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심심하고 무료한 나날이다. 해야 할 일도 있고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도 있지만 꽤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쉽게 시작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니 심심하고 무언가 건설적인 일을 시작하기에는 기력이 다소 모자라는 느낌.
보고 싶은 공연은 있으나 날짜가 멀거나 지역이 멀고 앞으로의 내가 어찌 될지 모르는 알바 인생이다 보니 벌써부터 급하지도 않은 티켓을 잡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큰 흥미 없이 나중에 보러 갈 공연의 출연진 정보를 살펴보던 중이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매우 좋아했던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와! 이분이 아직 공연을 하는구나?'라는 반가움에 조금 찾아보니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분은 한 해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공연을 하고 계셨다. 어떻게 한 번도 못 볼 수가 있지?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또 한 명, 과거 꽤 심각하게 빠져있던 또 다른 배우분은 뭐 하시는지 궁금해졌다. '우와, 나만 몰랐지 여전히 다들 매우 바쁘게 살고 있구나.' 애정의 시절이 지나서 이제 더 이상 그분들의 이름이 내 공연 선택 기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공연을 보러 다니는데 어떻게 이렇게 소식이 깜깜할 수 있지?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의 관심이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보니 한때 매우 애정했던 배우들을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은퇴시켜 버렸나 보다. 예전에 공연에서 보았던 배우들의 대부분을 티브이 드라마에서 다시 만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티브이에 안 나오면 은퇴'라는 착각을 한 듯하다.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지지만 나 아니어도 여전히 굳건한 팬층을 가지신 배우분들이니 너그러운 맘으로 이해하실 거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얼마 전 새벽에 아주 뜬금없이 그리고 다소 때늦은 질문을 한 오랜 친구의 메시지가 목 안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남아있다. 이미 몇 달 전에 물었어야 할 질문이었는데 모르는 척하길래 그저 무관심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길 기다리는가 했더니 마치 전 남자 친구처럼 늦은 새벽에 뜬금없이 문자를 보냈길래 무시하기는 애매해서 좀 늦은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친구는 그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묻고 말 일을 '도대체 왜 물어본 거야?'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다시 연락을 해서 질문의 의도를 물어볼 만큼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얇디얇은 인간관계가 꽤 산산조각 났는데 그럼에도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일 노력은커녕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제 친구의 이상한 화법을 견디며 대화를 이어갈 만큼 애정도 관심도 남아있지 않다.
어디 외딴곳에 혼자 고립 중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내 인간관계는 매우 그러하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정말로 혼자만 남아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서 하는 걱정이 다시금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궁금하지 않지만 친구에게 질문의 의도를 물어볼까? 하지만 벌써 일주일도 넘은 일을 지금 묻는 것도 웃기지 않나? 하지만 그거 외엔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그래, 다음에 또 정체불명의 질문을 하면 그때는 꼭 대화를 이어가 보자!'라는 아마도 또다시 지켜지지 않을 다짐을 했다.
귀찮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가. 하지만 영원히 친구 없이 혼자 사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고민과 걱정이 공존하기에 이 귀찮음과 무관심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귀찮음을 감수하지 않으면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난 지금 그 귀찮음을 감수할 만큼 이 관계에 관심이 없다. 큰일이다! 이러다 나의 아이돌님 사진이 프린트된 커다란 베개를 껴앉고 그분의 사진으로 도배된 방 안에 혼자 앉아 음침하게 웃고 있는 무서운 오타쿠가 된 미래 상상도가 너무 적나라하게 떠올라버렸다.
꽤 무서운 상상이지만 현실도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지금의 무관심을 억지로 이겨내며 시간과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는 관계인지 자꾸 계산을 하게 된다. 어릴 땐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친구였는데 이제 아무리 정성껏 계산을 해도 귀찮음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