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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총체적 난국: 바퀴벌레, 임금체불

호주 16 주차(23.11.3.~23.11.9.)

11월 3일(금)
아침부터 코워커와 으쌰으쌰, 기운 내서 바쁜 하루를 마무리했다.
코워커에게 참 많은 의지를 하고 있는데 비자 상황을 봤을 땐 언제까지 같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정말 재료가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다. 가게에서 생과일주스도 판매하는데 과일이 모두 똑 떨어졌을 정도.
보스는 하루종일 가게에 상주했지만 러시가 3회에 걸쳐 몰아칠 때도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바쁜 가게 상황에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도와줄 거라고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안 도와주는 건 둘째치고 본인이 사장인데 손님들이 많은 상황에서 혼자서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컴퓨터만 두들기고 있는 게 굉장히 책임감 없어 보였다.

그래도 지난주는 길게 느껴졌는데 이번 주 5일은 금방 지나간 기분이다.
보스가 브랜드를 프랜차이즈 화 하려고 여기저기 투자자도 구하는 것 같고, 그에 따라서 인건비도 감축하는 것 같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 하는 직원이 보는 중인데, 한 시간 휴식과 마감을 한 명만 하라는 강요를 많이 받고 있다.
거의 얼굴 볼 때마다 왜 한 시간을 안 쉬냐, 마감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냐, 잔소리를 듣고 있다.

코워커가 이걸로 너무 스트레스받아하길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네 나라에도 같은 속담이 있다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싶었다.

어쨌든 앞으로의 이틀 동안은 모든 상황을 잊고 편하게 쉬어야겠다.

11월 4일(토)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을 조금 설쳤다.
오늘은 원래 시티에 가서 쇼핑을 하려 했다. 카페도 가고.
그런데 내일이 first Sunday라 대중교통비가 공짜이기 때문에 시티는 내일 가기로 하고,
차 타고 근교로 나들이를 떠났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밖에 오래 있지는 못 했지만 jacaranda꽃구경도 하고, 우연히 들린 해변이 애견동반 해변이라 온 동네 강아지를 다 만났다.
이곳이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강아지들이 목줄을 하지 않은 채로 자유롭게 수영하고 놀고 있었다.


호주의 강아지들은 사회화가 잘 되어 있는 건지 강아지들끼리 싸우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고, 모든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었다.
한 골든 리트리버는 나에게 자기 공 던져달라고 공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 틈을 타서 얼른 쓰다듬어주기까지.

엄마 아빠가 물에 들어가서 자기도 들어가고 싶은데 물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강아지,
공을 다른 강아지들한테 뺏길까 봐 모래를 파고 묻으려는 강아지,
그 옆에서 얘가 공 땅에 묻는다고 이르는 것 마냥 월월 짖는 강아지,
기분이 너무 좋은지 모래에 몸을 부비적 대는 강아지 등등

다양한 강아지를 보는 재미에 피부가 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땡볕 아래에 서 있었다.
이곳의 강아지들은 정말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더 있다가는 내가 타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집으로 얼른 돌아왔다.

정말 타는 듯한 더위였지만 잠을 설친 탓에 낮잠을 한 시간 이상 자고 겨우 일어나 맛있는 저녁까지 먹었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고 있는데 밤새 틀었다가는 전기세 폭탄 맞을 것 같아 적당히 틀고 자야 한다.

오늘 해변에서 만난 강아지들 생각을 한 동안 하게 될 것 만 같다.

11월 5일(일)
First Sunday라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시내에 다녀왔다.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곳에는 총 6명의 직원이 일 하고 있었다. 손님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6명이라니.
모두가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에 너무 부러웠다.
나는 맨날 뛰어다니면서 일하는데, 얼마나 체력적으로 여유로울까.

내가 지금 일 하고 있는 곳에서 벌써 3개월 동안 일 하고 있다.
이곳이 좋은 점이라면 월~금까지 풀타임으로 일 하고, 밥이든 음료든 모두 무료, 좋은 코워커 정도이다.
단점이라면 업무강도가 높다는 점인데 인건비 감축으로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어떠냐고 하는데, 이직이 맘처럼 잘 되지도 않고 새로 옮기는 곳에서 이만큼의 shift를 받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단점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다.
평일만 일 하면서 주 40시간을 보장받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건데.. 다른 데 가면 한동안 계좌에 들어오는 돈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게 싫어서 그냥 돈만 생각하고 버틸까 한다.

이틀 푹 쉬었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일부터 한 주 잘 살아가야지.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해야겠다.

11월 6일(월)
한 주의 시작, 코워커도 일찍 도착해서 오픈 10분 전부터 일 할 준비를 시작했다.
꽤 바쁜 하루였지만 코워커와 함께 모든 주문을 잘 처리했다.
셰프가 빨리 끝내라고 해서 마감을 점심 러시가 끝나자마자 시작했고 그 덕분인지 3시가 되어 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

가게 매출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쉬는 시간을 늘리고 끝나는 시간을 앞당기는 바람에 돈은 예전만큼 많이 못 벌게 됐다.
사업 확장하려고 돈은 아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다.

라구소스,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만들었더니 저녁 시간이 여유롭다. 밥만 해서 먹으면 끝.
저녁 먹고 매일 빵 같은 간식을 먹었더니 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오늘 저녁에는 간식을 안 먹었다.
밀가루를 워낙 많이 먹으니 뾰루지도 올라오는 것 같다. 단 거, 밀가루 조금 줄여봐야겠다.

11월 7일(화)
왜 이렇게 한가한가 했더니 오늘 무슨 race가 있다고 손님이 알려줬다.
코워커 말로는 사람들이 깃털 달린 모자 같은 거를 쓰고 뭘 하는 날이라고 한다.
덕분에 안 바빠서 마감도 엄청 빨리 끝냈다.

그나저나 요즘 매일 같이 바퀴벌레가 가게에 출몰한다.
아침에 한 마리가 뒤집어진 채로 바닥에 있길래 빗자루로 밀어서 밖에 버리려고 했더니 갑자기 똑바로 엎드려서 빠르게 걷는 거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코워커랑 내가 잡네, 네가 잡네 주춤주춤 하다가 셰프가 와서 한 방에 발로 뭉개버렸다.

뭉개버리는 거 나도 할 수 있긴 한데 그 감각을 발에서 느끼고 싶지가 않다.
pest control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돈 드는 거라 안 할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리고 커피 거래처에서 문자가 왔는데 미 지불 된 거래 내역이 있다고 돈 문제가 해결되기 전 까지는 물건을 안 보내겠다고 했다.
너무 놀라서 매니저와 보스에게 말하고 코워커에게도 이 사실을 공유했는데 세상에, 지난 2주 동안 급여를 못 받은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거래 대금도 못 내고 몇몇 직원들 급여도 못 줄 정도라면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데..
내 급여는 잘 들어올까? 목요일이 급여 일인데 코워커와 걱정을 한 아름 안고 퇴근했다.
이번 주 급여가 잘 들어오면 상관없지만 만약에 못 받는다면 계속 이곳에서 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한다.

11월 8일(수)
꽤나 한가한 하루였다.
매니저가 왔길래 바퀴벌레 너무 많다, 매일 하나씩 본다, 고 했더니
이게 호주야 익숙해져야 돼,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기대한 답은 pest control을 부를게, 였는데...
pest control 하면 분명 효과 있을 텐데 비싸니까 안 부르는 거겠지?
바퀴벌레 트랩은 있던데 그런 건 사실 그들에게 아무 소용없다.

아무튼 팔자에도 없을 바퀴벌레를 거의 매일 조우하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 하는 내내 긴장 모드랄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심리적으로 엄청 긴장된다.

코워커는 오전에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여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본국에서 family issue가 있고 비자 문제도 골치 아프다고 머리를 감싸매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나라에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으니, 내가 네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언제든지 얘기하고 싶으면 나 붙들고 얘기하라고 했다.
정말 sweet 한 말이라며 고맙다고 하더니 오후에는 좀 나아 보였다.
저녁에 데이트가 있다길래 금요일에 데이트 후기 알려달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어제 급여 문제로 걱정했는데 내일 오전 중에 입금이 안 되면 마냥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보통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입금되어 있는데, 지켜봐야지.

11월 9일(목)
오전에 입금이 안 됐다.
하루종일 그거 신경 쓰랴, 오늘 같이 일 하는 커피를 만들 줄 모르고 손이 느려서 내가 일을 두 배로 해야 해서 더 힘들었다.
예민해져서 코워커 붙잡고 하소연을 많이 해서 너무 미안했다.
코워커는 심지어 약 4주 전 급여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보다 더 짜증 날 법한 상황인데 내 얘기 들어주느라고 아마 오늘 고생이 많았을 거다.

가뜩이나 매일 바퀴벌레 보는 것도 짜증 나는데 돈까지 제대로 안 들어오고,
매출은 늘고 사람은 없어서 매일매일이 힘든 와중에 돈까지 떼 먹히다니!
다행히 보스가 오늘 잠깐 들렀길래 나 돈 못 받았다고 하니까, 알고 있다면서 자리를 떴다.
바쁘게 가는 사람 붙잡고 얘기한 거라 길게 얘기하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알고 있다는 말로 상황이 끝나니까 뭔가 허무했다.
그렇지만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는 거는 아니니까 그것에 위안을 삼아 잠시 기분이 괜찮아졌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일 하는데 2주 치 급여 가지고 진짜 치사하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마자 다시 기운 빠졌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손님에게도 말이 곱게 안 나가고, 안 하던 실수도 했다.
다행히 잘 마감하고 코워커에게 오늘 내가 너무 감정적이라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코워커는 사과할 필요 없다, 다 이해한다며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일도 힘들고 코워커 짐도 많길래 근처 역까지 바래다줄까 했지만 내가 장 보러 마트에 가야 해서 그냥 보냈다.

그리고 장 보고 나서 집에 왔는데 입금이 됐다.
장사 끝나면 하루 매출을 보스에게 보고하는데, 내가 보내서 내 급여 누락된 게 리마인드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입금 됐으니 한 시름 놓는데 이게 시작이 될까 두렵다.
오늘 같이 일 한 코워커는 임금 체불이 벌써 3번 째다.
첫 번째는 보스가 잘 해결해 줬다고 하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임금체불은 얘기하면 다른 사람한테 다시 얘기하라고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말만 계속 옮기는 중이라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내가 새로운 타깃이 될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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