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249~252
네가 지배적인 실재의 언표들에 복종하면 할수록, 너는 언표행위의 주체로서 정신적 실재 속에서 더욱더 명령한다... 사람들은 예속의 새로운 형식을, 즉 자기 자신 또는 순수 "이성" 또는 코키토의 노예 되기를 발명했다.
Plus tu obéis aux énoncés de la réalité dominante, plus tu commandes comme sujet d'énonciation dans la réalité mentale... On a inventé une nouvelle forme d'esclavage, être esclave de soi-même, ou la pure «raison», le Cogito.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는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존재하는 나'라는 분열증을 정식화했다. 그것은 또한 '욕망하는 나-존재하는 나'라는 변형을 낳았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나는 '내 생각'과 '내 욕망'에 충실하고자 할 뿐'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과 그런 욕망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내 신체-영혼 안에 자리 잡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