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장소 그리고 사람

마이 스토어

by 플로터

고모가 가게를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한 20년 가까이 된 듯하다. 그리고 그 가게를 인수하기 전부터 고모네 집이 그 동네에 있어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고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음료수를 사러 그 가게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매우 어둡고 뭔가 음침한 분위기의 가게였고 주인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게를 고모가 인수하면서 일단 아주 밝아졌다. 전등을 바꾸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 가게에 익숙해져서 좀 더 밝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늘 주인이 상주하는 흔하지 않은 운영 체계가 되면서 당연히 좀 더 깨끗해졌다. 좁아 보였던 가게의 선반들을 몇 개 빼서 선반 사이 복도가 좀 더 넓고 쾌적해졌고 냉장고에 엘이디 조명을 달아 음료수가 더욱 시원해 보이는 착시 작용도 일어나게 되었다.


한국에 나오고 난 직후에는 괌에 들어가면 적어도 3달 정도는 머물렀고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고모네 가게에서 알바를 하다 보니 나 역시 가게의 긴 역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에 몇 달만 보는 나에게 단골손님들은 '어디 있었어?'라며 마치 휴가를 다녀온 사람을 대하듯 인사했다. 한국에 있었다고 하면 휴가 다녀왔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변함없는 그들 덕분에 어느새 성인이 되어 술이나 담배를 사러 오는 오랜 단골손님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며 지속적으로 신분증을 요구하는 건망증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어느 유튜버가 자신이 자랐던 캐나다의 동네를 소개하며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며 놀랍도록 변화가 없는 동네라고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아 저게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괌 또한 내가 고등학생일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모의 가게 또한 나에게만 변화가 일어난 장소일 뿐,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아기였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변함없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동네 마트일 뿐이다.


운전을 하다 경찰에게 걸렸다. 운전 면허증을 제시하라는데 한국 면허증이 없길래 괌 면허를 제시했더니 말이 길어졌다. '관광객인데 왜 괌 면허증을 가지고 있냐?'는 취조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고모네 가게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경찰은 '그럼 날마다 총을 차고 있는 그 작은 남자가 너네 삼촌이야?' 묻더니 '거기 내 가게야'라며 한참 더 수다를 떤 끝에 날 보내줬다. 그리고 나중에 물어보니 고모 이전 주인아저씨가 항상 총을 차고 있었다고 한다.


괌 사람들에게는 '마이 스토어'가 있다. 그리고 고모의 가게는 꽤 많은 괌 사람들에게 '마이 스토어'로 불리고 있다. 아기였을 때부터 다녔던 '내 가게.' 아기였을 때 부모님과 함께 왔다가 나이가 들어 이제는 술을 사러 오는 추억이 그대로 남은 가게.


한국에서 내가 좋아하던 식당은 어느샌가 문을 닫았고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은 무슨 일인지 줄줄이 사라졌다. 주호민 님의 파워가 나에게도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맛집인데도 사라진 가게들이 꽤 있다. '마이 스토어'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며 가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조금은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다.


괌의 추억이라고 해봐야 꽤 아웃사이더 분위기로 학교를 다녔을 뿐이고 이제는 남아있는 친구도 없는데 자꾸 괌이 내 유년의 장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그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 가도 변함없는 장소 그리고 사람들. 어쩌면 나는 너무나 부지런히 변화하는 한국의 분위기에 다소 주눅이 들어 멈추어진 장소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새것을 좋아한다. 새 차, 새 폰, 새돈 그리고 기대치 못했던 순간 가끔씩 찾아오는 새로운 변화. 하지만 사람이나 장소만큼은 조금은 오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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