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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실수와 적응 사이 : 카페 출근 2주 차

호주 4주 차 (23.8.11.~23.8.17.)

8월 11일(금)
오늘은 Day off.
호주에 도착한 지 꽉 채운 3주가 되었다.
이곳에서 머물기 위해 해야 하는 여러 행정 절차 중, 마지막인 운전면허증을 신청하기로 했다.
운전면허증 전환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해 서류 준비를 철저하게 해 갔더니 한 번에 통과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신청을 마치고 남편과 시내에서 간단히 생활용품 쇼핑 후 귀가.
 
점심으로 샌드위치 간단하게 먹고 날씨가 좋아 집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공원까지 걸어갔다.
벤치에 앉아 남편과 앞으로의 호주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처럼 앞으로 쭉 hospitality산업에서만 종사할 수 있을지(아무래도 나이가 점점 많아질 테니까), 
만약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다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
 
본래 나의 계획은 6개월 정도 일 하고 내년 상반기에 학교에 입학할 계획이었다.
배우고 잘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 일을 배울 기관이 호주에도 있기 때문에 남편과 나 각자의 학업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급하게 그 계획대로 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안정적인 비자를 활용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내가 배우고자 했던 분야를 전공할지 아니면 새로운 분야를 전공할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남편과 나는 호주행을 결정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집과 일), 변수(내가 공부를 미룬 것)에도 충분히 대처하고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겠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거다.
 
8월 12일(토)
또 Day off.
호주에 도착하기 전에는 차 구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없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외곽 지역에 거주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스, 기차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대중교통이 촘촘하지 않고, 차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등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진지하게 차 구매를 고민해 보았다.
 
우선 시세를 알아본다는 느낌으로다가 추천받은 중고차 매장에 가 보았다.
워낙 입소문이 나 있는 곳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차를 보고 있었고 대부분의 차 상태가 겉 보기에는 좋아 보였다.
중고차 계의 큰 손(?) 느낌이라 그런지 소속 딜러도 많고 취급하는 차도 많은데 상태가 B+~A+이상인 차들이 많아 가격대가 높은 편이었다.
수확은 없는 외출이었지만 어느 정도 가격에서 어떤 차를 사면 좋을지 생각 정리는 할 수 있었다.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기운이 없어 남편과 오징어링 튀김 먹고 무알콜 맥주 먹고 하루를 마무리.
 
8월 13일(일)
3일 동안의 달콤한 휴식, 그 마지막 날.
남편도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학교를 가야 해서 오늘이 정말 맘 편히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샌드위치 싸서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워낙 좋아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있었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 먹으면서 그 여유를 만끽했다.
 
내가 일 하는 카페는 매주 일요일에 로스터를 알려주는데 마침 공원에 있을 때 내일부터의 로스터가 나왔다.
월화수금토. 지난주에는 마감이었는데 이번 주에는 오픈 조다.
오픈인 만큼 일찍 끝나기는 하는데 한창 바쁠 때 매정하게 나 시간 다 됐으니 퇴근하겠다는 소리는 못 할 것 같다.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차만 있었어도!) 다행인 부분은 shift가 지난주 보다 늘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casual로 일 하면 출근 하루 전 날 해고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아, 그리고 공원에서 새끼 흑조를 보았다.
흑조도 호주 와서 생전 처음 보았는데 아기 흑조라니!
남편과 2주 전쯤 강변에서 흑조를 처음 봤을 때 새끼 흑조는 털이 노란색일까 검은색일까 얘기를 나눴는데
실제로 마주한 아기 흑조는 회색이다. 그리고 성체 흑조는 부리가 빨간색인데 아기 흑조는 검은색. 자라면서 색이 변하는 것 같다.
병아리, 새끼 오리, 새끼 거위는 노란색이다가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데 새끼 흑조는 날 때부터 검은색을 띤다는 게 신기했다.
공원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새끼 흑조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그 때문에 부모 흑조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너무 귀여워.
 

공원에서 본 흑조 가족



내일부터 한 주 동안은 남편과 여유로운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일정의 한 주 동안 어떤 일이 펼쳐질지, 일에는 얼마나 익숙해질지 기대된다.
 
8월 14일(월)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바쁜 와중에도 남편과 아침 든든히(토스트) 챙겨 먹고 내가 먼저 집을 나섰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하늘만 보면 한밤중인 것처럼 보였다. 별까지 훤하게 보일 정도로.
길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지만 집 근처에 오전 6시부터 오픈하는 카페는 벌써 불을 켜고 영업 준비 중이었고
버스 정류장에는 나 말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 제 자리에서 부지런하게 사는구나.
 
이른 시간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것의 단점은 버스 배차 간격이 길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 놓치면 지각이라는 것.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에 다행히 버스를 놓치진 않았다. 오히려 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기다려 갈아 탈 버스를 탔다.
 
카페에 도착해 불을 켜고 오픈 준비를 했다. 배달 온 물건 정리하기, 샌드위치 만들기,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는 손님들 주문받기. 할 게 많은데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헤맸다. 내일은 더 잘할 수 있겠지.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주문받고 해결했더니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오후 1시.
지난주에는 마감하느라 4시쯤 끝났는데 1시 퇴근이라니. 괜히 오후 반차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퇴근길 버스 안


남편도 비슷한 시간에 수업이 끝났지만 돌아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내가 먼저 집에 도착했다.
호주에 도착한 이래로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처음이었다. 마침 아마존에서 시킨 택배가 여럿 도착해 조립하고 정리하면서 남편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남편이 도착했고 점심으로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여유로운 평일 오후를 보냈다.
 
이상하게 샌드위치는 먹고 나서 배가 금방 꺼진다. 점심 먹은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허기짐을 참을 수 없어 저녁으로는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대량으로 만들어 냉장고에도 보관해 뒀다. 이번 주 한 끼 더 볶음밥으로 해결할 생각.
 
어제부터 남편과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3주 이상 운동을 쉬고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더니 근육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다 빠진 거니? 
어제는 가벼운 강도로 했고 오늘은 난이도를 조금 올렸다. 이런저런 운동 많이 따라 해 봤지만 나에게는 타바타가 제일 잘 맞다. 20초 운동 10초 휴식으로 동 시간 동안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정말 숨차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능숙하고 건강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8월 15일(화)
한국은 광복절 공휴일이지만 호주는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어제 잠들기 전에 알람을 확인했는데 공휴일이라고 알람 취소 되어 있는 것 보고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지각할 뻔.
 
확실히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오,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스스로를 칭찬했다.
다만 비가 세차게 오는 탓에 카페에 오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시간이 잘 가진 않았다. 그 덕분에 여유 있게 같이 일 하는 동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었지만.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호주는 외식 값이 비싸니까 식재료 갚는 저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때로는 조금 더 비싼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물가가 많이 오른 것도 원인이지만 워낙 인건비가 비싼 나라이다 보니 식재료 값도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것 같다. 아무튼 뭐든 비싸다.
 
내일만 출근하면 목요일 Day off다. 남편은 매주 수요일에는 평소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집에 빨리 도착할 예정이란다.
내일은 퇴근 후에 별 일 없이 남편과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8월 16일(수)
오늘은 좋은 일, 안 좋은 일이 번갈아 일어난 날이다. 세상 참 공평하다. 
우선 좋은 일.
보스가 따로 부르더니 '네가 일에 잘 적응한 것 같다. 다른 동료들도 네가 일을 잘 배우고 잘한다고 하더라. 네가 지금 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요일을 정해서 일을 해 볼래? 일주일에 며칠 쉬고 싶은지 나한테 문자로 알려줘. 그러면 로스터 짤 때 참고할게.'라고 한 것이다.
 
Casual 잡 특성상 일 못 하면 바로 해고당할 수 있는데 보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 좋았다.

잘한다고 칭찬받는데 기분 안 좋을 수가 없다.

물론 해고당하면 다른 데 가서 일하면 되지만 잡을 다시 구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니까 이왕이면 계속 여기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 이곳에서 잘 적응해서 안정적으로 2년 반을 보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여러 직장 옮겨 다니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한 곳에서 오래 일 하는 게 작은 바람이었다.
 
사실 서로가 수단(보스는 나의 노동력을 돈을 주고 사고, 나는 나의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것)인 상황에서
상호 마음이 맞아야 함께 오래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단추는 잘 꿴 것 같다.
저녁 먹기 전에 보스에게 '나 주 5일 일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했더니 그러면 월~금요일로 픽스할게.라고 답이 왔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보스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로스터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봐야 한다.
보스 마음이 매일 들쑥 날쑥이라.
 
그다음 안 좋은 일.
정확히 말하자면 안 좋은 일은 아닌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잔 실수가 조금 있었다. 
한 번은 주문을 잘못 받았고, 다른 한 번은 포스 기를 잘못 만졌다.
 
핑계는 댈 수 있다.
할머니 손님의 발음이 부정확 해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포스 기는 해당 메뉴에 대한 사용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한 번만 더 확인했거나,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충분히 그 상황에서 해결이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면,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두 번 세 번 묻는 것을 못 하고 대충 지레 짐작해 때려 맞춘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마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겪다가 굳어진 습관 같은데
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물어보기만 하면 짜증 내던 사람을 겪은 이후로 좀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결코 좋은 습관은 아니다.
 
상대방이 불편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습관이 참 무섭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이런 습관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모든 게 문서로 이뤄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일 하는 hospitality 산업에서는 이런 사소한 습관 하나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자각하였으니 다음 출근부터는 주문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애매할 때는 손님에게 한 번 더 묻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인정받아서 기분 좋은 날이었고,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남는 날이기도 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 오랜만에 빨래도 하고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보려고 한다.
 
8월 17일(목)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아침 일찍 학교 가는 남편의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남편을 배웅하고 더 잘까 고민했지만 이미 날이 밝아진 탓에 잠은 더 오지 않았고, 한참을 누워 핸드폰만 보다가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집안일을 했다.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미뤄둔 감자 샐러드도 만들었다.

그나저나 인스턴트팟은 정말 잘 산 것 같다. 밥뿐만 아니라 감자, 계란도 순식간에 삶아낸다. 

 
며칠 전부터 운동을 시작한 게 화근이었는지 발이 너무 아프다. 운동하면서 힘을 잘못 준 것 같은데 마땅히 복용할 약이 없어 일단 오늘 하루 푹 쉬어보는 것으로 했다. 운동도 하루 쉬어가기.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것도 다리의 피로가 증가하는 데 중요한 원인일 것이고. 아마 복합적인 이유로 발이 아픈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안 아픈데 걸을 때마다 특정 부위 땡김이 심해서 더 심해지면 소염제를 사 먹어야 한다.
수년 전 유학 시절 도중 발을 크게 다치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후유증이 꽤 오래 남았다. 그때처럼 아프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그때도 지금도 왼 발이 말썽이다.
 
늦은 오후에는 지난 2주 간의 급여가 입금됐다.
3시간 트라이얼과 지난주 3일간의 출근에 대한 급여였다. 
호주에 도착한 이래로 늘 지출 내역만 찍히다가 입금 내역이 생겨서(그것도 주급이!) 굉장히 기분 좋았다.
이번 주부터는 shift가 늘었으니 2주 뒤 급여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집세와 생활비를 100% 감당하기에는 모자를 수 있지만 남편이 회사로부터 받는 급여 일부와 함께 하면 한국에서 생활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마감조라 조금 늦게 출근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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