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널 좋아했던 걸 후회하진 않아
안녕. 오랜만이야.
넌 벌써 스물여섯이 되었겠네. 어디쯤 와 있니?
여전히 이 답답한 동네에 살고 있을까 아님, 다른 곳으로 자유를 찾아 떠났을까.
우리가 어렸을 적, 참으로 잔인했던 그 순간으로부터 난 멀리 떨어져 왔어. 이제야 난 그때의 나로부터 떠날 수 있게 됐어. 난 많이 변했는데, 넌 얼마나 변했을까.
난 네가 내게 한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
그 말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날 괴롭혔지만 20대의 반을 지나와서야 난 단단해졌어.
이제 더 이상 그 말에 상처받거나 두려워하지 않아.
내게 그 말을 했던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
너도 나처럼 많이 변했을지 아님, 여전히 그때와 같은지.
난 네가 변했으면 좋겠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널 탓할 생각은 없어. 이 사회가 그렇게 살게 만들었을 테니까.
널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널 좋아해서 다행이었다고 말해줄 거야.
난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많이 변했어. 나랑 다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어. 난 내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냥 너와 달랐던 것 뿐이었지.
그걸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처음엔 널 원망도 했고 미워도 했고 그럼에도 널 좋아하는걸 그만할 수 없어서 나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어.
나는 꽤 오랫동안 나를 싫어하는 채로 있었어.
나는 점점 말라갔고 예민해졌고 우울해졌지. 그 모든게 너의 탓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난 괜시리 네가 생각나고 미웠어.
근데 그것도 한때더라. 나중엔 네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난 건강해졌어.
다행이지. 내가 너 말고 다른 사람도 좋아할 수 있었다는게.
비록 그 시절의 넌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그래도 난 널 좋아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
그 시절의 내가 널 좋아했기 때문에 난 나에 대해 알게 되었잖아.
만약 다시 너를 만났을 때로 돌아간다하더라도
난 여전히 너를 좋아할거야.
네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든 난 알 길이 없지만 너도 나처럼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의 오랜 친구로서 네가 가는 길마다 행운이 깃들기를.