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109~112

by 미르mihr



강렬한 것, 진화하거나 (한계를) 돌파하는 강렬함의 극한 속에서 치러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전부다. 여행한다는 것은, 유목민적 탈영토화의 강렬한 한계치들 혹은 미분적 관계들 마다, 우주 안에서의 자리바꿈과 여러 형상들이라는 강렬함을 통과하는 것이다.


C'est que tout voyage est intensif, et se fait dans de seuils d'intensité où il évolue, ou bien qu'il franchit. C'est par intensité qu'on voyage, et les déplacements, les figures dans l'espace, dépendant de seuils intensif de déterritorialisation nomade, donc de rapports différentiels.






강렬한 여행의 기억 1.

육아에 조금 지쳐갈 무렵, 이제 겨우 일곱 살 네 살인 두 아이 손을 잡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진짜 커다란 배낭 속에는, 셋에게 필요한 여행용품들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유기농 쌀과 첨가물 없는 무해한 간식까지 꽉꽉 채웠다. 그리고 제주도 올레길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꽤 긴 길을 걸어가는데, 언덕이 나타났다. 아이들을 바라보니 벌써 지친 둘째는, 거의 비몽사몽인지라 부지불식간에 아이를 안아 올렸다. 등에는 11kg의 배낭, 앞에는 15kg의 아이, 그렇게 총 25kg을 짊어지고, (45kg인) 나는 (비지땀을 비오듯 흘리고 정신은 점점 혼미해 졌지만) 언덕길을 끝까지 완주했다. 그 후로 아이들은 유기농이 아닌 간식을 마음껏 먹게 되었고, 나는 육아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고난에 글쓰기라는 '아주 가벼운' 쉼터를 마련했다.


강렬한 여행의 기억 2.

아직 아이들이 없던 결혼 1주년. 둘 다 처음 가본 유럽의 첫 여행지 파리에서, 우리는 일찍부터 어딘가를 가려고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플랫폼으로 벌써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바쁜 출근 시간, 달려가는 파리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인 우리도 덩달아 뛰었다. 앞서 가던 남편이 지하철에 먼저 들어서고 내가 막 한 발을 내딛으려는데, 그만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닌가. 어떡하지? 도어 유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어떤 절규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저 그 순간 기억나는 건, 지하철 안에 있던 파리 사람들 모두 합심해,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지하철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다. 놀랍게도 당시 파리의 지하철 문은 수동으로도 열 수 있었다. 순전히 우리를 위해 문을 열었던 그들 덕분에, 속도가 (물론 그 외에 많은 것들도 다르지만) 그 무엇보다 속도가 가장 다른 우리가, 지금까지도 함께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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