없고, 그 글이 나의 자서전인 데다 전시회까지 한다니 강의를 듣는 내내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게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니 점점해보고 싶어졌다.


두 달 반의 긴 여정 동안 나는 치열하게 내가 살아온 삶을 만나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글쓰기 모임에서 잠시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치유되는 기쁨이 있었다.  이제 글쓰기를 하면서 배운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살아온 내 인생길에 있었던 점들에 예쁜 꽃 모양의 수를 놓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왔던 어르신들의 인생이 어찌 부끄러운 인생이었겠는가!! 충분히 멋지게 살아오셨음에도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어르신들과 함께 뜨거운 여름을 뜨겁게 보낼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니 초콜릿을 많이 드셔야 할 거예요"라고 끝까지 채근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다시 정신을 차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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