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

아무 일 없이 평온하기를

by 플로터

작심삼일이라 했다. 마음을 먹은 지 3일 만에 그 결심을 스스로 배신하는 매년 꽤 많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새해 루틴이랄까? 물론 훌륭하게 1년 동안 그 계획을 실현하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아마도 적어도 10년 이상 작심삼일 파에 속해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웃긴 것은 그 10년 이상 동안 내가 세워온 새해 계획은 언제나 다이어트 성공이었다.


1월 1일이 밝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두 번의 새해가 있지 않은가! 2024년 12월 31일은 이제 한 해가 끝난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었다. 어느 순간인가 새해가 오는 것은 노쇠해 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된 지 오래인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떠나보내는 해를 맹숭하게 보낼 수는 없으니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거나하게 안주 한 상 차려 혼자만의 송년회를 즐겼다.


그리고 숙취로 인해 2025년 1월 1일은 다소 몽롱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엄청 마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과음을 했는지 하루가 다 지나도록 상태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소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1년의 시작인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해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믿음이 조금 있다. 그래서 건실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으나 결국 2025년 1월 1일은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운동마저도 하지 않고 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 나에겐 또 한 번의 새해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바야흐로 그 또 한 번의 새해도 일주일이 넘게 지난 2월 7일. 그리고 또 한 번의 새해 또한 전날 새해 음식을 하느라 고생했으니 한잔 하자고 시작한 자리가 신나는 술자리로 이어지는 바람에 음력 2025년 1월 1일 또한 숙취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시침을 떼고 학생들에게 새해 계획을 물었다. 영어 수업에서는 거의 전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몇 질문 사항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새해 계획이다. 단어를 알려준답시고 시작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던지며 속으로는 꽤 뜨끔했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단골 계획마저 다짐하지 않고 시작한 나의 2025년. 그런 주제에 타인에게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시치미를 떼고 묻고 있다니.


매일 업무로 바빠 1시간짜리 수업을 30분으로 자체 단축 중인 학생은 올해 대학원 입학이 예정되어 있다. 당연히 그 학생의 새해 계획은 학교 열심히 다니기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는가 하면 아직 30대 초반인 학생은 자신은 원래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것은 수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이라 매우 난감했지만.


어쩌면 내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작심삼일의 사자성어에 부합하기 위해 쓸데없이 그리고 의지도 없으면서 새해마다 스스로에게 가짜 약속을 해왔는지도. 다이어트야 평생의 염원이지만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나의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은 음주이거늘 2025년 두 번의 1월 1일을 모두 숙취로 보내지 않았는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다, 이것이 늙는다는 것인가'라는 조바심이 들었었다. 어릴 때처럼 장래 희망을 생각할 수 없는 나이. 되지 않을 것들과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나이. 그래서 어쩌면 꽤 어린 나이에도 없었던 새해 계획을 마치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억지로 지어냈는지도. 남들은 모두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같아서 나 또한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새해 계획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새해라 그런지 연예인들 또한 서로의 새해 계획을 많이 묻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위안을 받는다.

"계획은 없고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이 평온했으면 좋겠어요"


계획보다는 바람이지만 그래 나 역시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가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저 평온한 한 해를 기원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나의 현재 삶은 안주하기엔 조금 빡빡한 듯 하지만 그래도 지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더 나아진 삶을 노릴 의지가 없다면 그나마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조금이라도 더 평온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5년은 좀 더 평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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