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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호주에서의 첫 발자국: 트라이얼

호주 2주차(23.7.28.~23.8.3.)

7월 28일(금)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여러 절차를 잘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할 일 없이 가만히 보내는 하루가 될 뻔했는데,
남편이 매주 금, 토, 일요일에만 열리는 마켓이 있다길래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생활이 시작되면 남편과의 이런 여유는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열심히 돌아다니는 중이다.
 
호주의 겨울은 한국만큼 춥지 않지만 비가 참 많이 온다.
날씨가 춥지 않기 때문에 눈은 안 오고 대신 비가 오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우산을 쓰자니 금방 그치고, 안 쓰자니 거슬리고. 바닷가 근처로 가면 우산 쓰는 건 의미 없다.
어차피 빗방울이 바람 타고 사방팔방 날아다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새로 산 우산은 벌써 여러 번 바람에 뒤집어졌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뚫고 40여 분을 걸어서 그런지 유달리 에너지 소모가 심했다.
피쉬 앤 칩스가 맛있다는 맛집에 가서 3인분을 주문하고(주문하고 보니 3인분이었다) 앉아서 허겁지겁 15분 만에 2인분을 다 먹어치웠다. 
남은 1인분은 집으로 가져와서 내일 먹기로.
 
발이 너무 고된 하루였다. 그래도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과 다른 분위기의 장소에서 놀다 와서 그런가 오늘은 정말 여행 온 기분이었다.
 

7월 29일(토)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지난 9일 동안 얼마를 썼는지 가계부를 적어 보았다.
한국에서부터 부지런히 가계부를 써 왔기 때문에, 사용하던 양식 그대로 호주 돈으로만 바꿨다.
 
정착비용(숙소, 교통카드, 유심 등)으로 약 1,300불, 식비로 약 410불을 지출했다.
9일 동안 매일 커피, 간식, 식재료, 외식비가 약 45불씩 지출됐다.
주방에서 식사를 만들 수 있었으면 적은 금액이 나왔을 텐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다.
다음 주부터는 내 주방에서 요리를 할 수 있을 테니 식비가 조금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오늘은 이력서를 마무리하고 여러 군데 이력서를 돌렸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시작한 것에 의의를 두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기회는 그냥 날아가버리는 것이니까.
 
어제 구경한 바다가 아쉬워 남편이 알아 놓은 해변가에 다녀왔다. 
야시장 같이 푸드트럭들이 즐비한 덕에 각양각색의 음식도 구경하고 터키 음식을 팔길래 도전.
여전히 차갑고 거센 바닷바람에 음식은 금방 식었지만 석양의 빛이 따스해 그나마 견딜만했다.
 
7월 30일(일)
당장 내일부터 트라이얼을 오라는 연락이 왔다.
구직하기 좋은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기회가 오는구나 싶어 대뜸 가겠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호주 구직시장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걱정, 두려움이 덜했다.
 
날씨도 우중충한데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다음 날 벌어질 트라이얼에 대한 묘한 감정과 함께 잠을 설쳤다.
 
7월 31일(월)
오전에 두 시간 동안 트라이얼을 마쳤다.
일주일 내내 트라이얼 및 면접이 있을 예정인데, 흥미진진+사고 친 이야기는 따로 기록해야겠다.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그래도 일을 했더니 하루 열심히 산 기분이었다.
뭐든 처음이 어렵기 때문에 다음에 있을 면접, 트라이얼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은 덤으로 얻었다.
날씨도 마침 좋아서 남편이랑 오랜만에(?) 산책 열심히 하고 저녁도 맛있게 먹었다.
 


8월 1일(화)
트라이얼 없이 간단하게 인터뷰만 봤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커피 몇 잔 만든 게 트라이얼이었다.
약 30분에 걸친 인터뷰 및 트라이얼이 끝나고 이사할 집에 필요한 물건이 뭐가 있는지 한참 쇼핑몰을 둘러봤다.
차가 없으니 한 번에 물건을 많이 살 수 없어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아 골치 아팠다.
생각보다 대중교통이 촘촘하게 돼 있지 않아 차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또 예상치 못 한 지출이 생기게 된다.
 
내일은 비가 온다.
면접도 있고, 이사도 해야 한다. 바쁜 하루가 예상된다.
 


8월 2일(수)
어제 면접 본 카페에서 캐주얼로 채용하겠으니 이런저런 자료들을 달라고 문자가 와 있었다.
와, 나 잡 구한 거야? 
그래도 예정된 인터뷰는 하고 와야지.
인터뷰하고 트라이얼까지 약속하고 남편과 마트에서 만나 당장 필요한 용품을 구매했다.
 
비도 오는데 이민가방, 대형캐리어, 짐, 배낭 두 개 까지. 도저히 도보로 갈 수 없어서 DIDI를 불렀다.
기사 아저씨가 우리 짐을 보더니 당황한 기색도 없이 트렁크에 같이 영차 실어주셔서 감사했다.
짐이 너무 많아서 승차거부 당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사할 집 문 바로 앞까지 주차해서 짐도 같이 내려주셨다. 도합 60킬로 가까이 되는 짐을 들었다 내렸다 도와주신 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어플에서 팁을 드렸다. 
 
키 받고 짐을 풀고 드디어 내 한 몸 편히 누울 곳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이 기분을 만끽하기에는 정리해야 할 짐이 산더미라 쉬지도 못하고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드디어 편하게 잔다. 못다 한 짐정리는 내일 마무리하자.
 
8월 3일(목)
오늘은 트라이얼도 없고 면접 보는 데서 분명히 small chat만 하자고 했으니 일정이 금방 끝날 거라 예상했고 정말 10분도 안 돼서 끝났다.
덕분에 남편과 여유 있게 오전 시간을 즐기고 오후부터는 부지런히 살림살이를 장만하기 시작했다.
차가 없어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은 알았는데 마트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것도 장바구니 꽉꽉 채운 걸로도 모자라 배낭에도 물건을 가득 채운 채로.
 
드디어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다.
버터에 볶은 야채와 구운 고기를 곁들여 먹었는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조리도구로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지 몰랐다.
짐 정리도 거의 다 됐고, 내일 다시 한번 장 보면 얼추 살림살이 장만은 다 끝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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