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1 주차(23.9.29.~23.10.5.)
9월 29일(금)
감기 몸살로 이틀 동안 출근하지 못했던 코워커가 출근했다.
오전에는 힘들어하더니 퇴근 무렵에는 조금 나아 보였다.
마침 날이 흐리고 비가 조금 내리길래 버스 타고 가지 말고 내 차 타고 가라 그랬다.
몇 번 거절하는데 아픈 사람 그렇게 보내는 게 내 마음이 편치 않아 재차 타고 가라고 얘기했다.
한국에서도 다른 사람을 차에 태운 적 거의 없는데 호주에서 그것도 운전 한 지 만 한 달 만에 다른 사람을 태우다니.
걱정과 달리 무사히 내려주고 고됐던 한 주 마무리.
저녁 먹으려는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라면 끓여달라고 했다.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먹고 오늘은 운동 생략.
피곤한 몸 얼른 누이고 자야겠다.
9월 30일(토)
한 달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9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
오전에 빠르게 외출하고 왔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생필품 구매하고 한인마트에 들러 김치를 샀다.
포기김치를 살까, 작은 단지에 담긴 김치를 살까 고민했는데 포기김치 사면 자르는 번거로움과 김치통까지 구매해야 해서 작은 사이즈의 김치를 샀다.
쇼핑 몇 시간 했다고 둘 다 지쳐서 오후 내내 집에 있었다.
9월 가계부 마무리하고 현재 재산 상태 점검도 했다.
자동차 구매, 호주 월세 등 큼직하게 나간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재산 상태는 나빠지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일하는 시간을 좀 줄여야 하나 고민했는데, 가계 점검하고 나니 일을 더 하면 더 해야 하지 덜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확 와닿았다.
남편은 우리가 호주에서 일을 많이 하든 안 하든 이곳에서는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쓸 수밖에 없을 거라고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사지육신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데 가만히 앉아 돈이 새 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 보내다가 오후에 게임하면서 하루 마무리.
저녁으로는 오랜만에 소고기 구워 먹었다. 세일하던 소고기라 기분 더 좋았다.
내일은 대청소하고 푹 쉬는 날.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위해 충전해야 한다.
10월 1일(일)
날씨가 이상하다.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분다.
청소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호주 와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미처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이북 리더기가 있고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호주에 온 이래로 남는 시간을 유튜브로 채웠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동영상 파도타기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책 읽는 것과 동영상 보는 것은 머리(뇌)를 쓰는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뇌가 굳어 버릴 것 같아 다시 책을 읽기로 했다.
이북 리더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만나봤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북 리더기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해외에서 한국 책을 빌릴 여력이 마땅치 않을 때 이북을 빌릴 수 있다면 머나먼 타국에서도 한국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리더기가 아니어도 되지만 이북 리더기 특유의 종이책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전자기기가 없는 관계로, 나는 이북 리더기로 이북 읽기를 고집한다.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지난 5일 동안의 근무로 쌓인 피로를 잘 푼 것 같다.
힘내서 내일 일 하러 가야지.
10월 2일(월)
주말 푹 쉬고 출근!
잠겨있는 주차장 문을 여는데 간밤에 분 바람 때문인지 문이 떨어져 나갔다.
당황스러웠는데 나 혼자 조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 관리는 다른 가게 몫이라 대충 치워놓고 말았다.
오전에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는데 점심시간에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와 잠시 힘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마치고 퇴근.
이번 주는 남편이 차를 안 갖고 가겠다고 해서 내가 차를 갖고 출퇴근하는데
한국이나 호주나 출퇴근길에 운전하면 연비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
그나저나 여기서 운전하는 한 달 동안 느낀 건데, 사람들이 급가속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신호등 파란 불이 켜지면 속도를 부드럽게(?) 천천히 올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서는 많은 차가 파란 불 켜지자마자 시속 100km까지 달릴 기세로 가속을 세게 한다.
멈춰있다가 급 가속 하는 게 차에 안 좋다고 들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걸까?
아무튼 저녁은 오랜만에 파스타 해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밀가루 식사인 게 건강에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고된 하루 끝에 거창한 요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10월 3일(화)
오늘도 무사 출근.
다른 직원(모두가 안 좋아하는)이 11시 30분경에 도착해 오늘은 3명이 근무했다.
그런데 이 직원(이하 A)은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useless이다.
커피도, 음식도 못 만들고 하는 거라고는 주문받는 것뿐인데 주문도 엉망진창.
손님이 많을 때는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도켓에 기록해야 꼬이지 않는데, 도켓 나온 대로 만들고 이건 어떤 손님 거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는 엄청 해댄다.
A랑 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차라리 혼자인 게 더 나을 것 같다.
아파서 기침하는데 입을 가리지도 않고, 심심한지 자꾸 옆에 와서 떠드는데 감기 옮을 까봐 너무 싫었다.
게다가 중간에 10분 이상 자리 비우고, 근무 시작과 종료 시간도 5분씩 부풀려 적었다.
그나마 1주일에 한 번뿐이니까 다행이기는 한데, 그 한 번도 너무 싫다. 셰프한테 말을 하던지 해야 할 것 같다.
10월 4일(수)
정말 바빴다. 오전부터 꾸준히 방문하는 손님들 덕분에(?) 눈 깜짝할 새에 하루가 지나갔다.
그나마 오전에는 간단한 손님들 뿐이라 괜찮았는데, 점심시간이 되니 장난 아니었다.
와중에 복잡한 거 시키지 않는 손님에게는 너무 고마웠다.
일 하는 중에 독특한 경험이었다면 오전에 방문했던 손님이 오후에 또 왔다.
오전에 사 갔던 게 너무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는 말에 서비스 빵을 같이 줬더니 정말 좋아했다.
사실 손님이 사 갔던 메뉴는 내가 아침에 만든 것이었는데, 맛있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손님들은 거짓말처럼 오후 2시부터 발길을 끊었다.
덕분에 마감할 때는 생각보다 바쁘지 않았지만, 일이 다 끝나고 나니 너무 지쳐있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저녁을 먹고 부른 배 두드리며 남편과 취침 준비 중이다.
매주 수요일은 쓰레기통 내놓는 날인데, 눈 깜짝할 새에 이 날이 돌아온다.
일주일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날씨가 계속 좋을 예정이라 손님들이 더 많이 올 것 같다. 더 바빠질 텐데 걱정이다.
10월 5일(목)
호주에 사는 곤충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천적이 없기도 하고, 겨울이 춥지 않아 곤충이 얼어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아 몸집을 키운다나.
그런데 오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너무 커서 나를 얼어붙게 만든 그것, 바퀴벌레를 보았다.
음식 다루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반드시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손바닥 만 한 바퀴벌레를 보니 몸이 굳어버렸다.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진 바퀴벌레는 곧 다시 나타났고 매니저가 그것을 발로 밟고 코워커가 빗자루로 내려쳐 두 동강 내어 죽였다.
손님들이 못 봐서 다행이지 봤다면 발길을 끊었을 것이다.
남편에게 말 하니 집에 생기면 자기는 못 잡는다고.
나도 못 잡는데, 이러다 바퀴벌레와 동거할 수도 있겠다.
벌레 약을 사야 하나, 그런데 크기를 보아하니 약을 떡칠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