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터, Floater
아주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
나는 간간히 일하고 소소하게 돈을 버는 대신 나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 혼자 사는데 필요한 비용이 그렇게 많지도 않아서 경제적 압박감이 덜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자유로운 시간 덕분에 여행 특가가 뜨면 언제든 짐을 싸서 떠날 수 있었고 매우 저렴한 가격과 사람이 많지 않은 엉뚱한 시기에 즐길 수 있는 여행만으로도 나의 삶은 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소소한 행복과는 별개로 내 삶의 방향은 일단 일반적인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괜찮다고 위안해도 조금씩 변해가는 주변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순간의 불안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평온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래도 되나?'라는 극심한 걱정과 우울감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머릿속으로 나름 치열한 찬반토론을 거쳐 스스로를 납득시켜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가고는 한다. 다소 균형이 붕괴된 위안이지만 어차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해봐야 우울해지는 것은 나뿐이란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기에 그러한 자기 위안도 나름 효과가 있다.
나는 꽤 제멋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사람들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다. 영어 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들 앞에서 막힘 없이 말을 하고 나름 재미있다는 말을 듣는 말솜씨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심장이 두근거리며 매우 긴장한다. 물론, 그러한 내면적 초긴장 상태가 외면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사실 사람이 많은 곳이나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혼자 여행을 다닐 용기가 전혀 생기지 않았고 그 덕분에 혼자 돌아다녀도 그냥 '관광객인가 보군!'이라며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지 않을 만한 해외로만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리저리 길을 헤매며 기웃거리고 다니는 것은 여행객의 평범한 모습이지만 왠지 한국에서 길을 잃거나 기웃거리는 내 모습은 남들에게 매우 수상하고 시선을 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말도 안 되는 이 바이러스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의 발을 묶어 버렸다. 매년 한 번씩 괌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틈틈이 특가 여행을 가며 나름 일 년에 한, 두 번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저렴한 플렉스를 즐겼었는데 이제 그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무는 상황이 지속되니 쓸데없는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모으지 못했을까? 혼자 나이 들어 고독사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이제 와서 해봐야 딱히 해결책이 없는 그저 우울함을 불러오는 생각뿐이었다.
우울이 살짝 깊어지려 할 즈음 정말 오랜만에 괌에 갔다. 그리고 20여 년 만에 나를 처음 플로터라고 불렀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국과 괌을 오가는 생활을 할 때, 괌에 들어가면 나는 고모의 가게에서 알바를 했다. 우리나라는 모르겠지만 괌 마트에서 캐셔를 하려면 보건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잠시 알바 중인 내가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는데 때마침 직원들의 보건증 및 가게 위생 상태를 점검하는 검역관이 가게에 왔다. 영주권 상태였으니 불법 신분은 아니었으나 보건증이 없으니 위법일 듯하여 잔뜩 긴장한 나와 달리 이미 친분이 두터우신 고모님은 조카이고 한국에서 와서 잠깐 가게를 도와주고 있다고 나를 설명했다. 그러자 무서워 보이던 검역관은 웃으며 악수를 권하며 나를 '플로터'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꽤 오랜만에 괌에 갔다. 괌은 변하지 않았고 나의 생활 역시 크게 변화하지 않아 오랜만임에도 관광이 아니라 다소 고된 스케줄로 가게에서 알바를 하며 밤마다 가열차게 식욕을 채우며 쇼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간만의 육체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가던 어느 날, 목에 보호대를 한 추레한 차림의 노인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12팩 맥주를 겨우 들고 카운터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왠지 짐을 들어다 줘야 할 것 같은 모습이라 '왜 저런 몸을 하고 맥주를 사러 굳이 오나'라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는데 그 손님이 떠난 이후 그 사람이 바로 그 옛날의 검역관이라고 고모가 알려주었다.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그렇게 플로터라는 단어가 기억났다. 옛날의 당당했던 그 검역관은 어느샌가 늙고 병든 노인이 되어있고 나는 여전히 똑같은 상황 속에서 부유 중이다.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나 내 생활환경은 딱히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을 할 순간이 없는 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서열을 정하기 위해 나이를 밝힐 이유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는데 그마나 자주 만나는 친구는 나와 조금은 비슷해서 나잇값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사람이 어느새 늙고 병들어 보기 딱한 노인이 된 것을 보니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주변이 안정되다 보니 나의 삶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어릴 때 생각했던 지금의 내 나이는 매우 안정적이고 정말 어른이었는데 실제 그 나이가 된 나는 진로 고민을 하는 격동의 청소년과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는 무엇이든 도전해도 크게 늦지 않을 청소년과 달리 나의 선택은 생각이 너무 많고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크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