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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Jul 05. 2024

따라 하기 놀이

제 방에 있던 둘째가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외친다.

 

"XX공원에 (그 유명한 축구선수) 손 X민 왔대!"


그때 나는 막 책상 앞에 앉아서, 스피노자 글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던 찰나였다. 그 소리를 듣긴 했지만, '설마 진짜 왔으려고'와 '왔으면 왔지, 뭘' 하는 생각이 교차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이와 함께 막 뛰어나가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막 뛰어 나가는 둘의 뒤를 나는 어느새 따라서, 아니 내가 더 앞장서서 아주 빠르게 공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공원은 동네 사람들로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들 우리처럼, 이런저런 SNS를 통해서 알고 찾아온 것이다. 내가 자주 산책이나 러닝을 하러 가는 공원의 트랙 가운데가 바로 축구장이고, 손 X민 선수가 다른 평범한(?) 축구회원들 사이에서 정말로 함께 뛰고 있었다. 오! 정말로 군계일학이로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촬영하겠다며 남편과 아이는 계속 더 좋은 자리를 탐색하면서, 축구장에 모인 사람들을 뚫고 이곳저곳으로 계속 자리를 옮겼다. 아이는 그렇다 치고, 남편이 이리 적극적이라니! 문득 아이들 어릴 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회마을에서, 그때만 해도 지정된 좌석이 없었던 공연장에서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공연이 더 잘 보일만한 곳을 찾아 계속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댔고, 남편은 그런 나를 적당히 하라며 말렸던 것이다. 흠. 하지만 나는 지금, 계속 좋은 자리를 찾아 헤매는 남편을, 결코 말리지 않는다. 


모두들 우리처럼 뛰어 왔는지 사람들은 모두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남편과 아이를 따라다니다가, 나는 그 유명한 축구선수보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관찰했다. 정말로 손 X민 선수가 보고 싶어 온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의 나처럼 자신의 어린아이들에게 그 선수를 잘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촬영해 보겠다고 축구장 옆 농구장의 그물을 타고 오르는 중고생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걸 진즉 포기하고 오히려 스탠드석의 가장 멀고 높은 곳에 올라서 조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들에게 빨리 오라며 통화를 하는 젊은이들의 들뜬 얼굴 표정은, 오늘 이 순간이 정말 즐거운 이벤트인 것처럼 보였다. 


*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있을 기세인 남편과 아이들 두고,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몰려들어오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돌아 나오면서 생각해 봤다. 축구에도 또 그 유명한 선수에게도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왜 여기까지 뛰어왔을까. 실은, 나는 늘 그런다. 내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냥 함께 따라서 가보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겨울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말고, 따뜻한 곳에 가고 싶다는 남편의 한 마디에 바로 '그러자'며 비행기표를 끊었던 적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왜 원하지도 않으면서 선택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줏대 있게 살지 못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게 그냥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생각과 달라도, 내가 크게 원하는 것은 아니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냥 한 번 따라 해 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사람. 그러면 예상처럼 지루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오늘처럼 색다른 경험을 통해서 기억에 남는 시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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