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341~344
달리고, 놀이하며, 춤추고, 그림 그리는 아이는, 자신의 주의력을 언어와 글에 집중시킬 수 없다. 그는 결코 좋은 주체는 아니리라. 요컨대, 새로운 기호계는 원시적 기호계들의 모든 다양체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할 필요가 있다.
Un enfant qui court, qui joue, qui danse, qui dessine, ne peut pas concentrer son attention sur le langage et l'écriture, il ne sera jamais non plus un bon sujet. Bref, la nouvelle sémiotique a besoin de détruire systématiquement toute la multiplicité des sémiotiques primitives.
내 머릿속에는 오래도록 (아마 지금도 무심결에 작동될) 이분법의 잣대가 들어있어서 사물이든 사람이든 관념이든 그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우선 각인했다.
'어떤 일이든 주체적으로 해라'
'주체성을 가져라'
이런 명령어들 속에서 '주체'라는 말은 당연히 내게 좋은 것으로 새겨졌다. 그런데 저 문장들 속의 '주체적'이라는 말은, 따져보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며 이미 주어진 일들을 어서 잘 해내라는 것이다. 학생 시절의 공부, 회사원 시절의 임금 노동, 주부로서의 가사 노동, 가족에 대한 돌봄... 자기의 역할에 주어진 것들을 잘 해낼 때, 그는 행실이 좋은 사람(Bon Sujet)이다.
'sujet'는 문장에서 주어를 가리킨다. 그런데 문장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문장들은 이미 세계에 있었고, 어느 날 태어난 나는 문장들 속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sujet'의 가장 첫 번째 뜻은 '종속된'이고 두 번째 뜻은 '신하'다. 행실이 좋은 사람은, 곧 말 잘 듣는 하인이다.
'sujet'의 세 번째 뜻이 (철학적) 주체이고, (문장의) 주어이고, (토론이나 대화의) 주제다. 제 할 일을 망각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우리는 흔히, '주제 파악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주어진 세계의 명령어들 속에서 착실한 하인 노릇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리하여 내 안의 새로운 다양체들이 나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다면, '결코 내 주제를 파악하지 말라.'
('문법을 파괴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맞춤법 검사를 하고 있는, 오 충실한 하인이여!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