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걸까? 내가 몰랐던 걸까?

역시 한길 사람 속 알길 없다

by 플로터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그리고 그중에도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는 2명밖에 없다. 그나마 B는 어느 순간 연락이 잘 되지도 않고 단톡방에서 읽씹을 하는 유령 회원 수준이 되어서 3명이 있는 방이지만 대화는 A와 나, 둘이서 이어나가고 있었다. B는 어쩌다 한 번씩 답을 해도 매사 부정적이고 꼬여있거나 대화와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 대잔치를 하는 일이 잦아 행간까지 찾아 읽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피곤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로 시작하는 A에게 이제 단톡방에서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A가 꺼낸 일상의 공유는 나와 A의 개인 대화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B가 등장해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앞뒤 내용과 별 관련이 없거나 자신과 비교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뉘앙스나 행간에 크게 관심이 없는 A는 B의 우울한 상황을 대리 변명하며 나에게 이해하라고 하거나 때로는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중 A와 먼저 싸웠다. 싸웠다기보다는 A가 너무 큰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기분이 상해서 대놓고 '말을 좀 생각하고 해라'라고 한 다음 대화 단절 상태이다. 이대로 평생 안 볼 수 도 있고 어쩌면 시간이 좀 많이 지나 다시 또 예전처럼 지낼지도 모르는 그냥 현재는 단교 상태이다.


그런 상태를 아는 B는 나와 A의 관계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A와 싸우고 혼자가 된 나를 걱정하는 듯한 이상한 선톡을 가끔 보내곤 했고 대화는 역시나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쌓여왔으나 A로 인해 발산되지 못했던 B에 대한 불만과 짜증을 막아줄 방어막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농담이 뻔한 말에 정색하며 나를 비난하고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놓고 그 제안을 거절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B에게 화를 냈다.


이제껏 중간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던 A가 사라지니 B의 독설과 비난이 그대로 나에게 닿아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독설에 화를 내고 절교 결심을 굳히고 나니 내가 이제껏 지켜 온 우정이 다 나 혼자만의 오지랖이었던가 싶다. 우리 셋은 평생 친구일 줄 알았다. 그런데 A가 사라졌는데도 B는 관계 호전을 위한 노력은커녕 그나마 셋 사이에 남아있던 가느다란 실마저 스스로 끊었다. 도대체 나와 A는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 B의 무례함을 참아왔던 걸까. 도대체 B에게 나와 A는 어떤 존재였던 걸까.


착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B는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래도 뜻 없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넘겼었다. 그리고 정 기분이 상하면 A에게 하소연하며 화를 풀거나 되려 A에게 내 잘못이란 꾸중을 들으며 견뎌온 시간이 거의 10년이었다. 힘든 친구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나와 A의 배려였고 우정이었다.


지금이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그것이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알고 나니 그나마 간당간당 남아있던 정도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도대체 이 관계가 무어라고 할 말도 못 하고 그런 독설과 무례함을 다 견디고 옆에 있었던 걸까. B에게 나는 그저 오랜 시간 곁에 있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반에 말했어야 했다. 기분이 나쁘다고 그것은 무례한 언행이라고 표현했어야 했는데 내 딴엔 배려한답시고 참아온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B에게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고 나의 상처는 계속 곪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산처럼 많다. 그간 배려라고 생각해서 말하지 못한 것들, 내가 참아왔던 B의 무례함. 이왕 이렇게 된 거 맺힌 속이라도 풀고 싶은데 그마저도 무시할 것 같은 B의 반응이 너무 뻔히 보여서 그만두려 한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며 계속 싸우고 화해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달랐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알던 내 친구의 모습이 나의 착각이었던 건지 아니면 나의 옛 친구는 이미 변해서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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