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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12월, 한 여름의 연말.

호주 20 주차(23.12.1.~23.12.7.)

12월 1일(금)
벌써 12월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비록 여름 날씨이기 때문에 내 한평생 느껴온 차가운 연말의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달력을 보며 2023년이 고작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정말 바빴는데 다행히 매니저가 바쁜 타이밍에 도착해 바로 일을 도와줘 무사히 점심시간을 넘겼다.
남는 것 하나 없이 거의 다 완판해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로 퇴근했다.
그렇지만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행복해 힘듦을 잊을 수 있었다. 저녁 가득 먹고 후식까지 배부르게 먹은 후에 저녁 산책을 했다.
 
새로운 코워커와도 차근차근 호흡을 맞춰가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일이 힘들어도 같이 일 하는 사람과 잘 맞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한 주였다.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코워커가 하나하나 잘 배우고 해 나가는 모습에 연장자로서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남편이 내일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교외로 놀러 가자는데 과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딜 가든 아침 일찍 도착해서 사람 없는 분위기를 즐기는 우리인데, 그 먼 곳까지 가려면 평소대로 오전 5시에는 기상해야 한다.
그래도 주말만큼은 늦잠을 자고 싶은데, 우선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12월 2일(토)
결국 계획했던 곳은 가지 못 하고 대신 20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다녀왔다.
공원이 전부 평지라 걷기 편했고 마침 더운 날씨가 아니라 두 바퀴를 걷는 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서 좋았다.
산책 중에 지역 축제가 있는 건지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원을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모여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는 건 아는데 하기 싫다. 너무 힘들어서.
 
공원 산책을 마쳤는데 고작 8시 10분 밖에 되지 않아 이대로 집에 가기는 아쉽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검색하다가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카페를 발견해 커피 한 잔을 했다.
남편은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아이스커피를 나는 플랫 화이트를 먹었는데 독특한 커피 맛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이렇게 작은 규모의 카페에서 여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 하는 가게는 너무 바빠..
 
집에 돌아온 시간은 10시였다. 이대로 하루 외출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워 남편이 시내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축제에 가자고 했다.
예쁜 조명 보려면 밤늦은 시간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늦은 시간인 오후 5시쯤 출발.
놀이기구, 게임부스, 푸드트럭까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많은 것이 알차게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가족, 친구와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산타 모자를 쓴 사람들을 보자니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이상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에 왔으면 길거리 음식 하나 정도는 먹어줘야지.
버거를 파는 푸드트럭이 있길래 하나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내가 주문하고 몇 팀 더 주문을 받더니 진동벨이 모질라 잠시 주문을 보류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체감상 2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이게 음식 기다리는 손님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직원들이 바쁜 게 보이고 내 앞에 많은 사람이 주문을 한 걸 알고 있으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며 나도 앞으로 가게에서 일할 때 손님 많다고 당황하거나 빨리 하려고 억지로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음 주에는 이 푸드트럭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일을 해 봐야지.
기다리던 음식이 드디어 나오고 남편과 다소 센 바람을 맞으며 노상에서 음식을 먹었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이것 또한 인생의 즐거움이구나, 했다.
 


호주에 와서 악착같이, 까지는 아니지만 열심히 아끼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간혹 이런 경험을 놓쳤던 것 같다.
돈을 모아서 즐거울 수도 있으나 돈을 쓰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건데, 그동안 너무 아끼는 데만 치중했던 게 아닌가..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살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하고 호주로 온 만큼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는 명분 하에
스스로를 너무 집에만 가둬둔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일 했으니까 주말에는 그냥 쉬어야 한다며 하루 종일 집에만 있고, 똑같은 생활 루틴에 만족을 느끼고..
그 똑같은 삶의 방식이 싫어서, 도전하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건데 어느 순간 다시 한국에서처럼 살고 있는 나 자신이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개월. 
운이 좋게 집도 렌트하고 일자리도 빨리 구했다. 안정적인 수입과 안락한 집에서 편안함에 취해 있었던 건 아닐까.
도착해서 거침없이 이력서를 돌리고 트라이얼도 갔다 오며 새로운 경험에 재미있었다고 하던 나는 결국 안정적인 환경에 취해 버렸다.
새롭게 살고 싶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 호주에 발을 내디뎠던 그 순간, 그 마음가짐이 지금 다시 필요한 것 같다.
 
12월 3일(일)
언제나 그렇듯 대 청소로 시작하는 하루.
어제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찬 바람맞으며 있던 탓인지 몸이 피곤해 평소보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
아침 먹고 청소하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한 가지만 빼면.
 
결혼 전의 나는 피자보단 치킨을 더 좋아했는데 남편을 만나고 피(자에 스)며들었다. 
특히 도미노피자의 포테이토 피자를 가장 좋아했는데,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던 피자를 결혼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먹은 것을 보니
피자에 단단히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의 도미노피자와 해외의 도미노피자는 다른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서 먹던 메뉴는 호주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에 피자 먹는 것은 사실상 단념하고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냉동피자가 먹을만했고, 워낙 외식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피자를 주문해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기도 하다.
남편이 며칠 전부터 피자 먹고 싶다고 하고, 어제의 경험으로 즐길 땐 즐기자는 마음에 도미노피자에서 피자를 주문해 먹기로 했다.
 
한국 기준 M사이즈 피자, 사이드메뉴, 음료까지 약 17불의 가격이다.
호주 환율을 약 850원으로 가정했을 때 약 14,500원 정도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쫀득한 도우와 잘 늘어나는 치즈는 아무리 맛있는 냉동피자로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이었다. 사이드로 시킨 갈릭브레드는 한국에서 파는 마늘빵 같이 단 맛은 없었지만 담백한 빵에 마늘향이 잘 어우러졌다.
배가 불렀지만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피자, 갈릭브레드, 음료수 모두 다 먹어버렸다. 
 
불룩 나온 배를 안고 소파에 앉아 텅 빈 피자 박스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남편과 피자 시켜서 나눠먹던 때가 생각났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도 가끔 맛있는 거 같이 사 먹고, 주말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한 주의 고됨을 풀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돈을 벌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엔 그 피로를 푼다.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똑같지만 분명 이곳은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 오게 된 낯선 나라이고, 단순한 일조차도 처음 배워야 하는 새로움의 연속이다.
즐길 거리, 배울 거리가 앞으로도 무궁무진 한 이곳에서 삶의 즐거움과 책임감의 균형을 잘 맞춰 하루를 즐기고 그렇게 한 달을, 일 년을 잘 보내야겠다. 

12월 4일(월)
아침부터 두통이 있었다.
일에 집중하니 좀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오후가 돼서 헛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심했다.
급하게 마감하고 집에 오는 길에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도착하자마자 변기 붙잡고 토하는 소리에 남편이 놀라 헐레벌떡 약을 갖다 줬다.
약 먹으니 조금 살 것 같아 조금 누워있었다.
오늘 운동은 아무래도 못 하겠다.
두통에는 잠 만한 보약이 없지. 그냥 일찍 자야지.

12월 5일(화)
시간 참 빠르네. 벌써 12월의 첫째 주가 지나가고 있다.
어제 푹 잔 덕분인지 아침에 개운했다. 두통 말끔히 처치 완료!
좋은 컨디션 덕분에 기운 넘치는 하루를 보냈다.
코워커가 쉬는 시간일 때 손님이 연달아 들어와서 순간 앞이 캄캄했지만,
지난 토요일의 푸드트럭을 떠올리며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처리하니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이번 주부터는 점심 메뉴를 바꾸기로 했다.
늘 빵을 먹었는데 매일 밀가루 먹는 게 마음이 불편해 의식적으로 줄이기로 결심.
코워커가 가게에 있는 라이스 누들로 한 끼 해결길래 따라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 이번 주는 국수로 점심을 해결하려 한다.

내일은 새로 온 22살 baby 직원과 같이 일 한다.
아직 알려줄 게 많아서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이번 주 쉬프트 많이 못 받았다고 아쉬워하길래 지난 일요일에 한참을 달래줬는데, 내일 기분 좋게 같이 일 하면 좋겠다.

12월 6일(수)
새로운 코워커가 일 머리가 좋고 야무지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커피를 전혀 만들 줄 모르는 아이인데 에스프레소 샷 추출에 이어 오늘은 우유 스팀을 알려줬다.
많은 사람이 우유 스팀할 때의 소리와 뜨거운 온도 때문에 스티밍을 무서워한다.
다른 코워커도 이걸 무서워해서 커피 만드는 데 세월아 네월아 걸려서 복장 터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과연 이 친구가 잘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기계 앞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두 번, 세 번 해 보더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한참을 연습했다.
마침 방문한 매니저가 보더니 자세 교정 등 더 알려주고 나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아침에도 새로운 걸 알려주는데 말하지 않은 부분도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 하는 방식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 하고 싶은 말을 100%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함께 일을 하면서 호흡을 잘 맞춰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일은 대량 주문이 있어 중간에 바쁠 것 같다.
하필 우리 쉬는 시간에 픽업하러 온다고 해서 쉬는 시간을 조금 미루고 준비하려고 한다.
내일 하루도 무사히 잘 넘기기를.

12월 7일(목)
정말 빨리 오픈 준비를 끝내고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나 했더니 보스가 방문했다.
30분 정도만 머물다 갔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았는지 한참을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어제 걱정했던 대량 주문도 시간 맞춰 준비를 끝내 손님에게 무사히 전달했다.
12시가 넘어도 손님이 없이 한가해서 코워커가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물밀듯이 손님이 들이닥쳤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압박감이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매니저가 있어서 덜 정신없었다.

가게에는 손님이 주문할 수 있는 게 크게 세 카테고리인데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한 카테고리 안에서만 주문하면 바쁠 게 없다.
한 손님이 골고루 주문하면 그때부터 정말 골치 아프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와중에 누구는 포장해 간다, 먹고 간다, 하면 더 난리 나는 거다.
오늘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큰 미션 하나 해결한 것처럼 바쁜 상황을 즐겼다.
힘들지만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바쁘지 않은 데 즐기지 못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점심으로 빵이 아닌 쌀국수를 먹어서 그런지 배가 금방 꺼진다.
집에 오면 4시쯤 되는데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저녁을 먹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는 시간 따져보면 거의 간헐적 단식 급이다.

내일은 한 주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오늘 하루처럼 무사히 잘 넘기고 즐거운 주말을 맞이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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