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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호주 생활 첫 위기 : 발이 아프다

호주 5주 차(23.8.18.~23.8.24.)

8월 18일(금)

10시 출근이라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밤 사이 푹 쉬는 동안 왼 발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움직이니까 아파오기 시작했다.

집 근처 약국을 들를까 했는데 한국에서 갖고 온 약 중에 진통소염제 역할을 하는 약이 있길래 복용하고 출근했다.

잠깐 통증이 무뎌지는가 싶었는데 일하는 내내 걷고 서 있어서 그랬는지 아파왔다. 

발이 땅에 안 닿으면 안 아픈데 땅에 닿기 시작하면 아프다. 평평한 신발을 신으면 덜 아프고 인체 공학적으로 발의 굴곡에 맞는 신발을 신으면 자극 때문인지 더 아프다. 원인이 도대체 뭘까.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카페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운전면허증이 도착해 있었다.

DOT를 방문해 신청한 지 딱 1주일 만이었다. 2주는 넘게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이로써 호주에서 해야 할 모든 행정처리는 마무리 됐다. 호주에 도착한 지 약 30일이 다 되어 마무리. 

남편이 학교 내 약국에서 상비약을 팔길래 아스피린을 사 왔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통소염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으니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8월 19일(토)

출근 안 해도 되는 날인데 착각해서 출근해 버렸다.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원래 출근하기로 되어 있던 팀원이 몸이 아파 못 나왔고, 그 팀원을 대신해 일을 했다.

주말에 일 하는 건 처음이라 약간 긴장했고, 발이 계속 아픈 통에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필(?) 보스가 오전에 나와서 1시간 정도 같이 있었는데 보스 앞에서 유난히 작아지는 나.. 평소에는 안 하던 실수도 하고 삐걱대기도 했다. 

오늘 일 하는 도중 인상 깊은(?) 일을 하나 말해볼까 한다. 

손님이 갑자기 4, 5팀이 몰리는 때였고 나는 부지런히 주문을 받고 다른 팀원에게 샌드위치 포장, 서빙을 부탁했다.

주문을 다 받고 나는 커피를 만드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커피를 다 만들고 나서야 그 팀원에게 부탁한 주문들이 아직 처리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그 팀원을 도와  포장 주문을 처리하고 손님에게 조금 늦어져서 미안하다며 샌드위치를 건넸는데 손님이 엄청 빠른 속도로 무어라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얘기를 하길래 처음 몇 초 동안은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었다. 

손님들이 빠르게 얘기해도 최대한 귀 기울여서 듣는데 주변이 어수선해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튼 웃으면서 얘기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듣고 있는데 중간중간 offensive 한 단어가 들렸다.

그때서야 아, 이 사람이 지금 오래 걸린 것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렸으나

손님은 이미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샌드위치를 받고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왜 웃는 거지? 싶었던 그녀의 미소는 어이가 없을 때 짓는 헛웃음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웃으면서 얘기하길래 컴플레인인 줄 몰랐는데, 듣다 보니까 offensive 한 단어를 써서 컴플레인인 줄 알았다. 너무 오래 걸렸다고 컴플레인 건 것 같다, 고 팀원들에게 얘기하니 왜 웃으면서 얘기하냐고 미친 여자 아니냐고 해서 한참 웃었다.

내가 샌드위치 포장을 부탁했던 팀원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외에도 어제 먹은 샌드위치가 좀 덜 신선했던 것 같은데 환불을 해 줄 수 없냐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면 어제 왔어야지.. 다 먹고 오는 건 뭐야..

이 때는 보스가 있어서 보스가 해결해 줬다. Free of charge를 해 달라고 하는데 저런 사람에게는 절대 관용을 보이면 안 된다는 보스의 가르침. 

짧게 3시간 정도 일 했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날이었다.

이런 것도 다 경험이 된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오늘과는 달리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다음 한 주 동안의 Shift가 나오는 날이다. 어떤 시간표를 받게 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발은 대체 언제 나으려나.. 


8월 20일(일)

발의 통증은 그대로지만 집에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살림살이 장만 할 게 또 남아 아픈 발을 부여잡고 외출 감행.

쇼핑몰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근처 pharmacy warehouse에 가서 voltaren을 샀다.

수년 전 유학하는 동안 발을 다쳤을 때도 약국에서 voltaren사서 일주일 동안 바르고 요양했는데, 호주에서도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해서 샀다. 이번에는 잘 듣기를. 

웬만한 짐 다 샀다고 생각했는데 부엌 용품 구매할 게 아직 남아있다. 반찬용기와 밥 얼려 놓을 통 구매하고 근처 마트에서 식재료 구매까지 완료.

느긋하게 오후 시간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남편과 게임을 했다. 우리 둘 다 게임을 좋아해 한국에 있을 때 많은 게임을 같이 했는데 호주에 도착하고 나서는 정착하느라 게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티브이에 게임기 연결해서 게임하는데 한국에서 놀던 생각이 나서 좋았다. 

여전히 차 구매에 대해 남편과 의견이 다르다.

중고차 가격은 앞으로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는데, 한 번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남편과 나 모두 학교와 일터에 대중교통으로 갈 수는 있고, 걸어 다닐 거리에 마트가 있기 때문에 장 볼 때도 크게 번거롭지는 않다.

물론 이사할 때, 큰 부피의 물건 구매할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그 힘든 순간은 다 지나간 걸. 

차가 없어서 아쉬울 때는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멀리 놀러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차가 없는 친구에게 차가 생기면 시간도 아끼고 생활 반경 자체가 달라진다고 내가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호주 와서는 차 구매를 망설이다니.. 굉장히 모순적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내가 매주 놀러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일터까지 대중교통으로 갈 수는 있기 때문에 굳이 중고차 구매비+차 유지비를 지출하기 싫은 것이다. 

그렇지만 호주에서 남편과 많은 추억을 쌓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내 체력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차에 지불하는 비용은 나의 시간과 체력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래도 고민이다. 새 차가 아닌 이상 차에 분명히 불만사항은 생길 것이고 예민한 내가 그것을 잘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부터 다시 한 주 시작이니까 우선 이 생각은 접어두고 잠을 청해보도록 하자. 


8월 21일(월)

새로운 한 주의 시작.

오전 5시에 기상해 남편과 아침 든든히 먹고 출근했다.

발이 오늘 아침에도 너무 아파서 우울했다. 불편하고 걱정됐다. 혹시 크게 아프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버스 안에서 이것저것 검색했다. 많은 정보가 나왔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스트레칭, 마사지, 휴식 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병원 가서 진료받고 약 처방받고 순식간에 나았겠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음식도 한국에서의 생활도 그립지 않지만 병원과 약국은 그립다. 

밖에서 실례인 줄은 알지만 도저히 이 아픔을 참고만 있을 수는 없어 버스 기다리면서 계속 발을 주물렀다.

발등을 늘리는 스트레칭도 해 주고 일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발목 돌리기, 발등 스트레칭을 하면서 통증의 변화를 느껴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아니면 voltaren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1주일 정도 시간이 돼서 그런 건지, 조금씩 통증이 줄어갔다.

다행이었다. 나아졌다고 방심했다가 악화될 수 있으니 운동은 오늘까지 쉬어간다. 

내일은 마감이라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날이다. 남편 배웅하고 집에서 조금 더 시간 보내다 출근하면 돼서 여유로운 아침. 출근해서도 여유롭다.

오픈할 때는 아침에 너무 정신없이 바쁘다. 아침부터 커피 사러 오는 손님 주문도 받으면서 오픈 준비까지 해야 하니까.

그래도 다 끝내면 퀘스트 끝낸 것처럼 뿌듯하고 기분 좋다. 점심 러시도 같이 일 하는 동료들과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처리 완료. 

같이 일 하는 친구 한 명이 이번 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함께 일 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

비록 3주 정도 같이 일 했지만 그 친구가 워낙 베테랑이라 친구가 출근하는 날에 굉장히 많이 의지됐는데..

다음 주부터는 신입사원이 혼자 일당 백 하는 느낌일 것 같다. 이번 주 같이 일 하는 동안 잘 배워놔야지. 

8월 22일(화)

오늘은 마감하는 날이라 조금 늦게 출근했다.

발 통증이 다시 시작 돼 오후에는 힘들게 일했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해 줬어야 했는데 일하느라 정신없다 보니 깜빡한 듯.

폐기하는 빵 든든하게 싸 왔더니 남편이 정말 좋아했다. 배부르게 먹고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앉아있는 중이다. 

일 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오픈할 때 더 체계적으로 일 한다는 것이다.

아마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해서 오픈이라는 미션을 완료한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마감할 때는 다른 사람이 오픈 때 해 놓은 상태에서 중간 투입이 되니까 어색하달까. 

오픈부터 마감까지 하면 더 속 편할 것 같긴 하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겠지. 

오늘 일 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고 마감을 부지런히 해서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30~40분 정도 더 늦게 퇴근하는데 오늘은 10분 만에 마감 완료! 그런데 버스를 놓쳐 한참 기다려야 했다. 이럴 거면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될 뻔했는데..

길에서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같이 마감 한 친구랑 다양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친구가 이사 가는 지역에 대해서도, 친구가 나가면서 앞으로 카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등등.

앞 일을 누가 알까.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주어진 대로 일 하면 될 뿐.  

내일을 위해서 일단 자야겠다. 갑자기 너무 피곤해진다.  


8월 23일(수)

직원 한 명이 이번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그만두는데 인원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나 포함 일 하는 직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스가 이런 상황에 대해  말을 아껴서 우리끼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뾰족한 대안은 없는 것 같다.

나도 다음 주면 일 한지 4주 차 되고 오픈, 마감 때 할 일을 잘 숙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은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좋으니까 한 명 정도 더 충원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일 하던 중간에 내 면접을 담당했던 supervisor가 왔는데, 이상하게 나는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오면 괜히 눈치 보게 된다.

잘하던 것도 뚝딱거리고. 내가 만든 샌드위치에 대해 한 마디 하길래 사실 조금 기죽었다. 그래서 더 뚝딱거렸던 듯.

지적받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쉽게 털어내지를 못 한다. 정작 나한테 말 한 supervisor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 텐데.

이건 뭐 내 성격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는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내가 맡은 일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뭐. 

그나저나 supervisor가 같이 있는 동안 어떻게 손님들을 대하나 살펴보니, 나를 포함한 팀원에 비해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우리는 손님이 뭐 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끝나는데 supervisor는 뜬금없이 디저트도 권하고 음료도 권한다. 10명 중 2명 정도는 그 적극성에 넘어가 추가 주문도 했다. 

어떤 위치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일에 임하는 태도를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는 모두 월급 받는 직원이었으니까 이렇게 하나라도 더 해보겠다는 적극성이 만연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확실히 사업의 주요 관계자가 되면 적극적일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다. 발도 아픈데 푹 쉬고 오랜만에 집 청소도 해야지.  


8월 24일(목)

쉬는 날이지만 평소처럼 일어나 남편 배웅하고 청소, 빨래 다 하고 장도 보고 왔다.

호주 도착하고 나서 혼자서 장 본 적은 없는데 괜히 걱정 됐지만 잘하고 왔다.

남편과 나는 woolworths에 가서 장을 보는 일이 많고, scan & go가 되는 지점에 찾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추측하건대 늘 사람이 붐비는 지점은 scan & go가 불가한 것 같고, 사람이 비교적 적은 한산한 마트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생각보다 짐이 무거워 집까지 오는 데 힘들었지만 꽉 찬 냉장고를 보니 기분 좋았다. 

밥도 듬뿍 지어 놓고 배가 고파 도넛 두 개 먹고 나니 남편 귀가. 

카페 마감할 때 남는 빵을 챙겨 오는데 매일 먹다 보니 묘하게 아랫배가 나오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한창 밀가루, 설탕 듬뿍 들어간 디저트 매일 먹을 때 남편 이마에는 여드름이, 나는 두드러기가 다시 재발했다.

묵혀놓은 디저트 싹 다 정리하고 좀 가라앉았는데 여기서 다시 매일 먹는 꼴이라 남편 이마가 울긋불긋 해지고 있다.

그래도 너무 맛있고, 버리자니 괜히 아깝다.(내가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중해야지. 

내일은 3주간 같이 일 했던 친구와의 마지막 근무다. 

떠나는 이는 담담한데 나를 포함해 남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아쉬워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거니까. 친구 왈 Nothing lasts forever.

springwater에 들어있는 참치 통조림...? 궁금해서 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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