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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5-11. 종착점은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가 태어나는 자리다

by 일이사구

길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더는 갈 수 없고,

선택지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때.


퇴사, 구조조정, 예기치 않은 변화는

이 감각을 더 깊고 날카롭게 만든다.


그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왜 나는 갑자기 방향을 잃은 걸까?


하지만 이 절망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길의 구조를 잘못 이해해서 생긴 오해다.


앞에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길은 원래 앞에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는 이유

우리는 길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길은

앞에 펼쳐지는 구조가 아니다.


길은

내가 걸어온 자취가

뒤에서 연결되며 생성된다.


그래서 앞을 보면 언제나 공백뿐이고,

그 공백이 불안을 만든다.


특히 사회가 깔아놓은 커리어 패스를

따라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공백 앞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어진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앞이 안 보여요.”


정확한 표현은 이거다.


길이 뒤에서 설명되는 구조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앞이 허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앞은 원래 비어 있다.

길은 원래 뒤에 있다.


이걸 이해하는 순간,

불안의 절반은 사라진다.


길은 ‘발견’이 아니라 ‘조립’이다

우리는 흔히

길을 찾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길은

외부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 감정, 상황, 선택.

이 네 가지 재료가

특정 순간 다시 배열되며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길은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길은 발견이 아니라

자취의 누적이다.


그리고 그 자취를 만드는 재료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감정이 멈춰 있을 때, 길도 멈춘다

길이 끊긴 느낌은

대부분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멈춰 있는 상태에서 온다.


불안, 압박, 권태, 소진.


이 감정들은 장애물이 아니다.

다음 방향이 숨어 있는 지점을 가리키는 신호다.


감정은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데이터다.


그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흐릿하던 방향은

서서히 초점을 갖는다.


불안의 정체

앞이 허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잠시 멈춰 있기 때문이다.


다시 걷기 시작하면

길은 반드시 만들어진다.


앞이 안 보여서 불안한 게 아니라,

걷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멈추면 공백이 되고,

걷기 시작하면 형태가 생긴다.


이게 길의 작동 방식이다.


방향 → 걸음 → 자취 → 기록 → 서사

아무 방향으로나

걸을 수는 없다.


그래서 먼저

비전이 필요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 질문이

걸음을 가능하게 만든다.


방향이 생기면

움직일 수 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걸음들이 뒤에서 연결되며

자취가 된다.


자취가 해석되는 순간,

기록이 되고

기록이 의미를 가질 때

서사가 된다.


길은 앞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설명되는 구조다.


새 길은 반드시 만들어진다

길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당신의 여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길은

당신이 다시 걷기 시작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생성된다.


앞이 비어 보여도 괜찮다.


새로운 방향은

언제나 그 공백 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딱 한 걸음이다.


그 걸음이 자취가 되고,

자취가 의미가 되고,

의미가 서사가 된다.


우리는

걸어간 뒤에서야

그것이 길이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기억한다.


행동은 지금이고, 기록은 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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