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내가 근무를 간 사이, 드디어 AS기사가 와서 냉장고 소리를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연휴에 가족들을 먹일, 삼겹살과 상추를 사들고 왔다. 그런데 좀 있으니 남편이 소고기와 (내가 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추를 사들고 들어왔다.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시댁에 가져가 함께 먹자며 사 온 것이다. 그런데 또 좀 있으니, 집 앞 카페로 아르바이트 갔던 큰 딸이 우리 둘이 사 온 것보다 훨씬 큰 봉투에 상추를 한가득 담아 안고 들어온다. 카페 사장님이 직접 키우신 거라면서 먹으라 주셨단다. 그리하여 우리 집 냉장고는 오늘 상추로 가득 차고 말았다.
2.
딸 둘은 어제부터 오늘 저녁에 서울로 외출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둘이서 서울 강남의 유명한 맛집에서 오랜만에 비싼 저녁을 먹고 오겠다나 뭐라나. 그래서 어른들끼리만 일찌감치 저녁을 다 먹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알바 끝내고 온 큰 딸과 시험이 끝나 낮에 실컷 놀다 들어온 둘째 딸은 둘 다 너무 피곤하다며, 갑자기 집에서 밥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다행히도 낮에 남편이 고기와 함께 사들고 온) 냉동 쭈꾸미를 녹이고, 새로 (밥이 빨리 되라고 잡곡을 안 섞은) 흰 쌀을 씻어 압력 밥솥에 안치고, 콩나물을 삶아 무쳤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매운 것을 좋아하니까, 쭈꾸미를 더 맛있게 먹으라고 집에 있던 청양초 고춧가루를 살짝 첨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들이 평소와 달리 눈물, 콧물을 쏟으며 쭈꾸미를 먹다가 끝끝내 (물배가 차서) 다 먹질 못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은데, 딸들이 묻는다.
"엄마, 쭈꾸미 어디서 산 거예요?"
그러자 퍼뜩, 청양 고춧가루를 첨가해서 맛있게 먹었던 냉동 쭈꾸미는 생협매장 제품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생협에서 파는 냉동식품들은 일반 마트보다 간이 훨씬 약하고 훨씬 덜 매워서, 아이들은 늘 맹맹하다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엄마라는 양심상, 마트 꺼보단 생협제품을 자주 사는데 거기에 간과 청양초를 첨가하면 아이들은 마트 것처럼 맛나게 먹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안 그래도 매운맛이 강한 마트 쭈꾸미에 청양초를 첨가해 버렸으니 매워도 너무 매워져 버린 것이다. 갑자기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에 따라 몸이 (어디서 산 쭈꾸미인지 판단할 새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나 보다. 그 결과 아이들의 고픈 배는 물로 가득 차버렸다. 어쨌든 배를 채워줬으니 성공이라 해야 하나?
3.
저녁을 먹고 오늘도 둘째와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트랙을 두 바퀴쯤 돌았을 때 운동이 더 많이 되도록 걷는 속도를 높이자며, 둘이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방귀가 '뽕~!' 하고 나왔다. 앞 뒤에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들릴만큼 소리가 너무 선명했다. 하지만 누가 뀌었는지 실상 모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딸이었다. 참을 수 없는 큰 웃음이 터져 나온 딸은, 앞 뒤에 사람들에게 들릴만큼 큰 소리로 내게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지금, 의식적으로 그런 거야? 어? 엄마, 소리 안 나게 살짝 뀌려다가 크게 터진 거야?"
아, 딸아.. 제발.. 조용히 좀 하면 안 되겠니? 나는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내 안에서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너도 늙어봐라.."
그런데 순간 주변을 걷던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빠른 발걸음으로 모두 멀어지기 시작했다. 거참, 방귀 뀐 '내가 그리 나쁜가요?' 그래도 주위에 아무도 없어진 덕분에 딸과 나는 몇 분 동안을, 실컷, 방귀이야기를 하며 배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도록 웃었다. 아, 딸아 담 번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