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거리

도대체 어떤 사이였던 걸까

by 플로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다. 핑계 같은 이야기 일 수 있으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를 경험한 나는 사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믿음이라거나 안정감 같은 것이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그 당시 우리 할머니의 연세는 고작 60 정도였을 것 같다.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매우 할머니였지만 지금 보는 60대는 노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과거의 60대와 현재의 60대는 다르지만 말이다.


할머니와의 생활에서 불편한 것 중 첫 번째는 부모 없는 설움이었다. 명절이 되면 모든 친척들이 모였던 할머니의 집. 삼촌네 가족과 고모네 가족. 내 나이는 사촌 중에서 중간에 끼여 있었다. 노인답게 명절 음식 준비에 남자인 손자들은 철저하게 배제시킨 할머니는 자잘한 심부름을 주로 손녀들에게 시켰는데 이상하게도 언니나 동생들이 있는데도 그 심부름은 다 내 차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전혀 심부름을 하지 않는 지금에도 여전히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가 싫다.


그리고 그 잠시 잠깐의 서러움보다 날 힘들게 했던 것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늙었던 할머니였다. 지금도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나는 어린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어린 시절 할머니 옆에서 잠을 자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멈추면 매우 불안해했다. 지금이야 그것이 수면 중 무호흡이란 것을 알았지만 어린 나에게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멈추는 것은 뭔가 죽음이 연상되는 공포였던 듯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심 어쩌지'라는 공포가 꽤 오랜 시간 날 힘들게 했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갑자기 내 삶에서 나가고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너무 어린 시절에 경험해서인지 아직까지도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지속성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마지막을 대비하는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솔직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너무 기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이 나만의 일방통행이라고 느껴져서 몇 번이고 그만해야지라고 다짐하고 행동에도 옮겨봤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아주 사소한 위로 한 번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끝은커녕 제대로 된 시작도 없는 사이임을 알면서도 그저 잠시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스스로 위안했던 듯하다.


어느 날은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마치 우리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도 되는 사이인 것처럼 행동하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은커녕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배제한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뜩이나 거리감 측정에 취약한 나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모르는 척 그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나? 아니면 어제까지 그가 했던 것처럼 나도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어도 되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걱정만 하다 병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나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들일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스스로를 잘 속여왔으나 이제는 아무리 흐린 눈을 하고 아닌 척하려 해도 너무나 명확한 그와의 거리감을 모르는 척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의 일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좋을까. 지금은 마지막 퇴장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슬프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내 마음의 끝이 조금은 보인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내가 사람과의 거리감에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나마 사람과의 거리에 조심감이 많아 덜 다치고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모르겠다. 마지막까지도 그와 나의 사이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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