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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희 Aug 24. 2024

1화. 프롤로그



                            

-귀하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세라는 눈을 비비며 문자를 보고 또 봤다. 발을 동동거리며 환호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바닥을 구르는 소리에 음료를 고르던 손님이 놀란 눈으로 계산대를 바라봤다. K정보통신회사가 생애 첫 회사라니, 세라는 미친 듯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취준생이라는 꼬리표를 뗄 때가 온 것이다.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아침부터 내리는 장대비에도 마음은 맑고 상쾌했다. 면접 날 입었던 정장을 꺼내 입고 소집 장소로 출발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30분만 가면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거리다. 비바람을 뚫고 출근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 우산대를 가슴에 바짝 붙이고 핸드백을 앞으로 돌려맸다. 하이힐 안쪽으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세라는 옷매무시를 살피고 버스 하차 벨을 눌렀다. 동시에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버스에서 내리자 우산살이 바람에 맥없이 휘어졌다. 치맛자락도 비바람에 말려 허벅지 위로 자꾸 올라갔다. 치맛단을 부여잡고 가까스로 회사 앞에 도착했다. 가방을 단정하게 매고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자가 20층을 누르며 세라에게 가벼운 눈웃음을 지었다. 정장 차림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그녀도 합격자인 것 같았다. 한쪽 벽에배치된 디지털 화면에 회사홍보 영상이 돌아갔다. 홍보실의 누구누구 사원이라는 자막을 보고 세라는 미래를 상상했다. 가슴이 벅차 벌써 20층에 올라온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신입사원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안내 화살표를 따라 대회의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핸드폰이 울렸다. 버스에서 수신된 문자가 생각나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확인했다. 문자를 보는 세라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세라는 다리가 풀려 벽에 기대섰다.


“저, 괜찮으세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여자가 물었다. 

“네, 머, 먼저…… 들어가세요.”


사람들이 세라를 지나쳐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미적거리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 전산오류로 합격자 발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세라는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숨을 가다듬고 명시된 전화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떨려 키보드판의 다른 숫자를 건드렸다. 전화기 너머 담당자는 15층 소회의실로 와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소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세라는 다리가 후들거려 두 손을 계속 비벼댔다.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남자가 서류를 옆구리에 끼고 회의장 단상 앞에 섰다. 남자는 자신을 인사부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처음에 면접자들에게 가번호를 부여하고 면접 후에 가번호와 실제 면접번호를 매핑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산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몇몇 지원자들에게 합격 통보가 잘못 갔다는 것이다. 옆에 앉은 여자가 긴 머리를 위로 돌돌 말아 올리며 손부채질을 했다. 머리에 포머드를 바른 남자는 씩씩거리며 금방이라도 넥타이를 풀어헤칠 기세다. 세라는 옷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금 장난합니까! 어떻게 일 처리를 이딴 식으로 합니까?”


 포머드 남자가 들고 있던 생수병을 바닥에 던지고 나가버렸다. 인사부 과장은 당황한 듯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남은 이들도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며 회의실을 나갔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직원이 회사 로고가 박힌 증정용 우산을 들고 꾸물거렸다.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이도 저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가는 세라에게 증정용 우산을 손에 들려줬다. 세라는 비닐 포장된 새 우산과 우산살이 휘어진 자기 우산을 양손에 들고 한없이 누추함을 느꼈다. 복도로 나와 K정보통신회사 로고가 박힌 우산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세라는 다시 편의점 앞에 섰다.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갈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유리문에 ‘아르바이트생 구함’이라고 써 붙인 종이를 누가 볼까 얼른 떼어내 마구 구겼다. 


“그거 왜 떼어요?


세라가 뒤돌아 보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세라가 들고 있는 구겨진 종이를 쳐다봤다. 


“우리 엄마가 그거 보고 아르바이트할 거라고 했는데.”


아이는 세라가 엄마의 영역을 침범이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라는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을 보고 말을 더듬었다.


“어? 아, 아르바이트 구했어.”


 아이는 힘없이 아이스크림 든 손을 떨어뜨렸다. 크림이 흘러 바닥에 뚝뚝 자국을 남겼다. 세라는 발뒤꿈치가 따가워 하이힐을 벗고 싶었다. 아이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편의점 문을 열었을 때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엄마, 편의점 있잖아. 거기 아르바이트 구했대.”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는 아이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하이힐을 벗으니 뒤꿈치가 벗겨져 진물이 나왔다. 밴드를 붙이고, 절뚝거리며 진열대에서 상품을 정리했다. 세라의 사정을 들은 편의점 사장은 대기업의 어이없는 실수에 분노했다. 그러나 오늘 들어올 물건 목록을 세라에게 인계하며 자신의 수고가 덜어진 것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세라는 빈 냉장 칸에 바나나 우유를 채워 넣다가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엄마의 일자리를 빼앗긴 듯이 쳐다보던 아이의 뾰로통한 시선, 회의실 앞에서 묵묵히 우산을 내주던 대기업 직원의 난처한 표정, 불의를 보면 못 참지만 말 뿐인 편의점 사장의 안도, 어디에도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었다.


세라는 줄곧 면접에서 쓴맛을 봤다. 최종 면접을 보면 면접관들의 표정에서 합격의 기운을 느꼈지만, 결과는 매번 반대였다.  우수한 성적과 다양한 봉사활동 이력에도 해외연수의 경험이 없다는 이유가 그녀를 움츠리게 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족연금과 엄마가 소일거리로 번 돈으로는 생활비 하기에도 빠듯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용돈은 한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최저시급을 받더라도 시간 활용이 가능한 편의점 은 그나마 최선의 알바직이었다.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항상 들려야 하는 정거장처럼 입사 전에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위축될 일도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모두 쓸어 넘겨 손목에 차고 있던 고무줄로 단번에 묶었다. 진열대에 빈 상품이 있는지 둘러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청소를 하면서도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무릎이 꺾여 넘어질 뻔했다. 위장에서 보내는 신호에도 밥 생각은 없고 자고 싶었다.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남자가 사발면과 참치캔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말보로 골드를 달라고 했다. 바코드를 찍으면서 사발면 밑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이 깔려 있는 게 보였다. 분명히 하나 남은 걸 전주비빔밥 뒤에 숨겨놨는데 남자는 용하게도 그걸 찾아냈다. 몇 시간 뒤면 폐기품이 되어 그걸로 저녁을 해결하려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내 참치마요……. 그가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을 들썩거렸다. 세라의 졸린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바싹 긴장한 채 그를 주시했다. 그는 구겨진 천 원짜리와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 전부 계산대에 올려놓고 금액을 맞췄다. 세라는 동전을 일일이 세는 남자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후줄근한 남자과 참치마요 김밥을 맨 뒷줄에 숨겨놓은 초라한 자신이 우주의 일식처럼 보였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햇빛이 드리운 식탁 위에는 정임이 차려 놓은 아침밥과 메모가 덩그러니 있었다. 


- 딸, 따뜻하게 시금치 된장국 데워먹고 가. 


세라는 정임의 짧은 메모를 보고 냉장고에서 된장국 대신 참치마요 삼각김밥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어제는 운 좋게 마감 시간까지 참치마요가 두 개나 남았었다. 최종 면접일인 만큼 오늘도 요행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참치마요 김밥을 먹었다. 찬기만 가신 밥알을 씹으며 발뒤꿈치에 밴드를 두 개씩 붙였다. 말쑥하게 정장을 입고 하이힐까지 신었다. 립글로스를 바르고 옷매무시를 살폈다. 회사원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정갈한 모습이다. 세라는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마다 교복 입은 학생의 정수리가 보여 기분이 좋았다. 과일가게 아저씨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사했다. 남의 정수리를 보고, 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걷는다는 게 어릴 때 스카이 콩콩을 타고 아빠의 키를 넘을 때처럼 완전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엘라화장품의 면접일이 정해진 후부터 회사의 인기 상품을 하나씩 사서 발랐다. 사용 후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핸드폰에 저장하고 틈이 날 때마다 외우고 프레젠테이션 하듯 연습했다.


“립 플럼핑 글로스는 입술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듭니다. 히알루론산 구체가 함유된 글로스 포뮬러가 수분감을 더해…….”


주머니에서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에 덧바르며 중얼거렸다. 멀리서 720번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세라는 가방을 손에 들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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