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말

그냥 들어주면 좋겠어

by 플로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너무나 TMI로 나누던 사이였다. '이런 얘기까지 들어도 되는 걸까?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작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던 친구.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영화를 봤어. 어딘가를 다녀왔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느낌이었어.'라는 말들이 왜 그리 가시 돋친 비교와 냉소 섞인 반응으로 되돌아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족 같은 사이일 뿐 가족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꽤 자연스럽게 그리고 꽤 상처받는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 속 "우리 남편도 안 주는데 왜 너를 줘?"라는 식의 말이었던가? 그때까지의 난 훨씬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나와 내 친구의 관계가 이제 막 가족이 된 친구와 그 남편의 관계보다는 더 끈끈하다고 믿고 있었다. 상당한 착각이었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해버리는 관계 그리고 내가 가족이 아닌 그저 절친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계속해서 달라지는 환경과 주변 관계. 남편과의 불화를 토로하는 친구에게 싱글인 나는 그 남편의 입장을 열심히 변호했다. '둘이 헤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친구 남편을 옹호하다 무섭게 욕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위로하고 달래는 시간들이 점점 자주 반복되고 길어짐에 따라 점점 더 불편해졌다. 늘 같은 불만과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 것 이외엔 전혀 아무런 변화도 노력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 '왜 본인은 전혀 고치지 못하면서 상대에게만 변하길 바라지?'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늘어났다. 더 이상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일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어쩌다 한 번씩 카톡을 통해 브리핑하는 정도. 나의 평범한 일상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으면서 내가 조금만 불행하다고 말하면 너무나 공감하는 친구의 모습에 기분이 상했다. 불행 동료를 발견해서 신난 듯한 모습이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


나는 그냥 한 얘기인데 자꾸 비교를 한다. 그냥 듣고 넘기면 될 이야기를 가시 돋친 말로 자신에게는 그것도 최선이었다는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무슨 말이지?' 왜 갑자기 그렇게 얘기가 진행되는 거야? 이해하기 쉽지 않고 기분이 상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너는 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우리'라는 말로 묶어서 비교하고 있는 걸까? 그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지?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평범에도 조금은 모자랄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변해버린 지금의 친구와 '우리'로 묶이는 것은 싫다. 나는 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불행을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아무런 노력도 없이 욕심만 가득한 너와 '우리'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말 역시 혼자 삭힌다. 친구의 분노를 사지 않고 이런 말을 꺼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이 나의 노화뿐 아니라 얼마 없는 친구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슬프다. 나의 소중한 친구가 언젠가 스스로 깨닫고 예전처럼 좋은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라는 말로 날 묶어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친구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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