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돌이 영감님!

by 미르mihr

우리 가족 중에 복돌이가 있다. 친정 엄마가 혼자 사실 때부터 키우던 반려견이다. 몇 년 전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자동적으로 복돌이와도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에 이 녀석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어서, 엄마를 제외한 우리는 복돌이만 보면 구박했다. 복돌이가 장미를 괴롭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장미 역시 친정 엄마가 복돌이와 함께 키우다 데려온 반려견이다.


같은 견종인데도, 복돌이는 장미보다 덩치가 더 크고 무엇보다 성질이 사나웠다. 털을 빗기거나 옷을 갈아입힐 때면, 자기 주인인 엄마한테도 으르렁거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 엄마는, 장미보다 복돌이를 훨씬 예뻐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장미가 더 얌전하고 귀여운데! 함께 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엄마는 복돌이를 '아들'로 생각하고 장미를 '딸'로 생각했다. 복돌이가 뭔가를 잘못해도 '하하하하, 그랬어~?' 이러면서 장미가 마음에 안들 땐 '이놈의 기집애가!' 이러시는 거다. 딸만 둘인 나와 내 딸들은 엄마를 향해, '남녀 차별 하지 말라'고 항의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는 내게 남자 형제가 없는 게 참말이지 다행이구나 싶었다. 엄마의 편애를 등에 업은 복돌이는 계속 장미에게 으르렁대고 엄마 무릎을 독차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미가 죽었다.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에도 기운이 없던 장미는, 알고 보니 이미 병이 있었던 것이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장미는 내내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복돌이는 자꾸만 장미에게 다가가 성가시게 했고 우리는 그런 복돌이를 매번 구박했다. 그런데 장미를 보내고 돌아오던 날, 복돌이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서럽고 서글프던지, 우리도 복돌이와 함께 장미를 그리워하며 내내 울었다.


*


작년 봄, 미국 언니네가 이사를 해서 엄마가 가보고 싶어 하셨다. 덩달아 나도 엄마가 미국에 간 동안에 마음 편히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가 미국에 가신 날,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는데 복돌이가 현관 앞 엄마가 벗어놓고 간 슬리퍼에 코를 박으며 낑낑대며 서있는 것이 아닌가. 밤이 되어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복돌이는 장미가 죽던 날보다 더 서럽고 서글픈 소리로 하울링을 했다. 난감했다.


엄마는 복돌이와 한 침대를 쓰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엄마 잃은 복돌이는,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슬프게 끙끙거리는 것이 아닌가. 자야겠는데, 나는 내 침대에까지는 복돌이를 올려 줄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자면서 소파 바로 옆에 복돌이 이불을 깔아줬다. 그러자 복돌이는 거기에서, 겨우 쉴 수 있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착하다'하고 복돌이를 쓰다듬어 줬다.


더 큰 문제는, 엄마 잃은 복돌이가 밥-사료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 복돌이를 먹이던 사람은, 당연히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는 복돌이에게 사료만 먹이지 않고, 엄마가 드시는 거의 모든 음식을-특히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드셨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는 그러는 엄마를 향해 '그러면 교육이 안된다'라고 매번 손사래를 쳤었다.


하지만 단식에 돌입한 복돌이에게, 우리는 서로 사료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을 먹여보려고 앞다투어 경쟁했다. 그러다 결국 복돌이에게는 그릇에 머리를 숙이는 약간의 수고도 할 필요 없는, 온갖 특식들이 입만 벌리면 바로 떨어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돌아왔고 복돌이는 엄마 주위를 미친 듯이 뛰어 돌더니 엄마 무릎에 딱 붙어서, 다시 우리를 본체만체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소파에서 자느라 아픈 허리가 더욱 아려오고, 복돌이 보느라 못 떠났던 여행지들이 내 눈앞에, 배반의 눈물과 함께, 어려왔다.


*


이렇게 성질 나쁘고 얍삽한 복돌이가, 엄마보다 나를 더 따르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내가 '주세요' 놀이를 해 줄 때이다. 엄마는 복돌이를 먹이고, 무릎에 끼고,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데 이상하게도 놀이를 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할 때 복돌이에게는 그 흔한 장난감 하나 없었다.


짠한 마음에 나는 별로 비싸지도 않은 '갈비' 모양의 반려견용의 물어뜯는 장난감 하나를 복돌이에게 선물했다. 지금껏 그런 걸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좋아했다. 내가 '갈비'를 집어 멀리 던지면, 복돌이는 그걸 잡으러 뛰어간다. 문제는 복돌이가 그걸 다시 내게 가져다주지 않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물고 가서 진짜 갈비마냥 잘근잘근 씹기만 한다는 거였다.


놀이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쉬운 내가 계속하자고, '주세요'하면 복돌이는 '으르렁~~~~~'하면서 '갈비'를 물고 나를 피해서 계속 다른 데로 옮겨 간다. 그러면 나는 그게 또 재밌어서 '주세요'하면서 따라다니고, 복돌이는 '갈비'를 문채 '으르렁~~~~' 대면서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그런데도 복돌이는 이제 나만 보면, '갈비'쪽을 바라보면서 그 술래잡기를 위한 최초의 '갈비' 던지기를 재촉하게 되었다. 같은 놀이를 반복하는 게 나는 지겨운데, 복돌이는 아직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언제나 처음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내가 '주세요'하고 따라오기를 기다린다.


*


복돌이와 나 사이에 남은 한 가지 문제는, 호칭이다. 친정 엄마는 복돌이에게 '엄마'다. 그래서 엄마는 복돌이에게 나를 가리킬 때 '누나'라고 하신다. 나와 복돌이는 남매인가? 그러나 엄마는, 복돌이에게 내 딸들을 가리킬 때도 또 '누나'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와 딸들이 졸지에, 자매님들이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복돌이'를 종종 '복돌이 영감님'이라 부른다. 그러면 진정 복돌이의 반려자가 되기라도 한듯 엄마는, '으하하하하'하며 아주 크게 웃으신다. 그럼 나는 복돌이에게 뭐가 되려나...? ^^*


이전 05화따라 하기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