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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채찍질만 하지 말고, 당근 좀 줘라.

호주 14 주차(23.10.20.~23.10.26.)

10월 20일(금)
매주 금요일은 평일 중 가장 바쁜 날인데 정말 한가했다.
오전부터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도록 손님이 거의 없어서 빨리 마감을 시작했다.
그런데 옆 가게에서 뭘 좀 고치느라 건물 수도를 다 잠가버려서 끝나는 시간은 똑같았다.

퇴근 후에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편의 학교로 갔다.
작은 축제가 있어서 구경 및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동남아 음식을 많이 팔고 있어서 미고랭과 닭구이 꼬치를 사 먹었다.
호주 오기 전에 친구가 100불 환전해서 줬는데 여태 쓸 일이 없다가 드디어 썼다. 덕분에 맛있게 저녁 해결.



내일은 날이 흐려서 바닷가보다는 가볍게 걸을 생각이다.
어디 갈지는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야지.

10월 21일(토)
아침 일찍 먹고 어디 갈지 찾아보다가 가벼운 하이킹 할 수 있는 교외로 떠났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무난한 난이도의 하이킹 코스였다.
약 한 시간 정도 코스였는데 거의 평지라 힘들 것도 없었다.
돌아와서는 장 보고 점심 먹고 다시 쇼핑하러 외출했다.
주말마다 가볍게 세차를 하는데 차를 닦을 수건이 필요해 구매. 세차에 재미 들렸다.
한국에서는 그냥 기계 세차 돌리거나 그냥 안 했는데, 여기서는 내 돈 주고 사서 그런지 애착이 많이 간다.

돌아와서는 낮잠도 자고 저녁 일찍 먹고 산책을 했다.
집 근처에 예쁜 보라색 꽃이 많이 폈는데 어떤 꽃인가 이미지 검색 해 보니 Blue Jacaranda라고 한다.
색이 꼭 라벤더 같다.

산책하면서 남편에게
호주에 온 것이 후회되지 않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그냥 그런대로 살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더 좋아서, 가 아니라 호주에서의 삶이 어떨지 상상조차 안 될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남편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빨리 호주로 왔을 거라고 한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이 기억을 가지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내 호주 생활은 한국에서의 사회생활, 나이가 듦에 따른 성숙함,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 어린 나이에 왔다면 넘치는 체력과 열정으로 지금과는 결이 다른 호주 생활을 했을 테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오늘.
내일은 집에서 푹 쉬면서 청소할 테다.

10월 22일(일)
어제의 바람대로 푹 쉬면서 청소했던 하류.
세차도 하고(그냥 물걸레질이 전부다) 화장실 청소도 말끔하게 했다.
점심으로는 라면을 먹었는데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라면이었다.
하필 어제저녁에 쪽파를 다 써버려서 라면에 넣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먹고 배가 불러 한숨 푹 잤다.
빌렸던 책도 마저 다 읽고 저녁은 간단하게 시리얼로 때웠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하루가 길지만 이틀의 휴식은 짧게만 느껴진다.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비자와 관련해 생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현재 갖고 있는 비자를 다른 비자로 연말, 연초에 바꿔야 하는데 바꿀 시기를 잘 결정해야 한다.
아무 때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전문가와 상담을 해야겠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10월 23일(월)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니. 벌써 10월도 일주일만 남았다.
이틀 쉬고 근무하면 몸이 뻐근하다.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았는데 셰프에게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우리는 1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가져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명이 한 시간 쉬면 다른 한 명이 한 시간 동안 혼자서 일 해야 한다는 건데 그것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중간에 쉬던 사람이 다시 복귀해서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면 쉬는 것도 일 하는 것도 둘 다 어정쩡하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건지 셰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왜 한 시간을 안 쉬냐고 했다.
나도 쉬고 싶다. 근데 그게 불가능하다고!

근무 끝나는 시간도 너무 늦다고 한다.
마감을 2시부터 슬슬 시작하기는 하지만 손님들이 계속 올 때는 마감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 마감하면 3시 25분, 30분 정도인데 이것도 다 돈을 주니까 가게 입장에서는 부담인 것이겠지.
빨리빨리 해서 최대한 3시에 맞춰서 퇴근할 수 있게 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쉽지.
그럼 2시부터 설거지하고 다 치우면서 오는 손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마감했다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말하라는 건가?
코워커한테 셰프가 이런 얘기했다고 말했더니 이곳이 자신의 세 번째 직장인데 이때까지 이런 데는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거 좋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더 좋은 조건의 가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에 많이 익숙해졌고 코워커들이 좋다.
우리 모두 영원히 이곳에서 일할 수 없기에 언젠가는 작별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함께 일하는 모두와 잘 지내고 있어서.
새로운 곳에 가면 지금만큼 shift를 많이 받을 수 없을 거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점점 우리에게 압박을 주는 게 느껴진다.

아무튼 셰프가 빨리 끝내랬으니 오늘 마감은 평소보다 10분 정도 빨리 끝났다.
집에 빨리 가면 나도 좋다. 나쁠 건 없지.
코워커가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근처 역까지 바래다줬다.
한국에서도 친구들을 내 차에 태운 게 몇 번 되지 않는데 호주에서는 오자마자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한다.

집에 일찍 오니까 조금 여유가 있었다.
엄마랑 오랜만에 길게 통화도 하고, 저녁도 맛있게 먹었다.
오늘 오후에 충전한 만큼 내일은 더 활기차게 잘 보내봐야겠다.

10월 24일(화)
아침부터 보스가 왔는데 기분이 안 좋은 건지 나와 코워커에게 잔소리를 하고 돌아갔다.
가뜩이나 두 명이서 일 하느라 힘든데 안 좋은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아 코워커와 한참 불만을 토해냈지만 나는 이 정도로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코워커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안 바쁘다가 마감 시간 다 돼서 손님이 몰렸다.
그런데 우리 보고 빨리 마감하고 퇴근하라고?!
셰프가 마감시간에 직접 와 있어야 한다고 우리끼리 볼멘소리를 해 댔다.

집에 도착해서 저녁 먹으려는데 남편은 점심을 늦게, 많이 먹어서 배가 안 고프다길래
나도 간단하게 빵으로 때웠다.

요 며칠 남편이랑 저녁 식사 후에 같이 운동하고 있다.
나는 홈트 한 지 2년이 다 돼서 홈트 동작에 익숙한데 남편은 나 따라 하려니 좀 벅차 보인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기에 이렇게 체력 소모가 큰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호주 온 지 세 달이 넘었다. 시간 정말 빠르네.
목요일 같은 화요일이었기에 내일이 수요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일주일은 긴 것 같은데 한 달 한 달 시간은 빠르게 간다.

10월 25일(수)
희한하게 오전에 자리에 앉아 먹고 가겠다는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오후에는 한가하다 싶었는데 손님이 한꺼번에 몰린 데다 그 손님들도 전부 다 자리에 앉아 먹고 가서 가게가 정말 시끄러웠다.

온수가 안 나와서 plumber가 고치러 왔고
동양인 여자가 동동대며 일하는 게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와 잠깐 얘기를 나눴다.
보스는 투자자(?)를 만난 건지 한참을 얘기하다가 마감시간이 지나서야 돌아갔다.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우리한테 뭐라고 안 해서 좋았다.

코워커는 어제 가방 지퍼가 망가졌는데 가방 살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남은 음식을 싸 가는데 가방이 없으니 쓰레기봉투에 담아 갔는 게 그 모습이 퍽 웃겨 한참 웃었다.

요 며칠 매출이 안 좋은데 그게 우리 탓인 것 마냥 말하는 보스와 매니저 때문에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손님들하고도 더듬더듬 스몰 챗도 나누고 하라는 대로 다 하는데도 왜 그렇게 뭐라고 하는지...
고용인이 피고용인을 100%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전 세계 공통인 걸까?

매장에 오는 손님들 이름을 물어보고 도켓에 적으라는데 굳이?
이름 묻는다고 손님과 우리가 서로 친근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름 묻는다고 손님이 단골이 되는 것도 아닌데.
단골손님 확보를 위한다면 이름 묻는 것보단 스몰 챗 나누며 찬찬히 서로를 알아가는 게 낫지.
게다가 솔직히 나는 손님 이름 알아듣는 게 어렵고, 손님들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라 누가 누군지 기억하기 쉽지 않다. 동양인 다 똑같이 생겼다는데 솔직이 내 입장에선 서양인도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 못 한다.
변화를 주고 싶은 건 알겠는데 손님이 평소보다 줄은 건 날씨가 좋아 모두가 교외로 나들이 가는 분위기라 그런 것 같은데, 엉뚱한 데서 변화를 주니까 일하는 데 좀 귀찮다.

아무튼 내일은 목요일.
일주일이 이렇게 끝나간다.

10월 26일(목)
아침에 분위기가 좋았는데 갑자기 매니저가 오면서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코워커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였는데, 단순히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멘털까지 나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 주 내내 보스와 매니저가 와서 이런저런 소리를 한 것이 원인인 것 같은데
불안정한 본인의 개인사로 안 그래도 복잡한 생각에 그들이 불을 지폈으리라.
Deep breathe 하라고 몇 번 다독여주니 좀 괜찮아지는 것처럼 보였고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다시 아침의 텐션으로 회복했다.

보스는 어제에 이어 투자자를 만나는 건지 앉아서 두세 시간 정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돈 얘기, 보스가 갖고 있는 가게 얘기가 문득 들린 것을 보아 투자자를 구하고 있는 것 같다.
사업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굉장히 적극적인데 오늘은 본인도 지쳤는지 미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이번 주 이상하게 매출이 잘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냐고 우리한테 물어봤다.
그걸 우리한테 왜 물어봐.. It's her business라고 투덜대는 코워커였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이번 주는 이상하게 한 주가 길게 느껴져서 더 힘들었다.
내일만 잘 마무리하고 주말에 푹 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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