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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호주의 푸른 바다를 느끼다.

호주 12 주차(23.10.6.~23.10.12.)

10월 6일(금)
오전부터 일이 잘 풀리는 날이었다.
배달 와야 할 것도 아침 일찍, 주문 누락 없이 도착해 있어서 오픈 준비를 평소보다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대급으로 바빴던 점심시간을 거쳐 마감 20분 전에는 모든 게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코워커와 나는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날씨는 또 왜 그렇게 더운지, 차 안은 찜통이었다.
습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퇴근길에 벌써 차 산지 한 달이 다 됐음을 깨달았다.
중고차라 사기 전에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별 탈 없이 잘 굴러가서 다행이다.
너무 지쳐서 그런지 운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귀가했다.

1주일 열심히 불태우고 나서 일까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쑤신다.
이틀 푹 쉬면 좀 괜찮아지지만 월요일이 되면 다시 원상복귀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얼큰한 야매 어죽을 해 먹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그러다 쓰레기 버릴 겸 밖에 나갔는데 따뜻한 여름밤공기가 좋아 남편과 급 산책을 했다.
외국에 여행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지금 외국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기운 없어서 한참을 누워있다가 겨우 씻었다.
내일은 푹 쉬어야 하지만 살림살이 살 게 있어서 마트에 다녀와야 한다.
많이 덥지만 않으면 걸어 다닐 텐데 너무 더워서 차를 타고 가야 할 것 같다.

10월 7일(토)
오늘의 일정은 이랬다.
해변-카페-집-시내-쇼핑-귀가-독서-저녁-게임

주말이지만 일찍 일어나 아침 먹고, 햇빛이 더 강해지기 전에 해변에 다녀왔다.
그냥 맑은 바다를 눈에 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모래사장에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수건을 안 갖고 와서 발에 붙은 모래를 못 털어낼 것 같아 신발을 안 벗고 있었는데, 아무럼 어떠냐는 생각에 냅다 벗어던졌다.

모래는 정말 고왔고 쓰레기나 깨진 조개 조각이 없어서 발 다칠 염려가 없었다.
아직 뜨겁지 않고 따사로운 햇빛과 시원한 바닷물. 그 바닷물에 젖은 고운 입자의 모래.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감각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에서는 해양 스포츠를 하나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유아반부터 시작해야 하나.. 이곳의 성인들은 모두 수영을 할 줄 알 것 같아 성인 기초 수영반이 없을 것 만 같다.

바다를 즐기고 나서는 아주 오랜만에 카페에 갔다.
평소 나는 일 하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카페 갈 생각을 안 했는데 오랜만의 외출에 다른 사람이 타주는 커피를 먹고 싶었다.
매일 공짜 커피 마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커피에 지출하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커피 잔을 손에 들고 남편과 마주 앉아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을 위한 값이기 때문에 괜찮았다.

집에 와서는 점심 먹고 시내에 버스 타고 나갔다.
차를 산 이후로 시내에는 간 적이 없는데, 호주나 한국이나 시내는 차를 갖고 가기에 번잡하기 때문이다.
남편을 위한 반바지와 집에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를 사고 귀가했다.

책도 읽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게임도 재미있게 했더니 벌써 잘 시간이다.
내일 하루 남은 휴일을 또 알차게 보내려면 일찍 잠들어야 한다.

10월 8일(일)
어제 잘 놀고 오늘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대청소하고 장 보러 걸어갔다 온 것으로 외출은 끝.
오후에는 낮잠 잠깐 자고 게임 엔딩을 봤다.
재밌게 했던 게임이 끝나니까 아쉽다.

이틀 알차게 쉬고 놀았더니 내일 출근하는 게 싫다.
하루만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급 받을 거 생각하면 그래도 가야 한다.
남편은 내가 일 끝나고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는 모습이 많이 안타깝다고 한다.
나도 새로운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지금 일 하는 곳이 월~금 스케줄 고정 돼 있어서 그걸 놓치기 싫다.
이제 겨우 3개월이니까 이곳에서 조금 더 경력을 쌓아야 할 것 같다. 이직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는 걸로.

10월 9일(월)
일요일 근무자들이 엉망으로 해 놓은 것 수습하느라 오전에 바빴다.
사용하는 소스나 여러 비품을 채워놓지 않는 게 그들에게 가장 큰 불만이다.
늘 여분을 만들어 놓는데 그걸 주말 동안 다 쓰는 게 말이 안 된다. 금요일만큼 매출이 안 나오는데 재료를 다 쓰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다 쓸 수 있다고 치자면 왜 자신들이 쓴 만큼 채워놓지 않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내일 일요일 근무자 중 한 명이 오니까 이것과 관련해 얘기하려고 한다.

엉망이 된 카페 수습하느라 바빴던 내 마음과는 달리 카페는 한산했다.
오전에 잠깐 손님이 몰리는 때가 있었고 점심에는 조용했다. 그렇지만 매출이 나쁘지 않았다.
코워커와 이런 날이 좋다고, 똑같은 매출이지만 몸이 안 힘드니 정말 여유롭다고 했다.

내일도 오늘과 같았으면 좋겠지만 왠지 더 바빠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10월 10일(화)
오전에 정말 고요하다가 점심에 모든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게다가 보스, 매니저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이 5명인데
보스는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런 잔소리 저런 잔소리를 하니까 더 정신없었다.

근무 막바지에는 호주 이민 1세대로 추정되는 한국인 분을 뵈었다.
40년 이상 호주에 거주하셨다는데 그때 그 시절에는 이민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는지 교회 나오라는 말씀을 강조해서 하셨다.

지난주에는 한 주가 길게 느껴졌다.
수요일을 앞두고 아직 수요일이네,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주는 내일이면 벌써 수요일이네,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지난주 보다 이번 주 컨디션이 좋은가보다.
아니, 어쩌면 이번 주가 주급 받는 날이라 그런 것일지도..

10월 11일(수)
벌써 한 주의 절반, 수요일이다.
아침에 정말 바빠서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계획이 어긋날 것을 대비해 플랜 B, C까지 세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님이 계속 오니까 시간은 자꾸 미뤄지고,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와중에 다행히 큰 오더를 마무리했고 조금 미뤄졌지만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다 처리하기는 했다.

각자의 방식이 있으니까 같이 일 하는 사람의 방식도 존중하면서 하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 때는 내가 나서서 하려니 나만 너무 바쁘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안 그러려고 하는데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낫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오늘 같이 일 하는 코워커가 손이 조금 많이 느린 편이라 나라도 빨라야 한다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오전에 많은 손님이 다녀가서 그런지 오후에는 손님이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띄엄띄엄 와서 모든 게 Under control이었다.
와중에 코워커가 도켓에다가 Angry라고 써 놓아서 뭔가 했더니,
손님 중에 늘 무표정, serious 한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물어보면 네가 그게 왜 궁금하냐, 고 말할 것 같아서 Angry라고 써 놨다는 거다.
손님 나가고 나서 주저앉아서 웃었다.
하마터면 ㅇㅇ for Angry, 하고 부를 뻔했다.
저 손님은 표정만 보면 우리 가게 오는 걸 정말 싫어하는 것 같은데 하루에 두 번씩 온다.
정체가 뭐지.

오전에 바쁘면 오후에 안 바쁘고
오전에 한가하면 오후에 바쁜 나날들이다.
내일은 어떻게 되려나.

10월 12일(목)
아침엔 내 할 일을 금방 끝냈는데, 물품 재고 정리 비품 정리 등 자잘하게 할 일이 많았다.
어제에 비해서 점심시간에도 엄청 한가해서 코워커랑 수다 떨고 우유 스팀하는 법도 알려줬다.

잘못 배달 온 물건이 있어서 매니저가 잠깐 들렀는데 이상하게 매니저가 오면 뚱땅뚱땅.
나한테 뭐 좀 해 달라고 시키고 옆에서 지켜보는데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그냥 지켜보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Let me show you라면서 시범을 보여주는데,
내가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걸 표현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면 매니저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는데 자꾸 기가 죽는 걸 보니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것 같다.
매니저가 일을 알려주고 나는 배우고, 그게 당연한 수순인데
일 한지 벌써 세 달 됐는데 넌 아직도 부족하네,라고 말하는 것 만 같아 시무룩 해진다.

아마 안정적인 신분이 아니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캐주얼의 삶이니까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하는데 나 혼자 지레 겁먹는 내 모습 참 하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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