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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납작 복숭아는 정말 맛있어!

호주 21 주차(23.12.8.~23.12.14.)

12월 8일(금)
평소 금요일과 달리 많이 바쁘지 않아 코워커에게 우유 스팀하는 법을 한참 알려줬다.
알려주는 대로 곧 잘하길래 조금만 더 연습하면 혼자 커피 주문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부터 새로운 코워커와 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새로운 사람이 주는 에너지, 그리고 그 사람이 일을 즐기고 있음을 옆에서 느끼며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받아간다.
일 하는 방식, 속도도 비슷하고 같은 아시아 내 국가에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쉽게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매니저와 보스도 기존 코워커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내가 일 할 때 예전 같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스가 잘 오지 않는 시간에 방문 헤서 격려 아닌 격려를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매니저도 평소보다 더 가게에 자주 방문했다.
비로소 내가 괜찮아 보였는지 다행인 것 같다, you look happy now,라고 종종 말을 한다.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왔는데 기존 코워커한테서 연락이 왔다.
새로 일하는 곳 급여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당초 얘기가 됐던 만큼 급여를 못 받을 것 같은 상황이라고 한다.
페이슬립까지 보내주며 이것 좀 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게 가게에서 일할 때보다 돈이 더 적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직원들이 한 두 달 내로 퇴사할 예정이라 앞이 캄캄하다길래 There's no heaven이라고 말했더니 내 말이 맞다고..

멀리서 볼 땐 좋아 보여도 막상 직접 들어가 보면 어려움이 반드시 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즐기는 경지에 올라갈 것인지,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최근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나의 마음가짐과 함께 일 하는 동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즐기자, 어차피 오늘 하루는 지나간다, 는 마음가짐에
나와 호흡이 잘 맞는 동료가 있다면 일이 주는 어려움은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코워커에게는 곧 다가올 동료의 부재가 직장을 즐기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지 않을까.
모두가 떠날 생각을 하는 공간에 있다 보면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서로 못 본 지 지난 3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조만간 같이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직접 나눠야겠다.

12월 9일(토)
이전에 다녀온 강아지 천국 해변을 다녀왔다.
너무 이른 아침이었지만 주인과 뛰노는 많은 강아지들이 있었다.
귀여운 것을 보면 이렇게 힐링이 되는구나.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는 아쉬워 7월에 다녀온 마켓에 다녀왔다.
그때는 차가 없어 기차 타고 다녀왔는데 이제는 차를 끌고 가다니! 근 3,4개월 사이에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 게 실감됐다.
마켓에서 먹었던 망고라씨가 생각나 도착하자마자 망고라씨 가게로 직행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얼음 없이 망고라씨를 컵에 한가득 담아주어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마켓을 가만히 둘러보는데 드문드문 납작 복숭아를 판매하는 과일 가게가 보였다.
호주에 오기 전, 직장 동료로부터 호주 가면 납작 복숭아를 꼭 먹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이 호주에 거주할 때 납작 복숭아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며 추천을 해 줬고, 은근히 비싼 가격에 파는 곳이 몇 없어 못 먹어보고 있었다.

마침 있으니 맛이나 보자 싶어 4개만 구매했고 집으로 돌아와 차갑게 냉장고에 두었다 남편과 나눠먹는데..
향기는 분명 복숭아 특유의 상큼한 향기가 나는데 맛은 아주 진한 단 맛이다!
마치 샤인머스캣을 처음 먹었을 때 받았던 충격처럼, 아니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 있다고?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다. 비싸더라도 한 박스 가득 사서 먹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눈과 입이 즐거운 하루였다.
강아지와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맛있는 망고라씨와 납작 복숭아를 먹으며 기분 좋게 배를 채웠다.
이틀뿐인 휴일 중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아 기쁘다.

12월 10일(일)
오후에 근처 스타디움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길래 가려했는데, 아침부터 남편과 나 모두 몸살 기운이 있어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으슬으슬 춥고 남편은 계속 재채기하고 나는 미열이 있어 도저히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오후에 셰프에게 연락해서 내일 하루만 쉰다고 말할까 고민했는데
출근하면 벌 수 있는 돈을 생각하니 차라리 오늘 푹 쉬고 내일 일 하러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잠도 한참 잤는데 저녁 되어 열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약 먹고 얼른 자야지.

12월 11일(월)
푹 자서 그런지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출근해도 괜찮은 몸 상태라 일찍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한 느낌이 아니라서 좀 덜 바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역대 가장 바빴다고 생각했던 지난 목요일보다 훨씬 더 바쁜 하루였다.

손님 수도 많았고, 다양하게 여러 개 시킨 손님이 중간중간 있는 바람에 이거 만들랴, 저거 만들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쉴 틈 없이 바빴던 러시 타임 후에 매니저가 방문해 매출이 높다며 좋아했다.
너는 좋지만 우리는 안 좋은데..
코워커 왈, 우리 두 명이서 어떻게든 일 하면 이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인원 충원을 안 해줄 거다.

나도 코워커의 의견에 동의한다.
사실 매출이라는 거는 손님이 얼마나 기다릴 의지가 있느냐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 명, 두 명이서 고군분투하느라 음식을 받기까지 20분이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손님이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하면 당연히 그 손님이 지불한 값만큼의 매출은 오른다.
일 하는 인원이 몇 명이냐보다 손님이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 가 매출 상승과 하락에도 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게 음식, 커피가 20분을 기꺼이 기다릴만한 수준인가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샌드위치, 커피는 주변 카페에서도 판매하는 메뉴이고 맛은 대부분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 특별한 메뉴도 없고, 내가 엄청 친절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한 번 터지는 높은 매출은 정말 예외적인 일인데 보스나 매니저가 일희일비하는 것이 일 하는 입장에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일 하는 사람들만 힘든 거지 뭐.

어쨌든 마감 시간에 정말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오늘은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문을 닫았다.
집에 일찍 도착해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떡 강정을 먹고 슬슬 잘 준비를 해 보려 한다.

오늘 손님이 많았으니 내일은 없겠지?

12월 12일(화)
역시 예상대로 손님 없이 조용한 하루였다.
특별히 바쁜 것도, 힘든 것도 없었던 날.
다만 문 닫기 직전까지 손님이 오는 바람에 마감하는 데 불편하긴 했다. 그래도 내가 청소하는 동안 코워커가 손님 상대 해준 덕분에 무사히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다.

매주 화요일은 기름 값이 제일 저렴한 날이다.
항상 주말에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주유까지 하기 때문에 내가 주유할 일은 없었는데,
퇴근길 집 근처에 저렴한 주유소에 가서 내가 직접 주유하기로 했다.
호주 주유소는 주유 기계에서 결제를 할 수 없고 주유를 마친 후 편의점 안에 있는 결제 창구에 가서 결제를 해야 한다.
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산하러 편의점에 가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게 굉장한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도 많은 날에는 결제를 하는 나도, 내 자리에서 다음 주유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한참을 주유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키오스크 결제가 활발한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별 수 있나. 그냥 이 나라에 적응하는 수밖에.


12월 13일(수)
중간에 보스가 커피 마신다고 들렀는데 한참 동안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바쁜 시간에 코워커를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다.
보스가 오는 건 좋은데 가끔 일 할 사람 붙잡고 한참 얘기하면 참 난감하다.
말하는 중에 끊고 손님 응대하기도 그렇고, 손님을 못 본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스가 왔던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무난한 하루였다.

퇴근 후에는 친구와 영화 보러 간 남편을 픽업하러 갔다.
호주 사람들 빨리 퇴근해서 길 안 막힐 줄 알았는데 저녁 6시에 차가 많은 걸 보니 퇴근 시간은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출퇴근할 때는 해를 등지고 운전하기 때문에 햇빛 때문에 앞을 잘 못 보는 일이 없는데, 남편 데리러 갈 때는 해를 정면으로 보면서 가느라 참 힘들었다.
호주에선 진한 선글라스가 정말 필수다.

남편 친구랑도 인사하고 재밌게 놀았다는 남편 얘기 들으며 저녁을 맞이했다.
남편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좋다. 자칭타칭 shy guy라 친구 못 사귀고 심심하게 학교생활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안심이다.

12월 14일(목)
아침에 단체주문 픽업 건이 있어 마음이 급했다.
꼭 이런 날 손님이 많이 온다. 바빠 죽겠는데 정말로.
평소랑 똑같은데 내 마음이 바빠서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말 오늘은 오전 내내 쉴 틈이 없었다. 코워커와 나는 오전 10시부터 돌아가면서 30분씩 쉬는데 10시까지 손님이 계속 오는 바람에 여유를 즐기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쉴 때부터는 손님이 조금 덜 했고 점심 러시 전까지 손님이 없어서 코워커에게 커피 가르쳐주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가 일찍 끝난 건지 창 밖으로 드문드문 어린 학생들이 보였다.
세 명의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이 와서 도넛을 하나 사 갔는데, 그 작은 도넛을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남는 도넛 하나를 그냥 줬다.
어차피 못 팔면 다 쓰레기통 행인데, 사람들에게 무료로 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일 하는 사람 입장에선 소소한 행복이다.

내일부터 호주 대부분의 학교가 긴 방학에 들어간다. 최소 6주에서 3개월 동안 쉬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다. 손님으로 가끔 오는 primary school 다니는 애기한테 물어보니 3개월이나 쉰다고! 좋겠다...
보통 긴 holiday에는 여행을 많이 가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가족 데리고 우르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코워커에게 말해주었다.

내일이 오는 게 조금 걱정되지만, 코워커와 함께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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