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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차를 타고 멀리 나가보자.

호주 8 주차(23.9.8.~23.9.14.)

9월 8일(금)
이번 주 마지막 근무 일.
바쁠 걸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바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난주 금요일은 생각보다 덜 바빴기 때문이다.
적어도 30분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니까.
오늘은 10분, 15분 정도 쉬다 와야겠다고 생각하면 손님이 한 번에 여럿 오는 바람에 나도 같이 일 하는 친구도 쉬질 못했다.
점심시간에 내 눈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마주할 때는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에 세, 네 팀이 3명씩 짝지어서 오니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문 다 받고 좀 시작해 보려고 하면 다시 그만큼의 손님이 오는 통에 도대체 그 바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모든 주문이 다 완료 돼 있었고, 손님들은 가게를 나간 후였다. 오늘 같은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은데 다음 주 금요일도 왠지 이럴 것만 같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코워커는 당이 떨어졌는지 갑자기 식은땀 나고 어지럽다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둘 다 너무 지치고 코워커가 볼 일이 있다길래 부지런히 마감해서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끝냈다.
집에 오니 완전히 녹초가 됐고, 일주일 마무리 했다는 기분에 긴장이 풀린 건지 몸이 너무 아프다.
입맛도 없어서 저녁 대충 먹고 약 먹고 일찍 잠들까 한다. 
 
한국에선 감기 걸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호주 와서 감기로 이 고생을 하다니. 황당하다.
 
9월 9일(토)
어제저녁 8시 30분부터 불도 끄지 않을 채 잠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자다 일어나 불을 끄고 다시 잠들고 일어나니 오전 6시 30분. 
그래도 10시간의 수면으로 어느 정도 피로감이 사라졌다. 
 
오늘은 차를 산 기념으로 외곽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그동안 매번 대중교통으로 연결된 곳만 다니느라 호주의 광활 환 자연을 느끼기 어려웠지만 이젠 차가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렇게 차고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약 20분~30분 코스의 트래킹 코스가 있었고, 뒷동산 정도의 난이도라 편하게 청바지 입고 갔는데 그곳에서 만난 많은 현지인들은 등산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이뤄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이 정도에도 저렇게까지 장비를 갖춘다고..? 싶었지만, 이해한다. 그들의 사정이니까.
 


도시락으로 싸간 샌드위치도 맛있게 먹고 한 시간 반 정도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낸 후 쇼핑몰에 들렀다.
내비게이션이 쇼핑몰 입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한참 헤맸지만 잘 들어갔다.
오랜만에 음료도 사 먹고, 필요했던 운동화와 기타 생활 용품을 장만했다. 그리고 귀가.
저녁 맛있게 먹고 오늘도 일찍 자 볼까?
 
9월 10일(일)
벌써 9월의 3분의 1이 지났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특히 주말 이틀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하다.
어제 잘 놀러 다녀와서 그런지 오늘은 조금 여유 있게 쉬고 싶었다. 
아침, 점심까지 집에서 잘 먹고 남편과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다. 
 
공원이 너무 작아 동네 한 바퀴 크게 돌고 시내로 나갔는데 술 가게에서 맥주 세일을 하길래 맥주를 구매했다.
동네 마트에서 살 때는 두 병에 10달러 이상의 가격이었는데 6병에 15달러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계산하는데 점원 아저씨가 이런저런 말을 걸어와서 얘기 나누며 가게를 나섰다.
평소에는 내가 점원 아저씨 입장이라 그런지 손님이 되니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호주 와서 술 값도 비싸고 술 사는 것도 쉽지 않아서 근 두 달 동안 술을 먹은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술을 오늘에서야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남편은 많이 신났다. 떡볶이에 감자튀김에 맥주까지 저녁으로 먹자며 벌써 들떠있다.
 
날씨가 좋아 더 외출해도 좋았겠지만 내일 새로운 한 주를 위해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
오전 일찍 도착한 로스터는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월~금 풀로 오픈부터 마감까지였다. 여전히 금요일은 두 명.
지난 금요일을 교훈 삼아 다가오는 금요일은 잘해 봐야지.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한다.

9월 11일(월)
일요일 근무자가 엉망으로 해 놓고 퇴근해서 아침에 굉장히 바빴다.
같이 일 하는 코워커와 불평불만을 나누면서 오픈 준비를 마쳤다.

희한하게 점심시간에 손님이 많이 없었고 슬슬 마감 준비 할 때 손님이 몰렸다. 막판에 바빠졌던 셈.
그렇지만 마감을 세 명이서 하니 빨리 끝났다.

아침에 셰프가 도와주면 좀 더 여유로운데 셰프가 지난주부터 도와주지를 않는다.
바쁜 사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셰프가 없어도 두 명이서도 어찌어찌해내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을 못 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하는데 어째 일이 더 많아지는 느낌?
그래도 매일 퀘스트 깬다 생각하고 즐기고 있다.
이것도 적응하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9월 12일(화)
어제보단 나은 오픈 준비.
아침에 손님이 많이 와서 하던 일을 멈추기를 수십 번 했다.
어제는 그래도 잠깐 쉴 여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설상가상 커피머신이 갑자기 제 멋대로였고(마감 때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스가 점심부터 종일 상주하고 있어서 더 힘들었다.
보스가 있으면 쉬지를 못 한다. 자기 딴에는 이것저것 알려준다는 걸 옆에서 계속 듣고 있어야 하니까.
 
아무튼 내일 아침도 바쁠 것 같다.
오전에 커피머신 고치러 온다는데 그거 신경 쓰랴 오픈 준비하랴 정신없을 게 예상된다.

9월 13일(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바쁘지 않은 하루가 될 것임을 직감했고, 예감은 적중했다.
매니저가 한 명을 집에 보낼 정도로 바쁘지 않았다.
밖에 사람이 서 있을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부는데 손님이 올 리가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오랜만에 한 시간 정도 여유롭게 쉴 수 있었고 몸도 덜 피곤했다.

퇴근하고는 바로 장 보러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집 근처 마트는 늘 걸어 다녔는데 차 끌고 가는 게 오늘 처음이었다.
차가 있으니 확실히 여유로워진다. 시간, 체력적으로.
돈으로 시간과 체력을 산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맛있게 저녁 해 먹고 늦장 부리다 씻고 누웠다.
안 피곤한데 피곤하다.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자.

9월 14일(목)
정말 많이 바빴던 하루.
평소와 다르게 새로운 디저트가 많이 들어와서 아침에 정리하느라고 혼났다.
새로운 디저트 가격을 나보고 알아서 정하라고 하길래 골치 아팠다.
백종원 아저씨 프로그램 한창 볼 때 들었던 원가율이 생각났고, 근데 난 여기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고.. 얼마가 적정선이지?
어찌어찌 코워커와 상의 끝에 가격을 정하고 오픈 준비는 끝.
생각보다 새로 들어온 디저트 인기가 좋아서 당황스러웠다. 손님들, 보스는 좋아하는데 일하는 나는 힘든 상황.

정말 가게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판매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감 무렵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후다닥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급하게 먹어서 그런가 트림하는데 소화가 아직도 안 됐다.
속이 안 좋았지만 저녁 꾸역꾸역 먹고 잠깐 숨 돌리니 속이 나아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점심을 그냥 간단하게 먹어야겠다.
바빠지면 못 먹으니까 미리 먹는다고 와구 먹어놓고 중간중간 이것저것 주워 먹으니까 속이 늘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살도 조금 붙었으니까 체중 조절 하는 셈 치고 밖에서 식단 관리 좀 해야겠다.

내일은 얼마나 바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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