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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출근 : 커피 향기 가득한 첫 직장

호주 3주 차(23.8.4.~23.8.10)


8월 4일(금)
두 번째 트라이얼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남편과 하루종일 붙어 다니다 처음으로 혼자 외출하는 날이 되었다.
특별한 느낌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호주에 온 지 보름 만에 혼자 대중교통을 탄다는 게 낯설긴 했다. 이젠 익숙해질 때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냐고 묻길래 바로 수락했다.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다른 곳에서는 못 할 것 같아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는 취소했다.
가게 분위기며 메뉴며 일하게 된다면 배울 것이 많은 곳처럼 보였는데,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다시 문을 두드려봐야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살림살이를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향했다.
얼추 다 산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서 보면 아직도 부족한 게 산더미다.
도저히 맨손으로 들고 올 수 없는 가전은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쿠팡 정말 잘 썼는데 해외에 나오니 아마존을 써 본다.
배송 잘 오겠지?
 

귀여운 이웃집 강아지


8월 5일(토)
날씨도 좋고, 다음 주부터 일 하기로 해서 그런가 기분 좋은 주말이다.
호스피탈리티 산업 특성상 주말에도 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쩌면 여유 있게 보내는 마지막 주말일지도.
그래도 돈 벌 생각 하니까 좋다. 가만히 집에서 남편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에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좋지.
둘 만의 여유 있는 시간이 사라지는 게 아쉽지만, 호주에 올 때 그런 여유는 사치라는 각오를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김없이 오늘도 살림살이를 양손 가득 들고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 버스에 유독 사람이 많아 눈치가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차가 없는 걸.
호주에서 운전을 하려면 한국 운전면허증을 호주 것으로 변경해야 되는데, 여러 가지 필요한 서류도 있고 발급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돼 우리가 차를 살 때까지는 앞으로도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늦게라도 되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편하겠지!
 
오늘 저녁은 에그인 헬.
며칠 전 사놓은 소고기와 각종 야채를 소진할 겸 다 때려 넣고 만들었다.
남편이 맥주 먹고 싶다고 하길래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맥주 두 병 사서 둘이서 기분 좋게 짠!
호주 와서 처음으로 먹는 술이다.
술이 생각보다 비싸서(애플 사이다, 크루저 파인애플 맛 두 병에 10달러가 넘었다!) 앞으로 술은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먹기로 했다.
 



8월 6일(일)
분명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고, 나한테 메일로 컨트렉트도 보낸다고 했는데 메일을 안 보낸다.
남편은 내일 출근해서 계약서 쓸 건가 보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 입장은 그게 아닌 걸.
사정은 있겠지만 뭐든 확실한 게 좋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거 맞니? 네가 내 고용계약에 대해서 확실히 말해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그랬더니 yes라고 아침까지 오라고 했다.
내일 계약서 쓰는 거 맞겠지?
 
어쨌든 확실히 연락도 했고 답도 들었으니 신나게 돌아다녀보자.
오늘은 first sunday라 교통카드 소지자는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날 돌아다니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멀리까지 나와 장 보고, 산책도 했다.
마트에서 산 마실 것, 먹을 것을 공원 벤치에 앉아 먹으니 이만한 여유는 없겠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마존에서 시킨 브리타와 인스턴트 팟이 도착했다.
밥솥과 인스턴트 팟 중에 고민했는데, 인스턴트 팟이 요리할 때 활용하기 좋을 것 같아 구매했다.
밥을 해 보니 밥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만한 밥이 완성됐다. 입맛에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활용도 높은 인스턴트 팟으로 밥도 해 먹고 요리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내일은 첫 출근이다. 금요일에 트라이얼로 얼추 경험해 봐서 그런지 크게 긴장되지 않는다.
잘할 수 있을 거다. 한국인 대부분의 일 머리, 부지런함은 타고난 민족성(?)이니까. 
 
8월 7일(월)
특별히 한 것도 없는 일요일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굉장히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 든든히 먹고 출근 준비 완료!
차가 있다면 10분 만에 도착할 카페인데 버스를 타면 40분 걸린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만 당장 뾰족한 방법은 없다.
 
다행히 금요일 트라이얼 때 같이 일 했던 직원이 있었다.
굿모닝 인사하고 앞치마 두르고 뭐부터 해야 되냐고 졸졸 따라다니며 무슨 일이든 시키라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것 만큼 뻘쭘하고 시간 안 가는 일이 없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까지 할 일이 산더미라 이것저것 배우고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하는 일은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 주문(커피, 샌드위치) 받기, 
점심 러시에 대비하기 위해 샌드위치 재료 소분해 놓기 정도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2시가 다가오자 손님들이 정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명은 주문받고, 한 명은 음료 만들고, 한 명은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샌드위치 만든 사람이 나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로테이션이 돼서 어느 순간에는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카페 마감하고 남은 샌드위치와 빵을 가져가도 된다고 했는데 냉장고가 망가져서 많이 못 가져와서 아쉬웠다.
냉장고 고치면! 많이 많이 가져와야지.
내일도 출근하는 날인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을 것 같다. 앞으로 하루하루 더 나아지겠지.
 
8월 8일(화)
어제 잠을 너무 잘 자서 그런가 이상하게 잠을 많이 못 잤다.
개운하지 못 한 컨디션으로 출근해서 그런지 힘든 하루.
운동을 못 한지 벌써 3주 째다. 첫 주, 둘째 주는 내 집에서 지낸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 치지만 이번 주부터는 할 만도 했는데 오랜만에 하려니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운동을 해야 체력이 올라오고 잘 버틸 수 있으니까 다시 꾸준히 해야지.
 
유독 시간이 잘 안 간 하루였지만 마감하는 친구랑 같이 버스 타고 집에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국에 있을 때 서로 어떤 일을 했는지, 호주에서의 목표는 무엇인지 등. 
만난 지 이틀 째였지만 하루 종일 같이 일 하면서(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금세 가까워진 것 같다.
 
내일은 그래도 Day off. 근데 세컨잡 하려고 트라이얼 잡아 놓은 게 있다. 아침 6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날 수 있겠지?
 
8월 9일(수)
쉬는 날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사람, 바로 나다.
트라이얼 하는 곳까지 대중교통이 없어서 30분을 걸어가야 했다. 
평소 걷는 거 좋아하니까 30분쯤은 일도 아닐 줄 알았는데,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밥도 못 먹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캄캄한 새벽길을 걷는 게 쉽지 않았다.
차만 있었어도 5분 거리인데..
 
트라이얼은 7시에 끝났고 오전 시간에는 남편과 쇼핑했다.
일 끝나고 나면 옷에서 음식 냄새가 진동해 무조건 한 번 입은 옷을 빨아야 하기 때문에 같은 옷을 여러 번 샀다.
Hospitality의 기본인 블랙으로 깔맞춤. 
운동화도 사고 싶은데 급여받으면 살까 생각 중이다. 반스 운동화는 미끄러운 바닥에서 너무 위험하다. 
 
저녁에는 약속이 있었다.
가뜩이나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밤 9시~9시 30분 사이에 취침하는 나인데, 저녁 약속이라니.
웬만하면 불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약속이라 참석했다.
막상 가면 재미있게 놀긴 하지만(술이 좀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새벽 일찍부터 일어난 여파가 너무 컸는지 중간중간 눈이 감겨 분위기를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분위기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피곤한 게 보였을 거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내일을 위해 그만 자야겠다.
 
8월 10일(목)
어제저녁 약속으로 늦게 귀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때 잘 일어나 출근했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출근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돼.
오늘은 화요일 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 했다.
얼른 일에 익숙해져야 내가 편할 것 같아서. 무엇을 할지 머릿속에서 미리 정리해 놓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회계 담당자 부재로 잠시 늦춰졌던 계약서도 작성해서 이제 이곳에서 공짜로 일하는 거 아니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돈 못 받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했다..


날씨가 별로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정말 쉴 틈 없이 손님이 몰려들었다.
보통 2시부터 마감 준비를 슬슬 하는데, 2시 15분까지 손님을 받느라 모두 정신없었다.
다행히 중간에 매니저가 와서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매니저 없었으면 갑자기 몰아드는 주문에 모두가 당황했을 거다.
 
이번 주는 3일 Shift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 근무 일이다.
내일은 남편과 함께 호주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러 간다. 필요한 서류 준비는 다 했기 때문에 가서 신청만 하면 된다.
주말까지 3일 푹 쉴 수 있어서 좋다. 다음 주 근무일이 어떻게 될지는 로스터가 나와야 아는데 왠지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남편도 학교 다니고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주말에도 일 하면 좋은데 싫기도 하다. 주말은 쉬는 날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가. 
아무튼 내일 운전면허증 신청만 잘 마치면 주말까지 푹 쉴 수 있다. 여유 있는 마지막 주말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시간을 알차게 보낼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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