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383~386
어떤 선들은 모델이나 우연 없이 발명되고 그려져야 한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도주선을 발명해야 하는데,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로 길을 낼 때에만 발명할 수 있다.
D'autres doivent être inventées, tracées, sans aucan modèle ni hasard : Nous devons Inventer nos lignes de fuite si nous en sommes capables, et nous ne pouvons les inventer qu'en les traçant effectivement, dans la vie.
되돌아보면 늘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어 하며 살았던 것 같다. 부모는 마음에 안 들었고, 학교는 한심했으며, 회사는 공정하지 않았고, 결혼생활은 힘에 부쳤다. 하지만 여기를 떠난 것이 결국 저기였을 뿐이다. 예컨대 부모를 떠나보내기 위한 것이 결혼이었고, 학교를 떠나보낸 것이 회사였고, 회사를 떠나보낸 것이 전업주부의 그림자 노동생활이었고, 그 와중에 이제는 늙어버린 부모마저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 결국 나는,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하고, 단지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제자리를 빙빙 돌며 살았던 것이다.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그것들은 모두 내가, 나 스스로 발명해 낸 길이 아니라서 진정한 도주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스스로 길을 내보려 했던 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컨대 지금 여기에 쥐어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브런치를 발명한 건 아니지만, 또 어쩌면 내가 브런치에 포획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브런치가 없을 적에도 글을 썼고, 언젠가는 브런치가 아닌 다른 곳에도 글을 쓸 것이기에) 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도주시키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자각'의 섬세성이며, 도주의 시작은 아주 미세한 변화와 아주 가느다란 균열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