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사운드 오브 뮤직 >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여선생님이었다.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영화제목 하나를 알려주며 재미있으니 꼭 보라는 얘기를 하셨다.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한테 그 말씀을 전했다. 선생님의 전언(傳言)이자 영화 볼 기회를 잡았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부모님과 동행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밝고 예쁜 저 노래들은 다 뭐지?
눈물까지 나려고 하는 이 느낌은 또 뭐지?
세상에 이런 영화가 다 있다니... 도대체 뭐지?
한 마디로 감동 또 감동,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이었다. 영화가 그런 재미를, 그런 느낌을,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을 줄은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본 영화도 몇 편 없었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하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영화에 관한 TV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한 패널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말하자, 다른 패널 한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 말에 화가 났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 한 켠에 들어붙어 있다. 물론 초등학교 때 본 프로그램은 아니고 제법 뒤의 일이다. 하여튼 <사운드 오브 뮤직>에 부정적 의미를 붙일 수는 없다는 생각은 상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극장에서도 여러 번을 봤다. 처음 본 해는 1969년이었지만 재수입된 적도 여러 번, 리바이벌이라며 재상영한 적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 마디로 극장에서도 보고 또 보고였지만, 비디오테이프나 DVD가 나왔을 때도 여지없이 빌리고 사서 틀어댔으니 집에서도 보고 또 보고였던 셈이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어릴 때는 마리아(줄리 앤드류스)와 아이들이 같이 ‘도-레-미(Do-Re-Mi)’를 부르는 장면이나, 인형극을 하면서 ‘외로운 산양치기(The Lonely Goatherd)’라는 요들송을 부르는 장면을 제일 좋아했다. 즐겁고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도 끼어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절친이 <사운드 오브 뮤직>의 빽판 OST가 있는 걸 자랑하는 걸 듣고는 시쳇말로 그 친구 집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도-레-미’와 ‘외로운 산양치기’ 노래를 듣기 위해서다. 반복해서 계속 들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뭐가 그리 즐겁고 웃겼는지 자지러지게 웃어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를 벗어난 시절에는 리즐(샤미언 카)과 랄프가 ‘곧 열일곱 살이 되는 열여섯 살(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는 장면 그리고 천둥과 번개 때문에 모두 마리아 방에 모여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s)’을 부르는 장면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율동을 곁들여 ‘안녕, 안녕히 가세요(So Long, Farewell)’를 부르는 장면도 참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어른들이 자러 가는 아이들에게 “안녕(Goodbye)!”이라고 노래로 답하는 장면은 웃음 터지는 양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제법 어른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트랩 대령이 엄하게만 대하던 아이들에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서는 장면에서 뭉클함을 느꼈다. 고국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선 무대에서 ‘에델바이스(Edelweiss)’를 부르다 목메는 장면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점점 더 세상을 알게 될수록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음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세월이 지나가도 <사운드 오브 뮤직>이 계속 스크린 위에 펼쳐질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제일 눈에 밟히는 장면은 단 하나로 압축되어 갔다. 지루할 정도로 길다고 생각했던 인트로 부분 바로 그 장면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었다. 산과 강과 나무와 건물들의 풍경을 샅샅이 훑어가듯 보여주는, 어느 시점까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서서히 자연의 소리가 들려오는, 거기에 음악 소리가 천천히 끼어들면서 그 푸르고 넓은 언덕에 한 소녀가 팔을 활짝 펴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나타나는, 바로 그 장면,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nd of Music)’이 들리는 첫 장면 말이다.
세월이 가도 영화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변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 또한 어떤 시절에 봐도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겠지만, 사람이 달라지는 한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이 전과 같이 보일 리 없다. 그런데도 <사운드 오브 뮤직>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삶의 모습을 요리조리 즐거운 형태로 꾸며놓은 것이 아니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자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를 들여다보면 영화 속 캐릭터들의 어려움은 금방 알 수 있다. 어렵게 살다가 수녀원에 왔지만 그 생활마저도 맞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소녀 마리아. 부인을 잃자 아이들을 굳세게 키우는데 집착하는 군인 출신 아버지 트랩 대령.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아버지 모습에 방황하는 아이들. 그것도 나치 세력의 창궐로 인하여 나라가 엎어지려는 위기적 상황이었으니. 어느 하나 녹녹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모르는 예비 수녀와 명예뿐인 예비역 군인 그리고 철부지 일곱 아이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노래와 퍼포먼스로 표현한 것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사람들에게 힐링을 안겨줄 수 있는 포인트는 드러나 있는 즐거움보다는 가려져 있는 어려움에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기쁨에 같이 웃고 그들의 슬픔에 같이 울지 않았을까.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지막은 ‘모든 산에 올라 (Climb Every Mountain)’라는 노래로 장식된다. 꿈을 찾을 때까지 산에도 오르고 강도 건너고 무지개도 따라가라, 는 내용의 노래다. 이 역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노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첫 장면이 눈에 밟혀온 이에겐 그때 들려주는 노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지막 소절이 더 귀에 맴돈다.
마음이 외로울 때면 언덕에 올라요.
전에 들었던 소리가 들릴 걸 알면서도 말이죠.
내 마음은 축복받을 거예요.
그 음악 소리(Soun of Music) 덕분이죠.
그래서 한 번 더
노래할 거예요.
여러 번 봐서 뻔히 알면서도 똑같은 영화를 자꾸 보는 사람의 심정이 저런 심정이란 걸 알고 쓴 가사 같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에 어울리는 문구는 ‘가장 좋아하는 것들’의 첫 소절에 있다.
“장미 꽃잎 위에 맺힌 빗방울(Raindrops in Roses)”처럼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니까.
트랩 가족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나치들에게 잡힐 뻔하는 위기가 닥친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 수녀님들의 용기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유머러스한 장면 중 엄지척이 아닌가 싶다. 수녀님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고백하는 장면은 정말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