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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감 넘치는 F1 카레이스에
흐르는 고전의 향수

영화단상 / F1 더 무비 (2025)

by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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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 (F1, 2025)


이렇게 짧은 제목이 있었나 싶다. 우리 제목에는 ‘더 무비’라는 말을 붙여놓았지만 원제목은 그냥 <F1>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나 싶다. “F1”이라고만 해도 대략 뭔지 알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나마 우리나라 제목은 자동차 레이스와 헷갈릴까 봐 '더 무비'라는 간단한 설명이라도 덧붙여줘서 고맙다. 하여튼 제목부터가 짧으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음악 때문이었다. 배경 음악인지 현장의 음악인지 구분할 생각 말라는 느낌으로 맹렬한 록 음악이 들렸다.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밴드의 유명한 노래였지만, 그 밴드의 그 노래가 이런 영화의 서두를 장식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놀랐다. 그런데 저 노래가 자동차 경주 대회 장면과 저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냐는 느낌 때문에 한번 더 놀랐다. 전설적인 하드록(Hard Rock)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Whole Lotta Love’라는 노래가 바로 그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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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F1 더 무비>의 주역은 누가 보더라도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그 사람이었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을 서부극 카우보이에 빗대는 대사가 나왔다. 옛날 서부극의 주인공 같은 짓을 한다는 말이었다. 할리우드 정통파 서부극 주인공의 캐릭터라면 무뚝뚝하면서 꿋꿋이 제 방식을 고집하는 인물이다. 뒤에 가서 그게 모두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기어이 결과로 증명하는 그런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는 소니에게 혼자서 고집 피우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였다. 혼자서 폼 잡지 말라는 그런 투로. 그런데 끝까지 가보면, 예전 서부극의 주인공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니는 과거에 잘 나갈 뻔한 적은 있었지만 현재로는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위치다. 그럼에도 오로지 나의 길을 가련다로 일관하는 인물이다. 우선은 독단적으로 보이지만 그 고집(?)에 따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앞서 얘기한 대로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먹혔다면 그런 캐릭터가 먹힌 셈이니 레트로랄까 옛것이 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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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사가 나오길래 서부극에 빗대긴 했지만, 허름한 옷차림에 말 타고 터벅터벅 다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다. 날렵하고 깔끔한 레이서 복장에 맵시가 넘치는 폼나는 자동차를 타고 사람들의 환호를 뒤집어쓰며 달리는 현대의 카레이서 얘기다. 주인공 소니는 경험은 풍부하지만 철 지난 연식이다 보니 재능 있는 젊은 레이서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와는 기본적인 생각부터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협업이 우선적인 숙제인 팀을 이룬다. 주목받을 정도의 성적을 위해서 소니가 픽업되면서부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전개하는 내러티브였다. OBG(Oldies But Goodies)라고 할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평범한 서사였다. 유별나 보이는 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상, 음악과 음향, 배우의 연기 등등이 맛깔나게 입혀지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 된다는 걸 역설하는 듯한 울림이 느껴졌다.


요즘은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기막힌 구조의 서사를 보긴 쉽지 않다. 예전 같으면 표현이 불가능했던 장면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고, 임팩트 강한 액션에 대한 기대감도 저버릴 수도 없고, 기막힌 반전을 이루려는 고민까지 넘치다 보니 앞과 뒤가 잘 맞아떨어지는 서사를 보기 힘들어진 면이 있다. 이것저것 다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기본을 홀대한다고나 할까. 볼거리 많은 블록버스터 공룡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의 관람평에도 서사를 지적하는 글이 제법 보이는 걸 보면, 이야기 연결이 부드럽지 않은 서사에 대해서 관객들이 민감해진 게 아닐까. 그런 세평과 <F1 더 무비>를 연결 짓자면, 기발하거나 복잡하지는 않더라도 단단한 서사라면 공감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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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탑건 : 매버릭>에 이어 <F1 더 무비>에서도 젊지 않은 배우에게 젊지 않은 주 캐릭터를 맡김과 동시에 세대 간의 소통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영화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에 시선이 갔다. 백세시대 운운하는 지금임에도 빈부, 노소, 젠더, 직업 등등 이슈만 생기면 갈등을 부추기려고 작정한 듯한 잡설(雜說)이 넘쳐나는 시대니까 말이다. 중년과 청년세대 간의 협업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는다는 결말은 현시대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니까. 영화에서도 중년 베테랑과 청년 에이스의 갈등이 다분히 표출되지만 서로의 마음이 소통되기까지의 과정이 볼만하다. 유명 스타(브래드 피트) 중심의 영화이다 보니 나이 든 캐릭터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그 캐릭터가 전혀 안정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면이 있다. 한때는 에이스를 넘보는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소위 땜빵 레이서로 살아가는 중년일 뿐이니 소위 가질 거 다 가진 기득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왔을 뿐 상위 계층을 목표로 살아온 캐릭터가 아니었다. 코신스키 감독의 이전 영화 <탑건 : 매버릭>에서의 매버릭(톰 크루즈)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대단한 파일럿이었지만, 비행학교 동료들처럼 높은 직위에 오르지 못하고 테스트 파일럿으로 살고 있었으니까. 두 영화 모두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 소신에 매달려 살아왔던 중년의 선배들이 재능이 넘치는 – 젊은 시절의 자신과도 같은 - 청년 에이스들과 힘을 합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공통점이다. 소통이란 나이가 아니라 진정성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기계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평가되는 이 시대에 기계를 중심에 둔 영화에서 인간관계의 회복을 보고 있으니.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는 얘기가 있나 보다. 최첨단 자동차 영화의 세련된 화면에서 고전의 향수(鄕愁)가 느껴지며 그것이 공감의 힘으로 작용하는 느낌이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처럼, 현시대에 필요한 무언가로 거듭난 옛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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